한계령에서 / 정덕수 시인의 어린 시절 생애를 그려보며ᆢ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 노랫말의 주인공인 정덕수 시인. 그가 <한계령에서>를 쓰게 된 배경은 화자(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 성장 배경과 맞물려있다. 강원도 산골에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살아내야 했던 시인의 세월을 그려보면 가슴 뭉클하니 눈물이 난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고향 마을 뒷산인 한계령에 올라 이토록 가슴 시린 사연을 시로 풀어냈으니, 시는 곧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싹이 트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한계령에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찾아 추억 여행을 떠나 눈물짓게 하는 정덕수 시인. 시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겪으며 가슴으로 받아들인 삶의 원천(原泉)에서 길어 올린, 즉 머릿속으로 가공되지 않은 시어(작품)에 독자들이 더 공감한다. 수십여 년 세월이 흘러도 '한계령에서'가 사랑받는 이유다.
언제 시간이 되면 한계령에 올라 이 시를 읊으며 추억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지 싶다.^^
한계령에서 -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 오늘 하루가 아니라 /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 혼돈 중에 헤메일지 /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 눈물 젖은 계곡 / 아, 그러나 한 줄기 /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 이 산 저 산 눈물 / 구름 몰고 다니는 / 떠도는 바람처럼 // 저 산은, /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 잊으라 / 잊어버리라 하고 /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 지친 한숨 빗물 되어 /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 아, 그러나 한 줄기 /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 이 산 저 산 눈물 / 구름 몰고 다니는 / 떠도는 바람처럼 //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 빗물 젖은 옷자락에 /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 찬 빗속 /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 저 산은 /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 내려가라 /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아, 그러나 한 줄기 /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 이 산. 저 산 눈물 / 구름 몰고 다니는 / 떠도는 바람처럼
-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
※ 일부 사진은 웹사이트에서 발췌하였음을 알립니다. 어머니와 전국 일주 여행 하며 한계령을 몇 번 넘나들었다. 지금은 서울-양양 고속도로와 미시령 터널이 생겨 한계령을 이용하는 통행량이 많이 줄어 한산하다. 그래도 설악의 중심축인 한계령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라도 한 번쯤 넘어보았지 싶다. 한계령에 얽힌 시를 떠올리다 보니 문정희 시인의 에로틱한 시어가 떠오른다. ㅎㅎ
첫댓글 시어를 곱씹어 읽다 보면 그 세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겨우 초등학교 졸업 후 상경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되어 눈물이 난다.
당시 가내수공업 형태의 열악한 환경에서 그저 잠자리를 제공(의탁)하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조건(숙식 해결)으로 일해야 했던 어린 노동자의 비애가 얼마나 컸을까? 밑바닥 도시 생활에 지친 몸에 엄마 없는 설움과 그리움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런 설움이 북받친 장덕수 시인이 고향 마을 뒷산(정확히는 한계령 오색 약수 뒤라고 함)에 올라 울면서 이 시를 풀어내게 한 출발점이었지 싶다.
비록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상경해 직업(생계)전선에 뛰어들어 고학하며 보냈던 지난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는 까닭은 왜일까?
아! 그리운 어머니ᆢ지난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