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라…네가 신의 눈이요, 손발이란 것을
이현주 목사
아침 먹고 잠시 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짤막한 꿈이다. 사건이나 사물은 없고 한마디 말을 들었는지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늙는 것은 그 몸이 한 찰나도 지금을 떠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달프고 병드는 것은 그 마음이 틈만 나면 지금을 떠나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헛된 고생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합치는 곳에 건강과 행복이 있고 그 둘이 어긋나는 곳에 질병과 불행이 있다. 어느 쪽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네 마음이다. 몸은 옹근 자연이기에 선택할 무엇이 따로 없다.”
“너의 내적 변화와 관련하여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너는 너 자신을 바꿀 수 없고 네 파트너나 다른 누구도 바꿔놓을 수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은총과 사랑이 그 속으로 들어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마련해놓는 것이 전부다.”(에크하르트 톨레)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는 것은 나무가 그러는 게 아니다. 빛과 어둠을,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야, 아무야, 너는 부디 가만있어라. 저 나무의 하지 않고서 함(爲無爲)을 본받아라. 저문 가을날 너에게서 튼실한 열매가 맺힐 것이다. …하지만 나무가 거기 없다면 어디에서 무슨 수로 열매가 맺힐 것인가?
며칠 만에 도경계까지 걷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는 이 걸음이 언제 비롯되었던가?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한 아이가 뒤뚱거리며 한 발 내딛다가 넘어진 바로 그날이었겠지. 그 뒤로 팔십년 세월 한 순간도 멎지 않고 걷고 또 걸어서 오늘 이 고개를 넘는구나. 새삼스레 발이 고마워 한마디 한다.
“고맙다, 발아.” 발이 대꾸한다. “나 생전에 너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지 않은 적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유는 내가 너한테서 떨어진 적이 없고 어디로 가겠다는, 가야 한다는, 가고 싶다는 의지(will)가 없기 때문이다.
알아듣느냐? 남은 세월, 부디 나처럼 살아라. 거기가 사람이 갈 수 있고 사람이면 가야 하는 마지막 코스다. 잊지 마라, 네가 한님의 손발이요 눈이요 입이요 목구멍이요 마침내 그분의 몸인 것을!”
아아, 눈물이 나려 한다. 아빌라의 테레사 성인이 수련생들에게 자주 말씀하셨다지. 그리스도는 그대들 손 말고 그대들 발 말고 그대들 입 말고 손이 발이 입이 없는 분이시라고.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겠다. 온몸으로 아멘이다.
글 이현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