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볶음
우리 동네 마트에는 생선코너가 없다네. 사이드 메뉴처럼 가끔 식품 코너 앞에 간고등어를 갖다 놓지만 드물게 만날 수 있다네.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우리 마을에는 마트가 2개 있는데 생선코너가 따로 없다. 새로 생긴 마트에 생선코너가 작게 있었는데 수요가 없어선지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는 없어진 듯하다.
마트를 다니던 곳만 가다 보니 생선만 사러 다른 마트로 가기도 뭐하고 그래서 생선이나 육류는 멀리 나가서 큰 마트에서 장을 본다. 사는데 불편하지는 않다. 시골에 사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남편이 내려오는 주말에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다, 재미있는 말로 ‘돈이 없지, 생선이 없나, 한우가 없나, 맛있는 삼겹살이 없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지금도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지금은 아파트도 새로 들어서고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먹고 싶은 것은 사서 먹을 수 있는 마트가 2개나 생겼다. 없을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는 화개장터다.
처음에는 작은 슈퍼마켓 하나밖에 없었다. 가끔 시내에 나가면 음식점이 줄줄이 눈에 띄어서 부럽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내가 시골에 살다 보니 별것이 다 신기하고 부럽고 그랬지만, 불편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논이 있고 밭이 있고 무엇보다 나무가 많고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열고 개구리들이 들려주는 합창을 들으며 잠이 든다. 주변에 연못이 많아서 산책하기 좋아서 특히 좋았다.
처음에는 낯선 시골 마을로 귀양살이 왔다고 생각했다. 낯선 경상도 정서에 많이 당황하고 힘들어하면서 조금씩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아기도 낳고 친구도 만들고 낯선 정서도 나랑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니 편안했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시를 쓰게 했다. 시인으로 살면서 아기 낳고 키우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살다 보니 30년이 되었다. 이제 나는 경상도 사람이 다 되었다. 가장 오래 산 도시가 이곳 경산이다. 복사꽃 흐드러지고 대추가 많이 생산되고 팔공산이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멋진 아들 둘을 낳고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하게 잘살고 있으니 이제는 경산이 마음의 고향이다.
큰아들이 낙지볶음을 저녁 메뉴로 주문했다. 돈가스와 돼지고기를 며칠 먹더니 느끼하다고 무언가 매콤한 요리가 생각난다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메뉴가 정해지면 엄마는 편하다. 메뉴 선정하는 고민을 하나 덜어주니 엄마는 감사하다.
토산지로 산책하러 나가면 근처에 대형 식자재가 있다. 오늘은 토산지로 딸기 장바구니를 들고 산책하러 나갔다. 마음을 내서 벚꽃 길로 걸음을 옮겼다, 화사한 봄을 나에게 선물한 골프장 벚나무를 만나러 갔다. 꽃이 진 자리에 초록 잎이 돋아나고 있다. 벚나무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벚꽃이 떠나는 길을 배웅하고 싶었다. 내년에는 더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렇게 벚꽃이 구름처럼 바람처럼 또 흘러가고 있다.
토산지 풍경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노란색 개나리 울타리도 초록으로 담장을 색칠했다. 돌담 사이사이에는 영산홍이 울긋불긋 자리를 잡고 벚나무도 알록달록 꽃자리에 아쉬운 봄이 남아있다. 연못의 물색은 점점 맑아지고 물 위에는 바람의 무늬가 파도를 친다. 남아있는 꽃잎을 알뜰하게 떨어낸다. 수양 버드나무의 긴 머리채가 바람에 낭창낭창 흩날리고 있다. 세상이 조용해진 듯하다. 한바탕 꽃 잔치가 벌어지고 이제 장을 접는다. 풀잎 향기가 교향곡처럼 울려 퍼진다.
혼자 대형 식자재로 장 보러 오기는 처음이다. 요즘 들어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제는 어떤 일이든 부딪혀보기로 했다. 산책을 마치고 건너편 식자재로 건너가기 위해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도로에 횡단보도 표시가 없어졌다. 도로 위에 빨강 노랑 초록의 작은 조각들이 점점이 놓인 것으로 봐서 횡단보도를 다시 하는 것 같았다. 멀뚱히 서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학생들이 신호등 앞에서 서 있었다. 조금 안도가 되었다. 학생들이 건너오면 나도 가면 되겠다고 소심하게 서서 기다렸다. 초록 불로 바뀌고 학생들도 건너오고 나도 당당하게 건너갔다. 세상 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낯설지만, 그것을 즐긴다. 어리둥절 두리번거리는 바보가 된다. 그래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다 잘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아이처럼 돌아다닌다. 나이가 들면 좋아지겠지 해도 여전히 나는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신호등 앞에서 서성거린다.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했다, 식품 코너를 둘러보면서 필요한 것이 있어도 들고 갈 생각에 다 포기했다. 오늘은 낙지가 메인이다. 생선 코너에 가서 생물 낙지를 샀다. 당근이랑 쪽파, 판 두부를 쇼핑 바구니에 넣었다,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은아들을 위해서 훈제 목심을 하나 더 추가했다.
딸기 장바구니에 쇼핑한 것을 다 넣으니 들고 가기 딱 좋은 무게다. 어려워했던 일 하나 해냈다는 자신감에 나 자신이 신통하고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남들이 알면 코웃음 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도전이다. 신호등 앞에서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흐뭇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토산지 나무 의자에 잠시 앉아 쉬면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늘 해낸 장한 일을 자랑했다. 잘했다고 하면서 무거운 것은 들고 다니지 말고 주말에 자기랑 가자고 걱정 반 칭찬 반 해준다. 주말에 오면 맛있는 낙지볶음을 해주겠다고 고마운 마음을 대신했다.
저녁에 낙지볶음을 해서 매콤달콤한 저녁을 먹었다. 아들이 식당에서 외식하는 기분이라고 냄새도 식당에서 먹어본 낙지볶음 맛이라며 맛있게 먹어준다. 이러니 내가 음식 할 맛이 난다. 오랜만에 매운 음식을 먹었더니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자식이 뭔지, 가까운 거리도 아닌 먼 마트까지 걸어가서 장바구니에 넣어서 다시 걸어서 집까지 왔다는 것이 놀랍다.
어려서부터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남자 같다고 할 만큼 봉지에 무엇을 들고 다닌 일은 없었다. 아들이 부탁하면 엄마는 다 해준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라서 너무 좋다.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들이 있으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