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산근린공원 #1
2022.12.27(화) 오후 1시경 서울 석플란트 치과병원 진료에 앞서 약 1시간 동안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도산 안창호 근린공원을 찾는다.
<도산공원, 도산기념관 정문>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20 신사동 649-9 (지번)
도산근린공원 배치도
1970년 3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 나라 자주와 독립을 위해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과
민중의 교화를 위한 교육정신을 국민의 귀감으로 삼게 하고자 도산공원을 조성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서울시는 강남구 신사동에 약 1만여평 공원을 조성하고,
1973년 11월 10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소를 이장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옮겨와 합장하면서 개원하게 되었다.
그 후, 강남구 청담동에서 논현동에 이르는 노폭 50m 연장 3250m의 신설가로를 도산대로로 명명하였다.
공원내에는 도산 선생 기념물로 동상 1기, 어록비 1기, 비문해설기 1기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3월 10일 이 곳에서 흥사단 및 도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도산 선생 추모 기념행사가 열린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개항 직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약관의 나이로 독립협회에 참여한 이래
평생을 조국에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문을 받아들이는 한편 교포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를 만들기도 했던 선생은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귀국, 이갑,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신민회>를 조직하고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 관련 혐의로 곤욕을 치르다 미국으로 망명,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 초대 총회장에 취임하고 기관지 <신한민보>를 창간했다.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 조직에 참여, 내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노동총장 등을 역임했고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1924년 다시 미국으로 망명, 흥사단 조직 강화에 힘썼다.
1926년에는 상해에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한 전진기지 건설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며 실패했고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폭탄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 2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철학은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국민운동을 통해 자주 독립을 이룩하자는
<민족개조론>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지금도 무실역행(務實力行 : 공리 공론을 배척하며
참되고 성실하도록 힘써 행할 것을 강조하는 사상)을 중시하는
흥사단 정신을 이어가는 후손들이 많을 정도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2002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프리웨이에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
2004년 '안창호 우체국'이 생겼으며 2012년 1월 애틀랜타 마틴루터킹센터 내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헌액되었다.
남가주대 한인연구소엔 안창호 선생의 가족이 살던 자택이 복원되어 있다.
도산 선생 말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