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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리이다(이조선)
[왕하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장군인데 문둥병자였다. 문둥병은 청결하지 않았을 때 걸리는 병이다. 주님이 문둥병을 고치실 때 깨끗해졌다고 말씀하면 나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만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왕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지만 왕도 어쩔 수가 없었다. 돈이 많아도 이 병은 고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집에 잡혀왔던 이스라엘의 하녀가 말하기를 우리 주인님이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가서 서시면 좋겠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소리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호통을 치고 야단을 쳤겠는데 나아만 장군의 부인이 그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뛰었다.
그 소녀에게 어떻게 이런 믿음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별볼 일 없는 사람 같아도 하나님은 이렇게 낮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 눈으로 보기에 별볼 일 없는 사람, 못난 사람, 약한 사람 같아도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 돈 많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이런 사람들만 따라가고 그거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나아만 장군을 이스라엘 나라로 보내요. 계집종으로 잡혀온 아이는 사마리아에 계신 우리 선지자 앞에 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아람 왕은 선지자라는 말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왕에게 친서를 써서 보냅니다.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을 만났습니다. 왕에게 자기 나라 왕의 친서를 내밀었습니다. 친서를 읽어보고 이스라엘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물어보죠. 야! 대관절 우리나라에 문덕병을 고치는 의사가 있느냐 너희들 그런 얘기 들어본 일이 있느냐? 진짜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 이스라엘 나라에서부터 문둥병자들을 싹 다 고쳤지. 이 나라의 문둥병자들도 못 고치고 있는데 대관절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소리를 듣고 문둥병자를 보냈느냐 그랬더니 신하들이 다 꿀먹은 벙어리 말을 못합니다. 자기들도 모르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비밀을 왕도 모르고 대신들도 모르는데 계집종 하나만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이 놀라운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너무 기가 막혀서 너희들 잘 생각해 봐라. 이게 병 고쳐달라고 보낸 게 아니라 틀림없이 우리하고 전쟁하자고 하는 소리다. 못 고쳐 보내면 왜 안 고쳤느냐고 군대를 보내서 쳐들어와도 할 말이 없단 말이죠. 이렇게 트집 잡으려고 하는 게 틀림없는데 큰일 났다.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 그래서 왕이 자기의 옷을 잡아 찢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말을 엘리사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왕이여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보내세요. 그가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엘리사가 이런 말씀을 왕에게 보냈더니 왕이 나아만 장군을 엘리사에게로 보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금 곱씹어 보야야 되는 말씀은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인데 이스라엘에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꽃입니다. 선지자들이 성경을 썼습니다. 이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가르쳐주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해주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11장 7절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예수님이 마지막에 선지자를 보려고 나갔느냐 그렇게 물으시고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고 친히 대답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이다. 선지자를 만나야 돼요. 그분이 우리에게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알게 해 주시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알게 해 주시니까 그래서 선지자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서 병을 고쳤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를 만나서 문둥병을 고치고 깨끗한 몸으로 자기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리다 하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선지자란 누구인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새롭게 배워야 하고 이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선지자란 누구인가?
첫째, 선지자란 유권적인 해석자다. 유권적이란 말은 권위가 있다는 말이다. 유권적 해석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해석이 돼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해석할 것이냐 중요하게 세 가지를 해석해야 됩니다. 선지자는 마땅히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왜? 선지자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가지고 성경을 기록을 했어요. 그러니까 해석도 선지자가 돼야 성경을 해석합니다. 다음으로 역사를 해석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해석하는 것은 선지자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선지자는 자연을 해석하는 사람이에요.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저 유대 땅에 임금이 나오셨구나 메시아가 오셨구나 이걸 알았어요. 우리는 이 자연계에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이다 이거를 해석할 수 있어야 되는데 선지자는 해석할 수 있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선지자는 만병의 대의사라야 한다. 세상 의사들은 고치지 못하는 것을 선지자를 찾아가 만났더니 그 선지자가 고쳤더라. 모세도 많은 병을 고쳤습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죽은 자를 살려냈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선지자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우리는 육신의 병만 병인 줄 알고 고치려고 하는데 사실 현대인들에게는 육신의 병이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병이 더 크죠.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이 나옵니다. 마음에 병든 사람은 선지자를 찾아가서 만나야 합니다.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변화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만병의 대의사예요. 이분이 선지자에게 능력을 주어서 병을 고치고 나라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셋째로 선지자는 누구냐 첫째는 뭐라고 그랬죠? 첫째는 유권적 해석자다. 둘째는 만병의 대의사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국방이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나라를 지키는 국방이기 때문이다.
50. 여호와의 복병
[대하20:20-23]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세일산 자손은 에돔족속인데 여호사밧 왕때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 세 나라가 연합군을 만들어서 이 조그마한 유대 나라로 쳐들어왔어요. 한 나라만 쳐들어와도 이기기가 힘든데 세 나라가 연합해서 쳐들어오면 여러분이 한번 여호사밧 왕이 되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세요.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서 무릎을 끓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세 나라가 연합해서 쳐들어옵니다. 나는 한 나라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님이 택하신 나라 하나님이 이제까지 인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나라인데 하나님 이 나라를 멸망시키실 겁니까? 이 나라를 살려주시옵소서. 여호사밧 왕은 기도할 줄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여호사밧은 기도의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들에게 주리라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적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우리의 이 땅을 다 차지하고 우리를 박멸시켜 버리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붙잡고 주님 앞에 은혜를 구합니다. 주여 우리를 살려주시는데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 약속을 지켜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또 옛날 솔로몬 왕이 이 성전을 짓고 봉헌 기도를 드릴 때 그중에 특별히 이 땅에 전쟁이 났을 때 우리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에 와서 기도하거든 하나님이 구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솔로몬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해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옛날 모세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광야에서 살 때 이 모압 족속, 암몬 족속, 에돔 족속들이 너희는 우리 땅을 지나가지 못한다고 길을 막았습니다. 그때 모세가 우리는 당신들하고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가려고 하는 것이니 길만 열어주세요. 우리가 길을 가다가 물 한 모금이라도 먹으면 반드시 값을 내겠습니다. 당신들 절대로 해치지 않을 것이니까. 길만 좀 빌려주십시오. 그렇게 사정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뭐라고 안 된다. 너희는 우리 땅을 절대로 지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빙빙 돌아서 먼 길로 갔어요. 옛날 모세와 맺은 약속 그것을 붙잡고 하나님 살려주세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어떡하시겠어요? 하나님은 옛날 아브라함과의 약속 솔로몬과의 약속 모세와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시고 내가 해준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좀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고 생각하고 찬양하는 부대를 만들어 제일 앞에 세워서 하나님께을 찬양하면서 나가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는데 무기도 없이 적군들이 치면 다 죽는 그런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찬양을 하면서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해주셨다고 그랬죠?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셨다. 복병이 뭡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복병을 하나님이 두셨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십니다. 진짜 복병은 속에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속에도 복병을 두셨어요. 평소에는 모르고 있는데, 우리가 찬송할 때, 기도할 때, 또 성경을 읽고, 전도할 때, 내가 무거운 십자가를 주고 고난당할 때, 교회에서 남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봉사하고 충성하고 애를 쓸때 복병이 일어납니다.
51. 참 이스라엘 사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르시는데 하나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을 불러내십니다. 우선은 선지자라고 그랬지만 사실 열두 제자는 사도에 속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교회에 몇을 세우셨는데 첫째는 사도요, 둘째가 선지자요 이렇게 나갑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에서 마지막 절 51절까지를 보겠습니다.
[요1:47-51]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실 때에 첫 마디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또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은 참 이스라엘이 있으면 거짓 이스라엘이 있다는 말이겠죠. 그러니까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말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사람 노릇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많으냐? 그건 물어보나 마나 뻔한 겁니다. 거짓이 훨씬 많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은 극히 적은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그랬어요. 거짓말로 백성들을 잘못 가르쳐가지고 멸망에 빠트리는 자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이스라엘 사람, 참말을 하는 사람, 진리를 가진 사람, 바른 말을 가르칠 사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로, 찾으시는 사람은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 바꿔 말하면 뭐가 됩니까? 진실한 사람, 사기성이 없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는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이라야 한다. 이 세상 많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들어 쓰실 때 이 백성들이 내가 택한 백성이다. 이들이 참 이스라엘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첫째가는 특징이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데 내 속에 간사한 것을 가지고 그것을 품고 있으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사람끼리 서로 사귐에 있어서도 가장 첫째로, 중요한 것이 믿을 신자죠 서로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이 믿음이 상실되면 거기에선 모든 인간관계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부 사이에도 서로 믿음이 깨지게 되면 부부가 깨지는 거죠. 친구 사이에 믿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둘째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누구냐?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나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은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나온 거는 창세기 32장입니다. 이제 날이 새면 야곱이 형 에서를 가서 만나야 되는데 에서가 군대를 끌고 와 야곱을 죽이겠다고 이렇게 온다는 소문을 듣고서 야곱은 얼마나 두렵고 떨렸는지 그래서 그날 밤 얍복강에서 밤을 새 기도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더라 이런 말로 설명은 했어요. 실제로 어떤 사람이 나타났겠죠. 그래 가지고 야곱을 붙잡고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란 무엇이냐? 기도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가지고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씨름을 해서 이기면 기도가 형통하고 승리하는 것이고. 씨름을 해서 못 이기면 실패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야곱은 밤에 나타난 사람을 붙잡고 밤새도록 씨름을 했는데 얼마나 끈질기게 얼마나 지독하게 열심히 씨름을 했는지 나중에 이 사람이 제발 좀 놔라 날이 새려고 하는데 내가 빨리 가야 되겠다. 그랬더니,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가실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래 너의 이름이 뭐냐 하고 물어보지 않아요. 너의 소원이 뭐냐 하고 물어보질 않고 너의 이름이 뭐냐 하고 물어봐요. 그랬더니,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야곱이라고 하지 마라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고 사람과 겨루어서도 이겼다 이런 뜻이라고 성경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 새 이름을 받았는데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워 씨름해 가지고 이기므로 드디어 받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기도해서 이긴 사람이라야 이스라엘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서 지면 이스라엘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 이스라엘은 누구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말씀했더니, 나다나엘이 깜짝 놀라가지고 아니 주여 내가 주님 만나는 게 오늘 초면인데 언제 나를 보셨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랬더니, 예수님 대답하시죠.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 이 말에 나다나엘이 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나를 보셨다고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뭐 했는데 그는 밤에 몰래 이 무화과 나무 밑에 와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와서 기도했던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데 그것을 예수님이 아셨다고 하니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아시느냐 사람들 몰래 은밀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을 보시고 아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냐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다 보라고 기도하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은 다 보지 못해도 하나님만 아시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그 사람이 참 이스라엘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지도할 때에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때에 새 이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참 이스라엘이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느냐?
로마서 2 28절 29절 보면 무릇 육신적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며 표면적 할례가 아니라 이면적 할례가 참 할례가 된다 하고 설명을 해요. 그러면 표면적 유태인은 뭐고 이면적 유태인은 뭡니까? 표면적 유태인은 육신에 혈통적으로 야곱의 자손으로 태어난 야곱의 열두 아들들 그들의 후손들, 이것을 우리는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에 유대 땅에 살던 사람들은 다 표면적 유대인들이죠. 표면적 유대인으로서 합격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태인을 찾으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만 유태인 혈통을 받은 그런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변화를 받은 새 사람이 되어야지만 참 이스라엘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 또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라는 아주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엄청난 말씀을 다 잊어버리고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다니면은 천국 가는 줄 아는데 이런 형식적인 신자는 말이에요. 육신적 유태인도 되지도 못한 주제에 형식적으로 또 왔다 갔다 이런 나이롱 신자들이 되어 가지고는 절대로 천국에 못 간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지 합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이면적 유태인이 되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이하에도 보면 바울은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죠. 첫째가 자연적 인간입니다. 이것을 육에 속한 자라고 설명했어요. 육에 속한 자가 있고 둘째, 육신에 속한 자가 있고 셋째, 신령한 사람이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육에 속한 자란 그냥 영어로는 내추럴맨입니다. 자연적인 인간입니다. 부모로부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전혀 변화받은 것이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도 있어요. 또 지식적으로도 훌륭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세상적인 명예 권세를 가지고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가 다 육에 속한 사람들, 자연적인 인간들입니다. 변화받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천국을 물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백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이 많아도 안 되고 얼굴이 예뻐도 소용없는 거고 지식이 많아도 소용없고 권세가 많아도 소용없고 아무리 인기가 좋고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그런다고 해서 천국 가는 거는 절대로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돼야 합니까? 신령한 사람이 돼야 하는데 바울은 육에 속한 자 그다음에 육신에 속한 자 그다음에 신령한 사람 이렇게 셋으로 나눴어요. 육신에 속한 자는 뭐냐 이 사람은 거듭나기는 거듭났는데 육신의 생각을 먼저 하고 육신의 요구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영적으로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이렇게 바울이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육신에 속해 있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세상 이익을 따라서 이리 흘러갔다 저리 흘러갔다 이렇게 방황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거죠. 근데 인제 신령한 사람이라면 그런 모든 거를 다 초월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 것으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고 의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누구냐?
이사야 41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야곱을 부르실 때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이렇게 부르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그렇게 부르세요. 그러시면서 이 지렁이 같은 야곱이를 변화시켜 놓으시는데 고 다음엔 이어서 너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스라엘 사람들아 라고 부르세요.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같이 나와요. 그런데 야곱이는 지렁이 같다고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다음에는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만들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참 이스라엘이란 누구냐 지렁이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와 같은 이런 사람으로 변화받은 사람이 참 이스라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지렁이같이 아무런 능력도 없었는데 새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 같이 작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고 다 날려버리고 큰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어 버리는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의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노라고 형식적으로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되지 말고 정말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아서 엘리사가 엘리아를 따라다니면서 갑절의 영역을 소모하고 영역을 받아서 이 거룩한 사역을 감당해 나갔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 성도들도 위로부터 폭포수같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다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담해 나갈 수 있는 신령한 사람, 능력의 사람, 그리고 지혜의 사람, 진리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고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 예수여 내가 여기에 왔습니다. 나에게도 이 큰 은혜를 부어주시고 내가 이제까진 거짓 이스라엘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참 이스라엘이 되도록 주님 새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되고 간절하고 진실한 소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2.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여러분 예수님을 누가 죽였죠?
옛날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았어요. 그러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이 짐승을 죽였는지 알고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 근데 그런 거 모르겠다 그런다면 그거는 짐승을 안 죽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되 흐리멍텅하게 믿지 말고 정말 체험을 가지고 믿자.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가롯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뽑아서 사도의 수에 포함시켰는데 조건이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제까지 우리와 함께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야 된다. 이것이 첫째 조건이었다. 둘째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할 사람을 뽑자. 그러니까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다. 너희가 예수님을 죽였지만 그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그냥 살아나시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 그 함께하시는 증거가 바로 성령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된다. 성령 충만이 예수 충만,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말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예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 첫 단계가 예수님을 누가 죽였느냐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말 죽이기 싫었다.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꿨다고 하면서저 사람을 절대로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다. 빌라도도 자기가 심문해 본 바로는 죄를 찾을 게 없어 안 죽이려고 하는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협박을 해가면서 죽이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죽이지만 대야에 물을 떠다가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모르니 너희가 당해라. 그때 그들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담당하겠다고 소리 지른다. 그래서 죽였는데 왜 빌라도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우는가? 사도신경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로 고백한다. 왜 예배 시간마다 그런 소리를 하느냐? 이게 과연 바른 신앙 고백이냐 그러니까 침례교는 절대로 이런 거 못합니다. 자기들이 죽여놓고 빌라도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 나쁜 놈들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고백은 못 쓰겠다고 하는 거죠. 정치적 책임으로 봤을 때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레위기 4장은 누가 죄를 지었느냐에 따라서 넷으로 나눕니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이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때, 그다음에 둘째로 등장하는 것이 전체 회중이 죄를 지었을때 셋째는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넷째 평민이 죄를 지었을때로 나뉘어진다.
가장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이 제물이다.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데 제물은 내 마음대로 아무거나 드리는 거 아니라 일년 된 숫송아지를 드립니다. 둘째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송아지를 드리고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는 수송아지,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는 암 염소, 이렇게 다릅니다. 내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떤 짐승을 가져와야 하나요? 수송아지입니다. 그 다음 머리에 손을 얹고 나의 죄를 다 고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 팔을 타고 내 죄가 이 짐승에게 들어갑니다. 이것이 믿어집니까? 이것이 믿어져야 제사가 됩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죄를 고백해요. 그러면 내 죄가 이 짐승 속에 다 들어가 나의 죄는 없어진다. 그다음에 죄를 뒤집어쓴 제물은 죽어야 하고 나는 죄가 없어졌으니 안 죽어도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제물은 누가 죽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이 죽인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죽여야 하는 거예요. 왜 본인이 죽이라고 합니까? 내가 이 짐승을 죽일 때 이 짐승을 길거리에서 사오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사람이 자기 집에서 기르던 짐승을 끌고 와야지 열흘이 걸리거나 한 달이 걸리거나,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그렇게 사랑하고 기르던 그 짐승을 끌고 와서 내가 죽여야 되는 것이다. 그 짐승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다시는 죄 지으면 안 되겠다. 이 마음에 결심이 생겨야죠. 그렇게 돼야 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시는 거죠.
특별히 오늘날 교회가 다 형식으로가 변해서 사람 듣기 좋은 설교, 사람이 보기 좋은 예배들 드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하신지,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과연 받아주실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교회가 다 변질되어간다. 그래서 예수님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다.
레위기 4장 속죄의 제의에 대한 말씀을 읽어나가다가 답을 찾았어요. 네 가지 속죄 제사중에 둘째 온 회중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이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나 하나를 위한 속죄의 제물도 되시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한 제물로 죽으셨다. 그러니까 이 네 가지의 제사 중에 몇째가 해당이 됩니까? 둘째에 해당이 되는 거예요. 온 회중, 백성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제사 드리느냐? 죄 지은 사람이 손 얹고 기도하고 죄 지은 사람이 이 짐승을 죽여야 된다. 그런데 둘째는 좀 이상하잖아요. 백성 전부가 죄를 지었는데 누가 죽여야 돼요 그러면 백성이 전체가 죄를 지었는데 그 백성이 다 와서 죽입니까? 성경에서는 장로들이 죽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두 그룹이 있는데 제사장과 장로들이다. 제사장은 종교적 지도자, 장로는 정치적 지도자이다. 백성들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장로가 더 크다고 말씀하신다. 제사장들도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서 죄 짓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가 하면 이 정치권력을 가진 장로들도 백성들 죄 짓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거예요. 정치가들의 책임은 백성들이 죄를 짓지 못하도록 자꾸 경고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질서가 잡힌다. 그러니까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물론 제사장들의 책임도 크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은 장로들에게 있다고 보시는 거예요. 장로들이 소에게 손을 얹고 죄를 구하고 그다음에 장로들이 이 소를 죽여야 된다. 그런데 만약에 사도신경에 유대인 장로들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그렇게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면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면 예수님은 누구의 죄를 위한 제물이 될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죽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은 정치 지도자 장로격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유대교 장로들이 이방인 장로인 빌라도에게 압력을 넣어가지고 예수를 죽여라, 예수를 죽여라. 나는 못 죽이겠다. 안 돼. 죽여. 너 안 죽이면 널 황제한테 고발할 거야. 그래서 사형선고를 내린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유대인들만을 위한 제물이 되신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람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면 그 사람은 이방인 장로격으로 유대인 장로들뿐만 아니라 유대인 제사장들까지 합해서 이 사람들과 같이 협의를 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답으로 예수님을 죽인 것이 된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한 제물이 되시냐? 온 인류를 위한 제물이되신 것이다. 그것을 주님이 가르쳐 주셨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이 한마디의 고백이 얼마나 엄청난 뜻을 가지고 있는지 이걸 우리가 알지 못하고 그냥 건성으로 치워버렸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이게 잘못됐다고 공격을 했다. 깨닫고 보면 이 고백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들어 있구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기에 나 같은 한국 사람들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을 수가 있는 거죠. 저 동쪽 끝에 사는 유대 나라하고 얼마나 거리가 멉니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알기나 했습니까? 누가 뉴스를 전해주기를 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거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한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누구 하나 눈이나 깜짝했겠어요. 그런데 2천 년이 지난 이제 와서 우리가 새롭게 깨닫고 보니 사도신경을 만드는 그 사람들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장로들이 죽였다고 하지도 않고 제사장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하시지도 않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고백이 진실한 것이다.그래서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첫 번째 정치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 둘째 제사법상으로 볼 때 누가 예수님을 죽여야 했느냐? 셋째 죽이는 사람의 심리 상태로 볼 때 누가 죽어야 옳은 것이었느냐? 예수님을 향해서 죄가 없다고 선포하고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죽어야 되는데 생각하는 그 사람의 제사를 하나님은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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