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 농부 하나님
땅이나 집이 삶의 터전과 보금자리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나 재산의 가치로 여겨지는 안타까운 세상을 살고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왜곡되고 과장되어 본연의 모습과 본질이 사라졌지만, 살기 위해 세상의 풍조나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대로라면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이 중한지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지나치지 않다. 도시든 농촌이든 상황이 좋지 않다. 안전지대가 없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면 농촌이나 지방이 문제인 것 같지만 다르지 않다.
극심한 기후변화로 농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농사 자체가 위태롭고 불안하다. 농업을 놓고 이렇게 불안해하거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가, 파종부터 수확까지 심상치 않은 기후 위기로 농촌은 혼란스럽다. 기후 약자라는 말에 난민이나 가난한 나라만이 아니라 농업인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농사가 잘되면 값이 폭락하고, 흉년이 되면 거둘 것이 없어 피해다. 농민을 살리고 지켜 내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생산과 소비의 수요조사, 유통의 과정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불가능한 일인가 궁금하다. 국가의 정책에서 농업이 천대를 받고 뒷자리에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자본과 대기업은 돈만 된다면 뭐든 한다. 올해 초 벨기에, 독일,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 인도 등 전세계 농민들의 시위가 거칠다. ‘농부 없이는 식량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구호와 농부가 빠진 친환경 농업정책을 격하게 반대했다. 자본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과 협력하여 디지털 농업 세상을 꿈꾸지만, 속내는 이윤이다. 농부가 경작을 줄이거나 경운하지 않으면 더 좋아한다. 그렇게 사들인 농지에서 거두는 농산물은 유전자를 조작한 GMO들이다.
농민들은 ‘먹는 행위는 다시, 생태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 가짜 식품이 아닌 진짜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를 살려야 하고 지구와 우리를 치유하는 음식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식량에 대한 위기와 절대적 가치 앞에 농민들은 가슴 아픈 한숨을 내 쉰다.
농촌과 농민은 하나님을 닮은 세상의 희망으로 땅값이 아니라 흙값을 말하고, 집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의 보루여야 한다. 간디는 “어떻게 흙을 뒤집고 관리하는지를 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잊는 것이다.”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생명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의미를 잃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거기 계실 것이다. 밥상과 먹거리는 누구에게나 최고의 선물이요 은총이다. 잠시도 멀리 둘 수 없는 모든 생명체의 목숨줄이다. 내 아버지는 ‘농부 하나님’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희망을 읽어내야 한다.
위기의 때인 지금, 생각을 확 바꾸어 보자. 농촌은 결국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여기가 생명의 자리요 희망이라고 줄을 설 곳이다. 목숨과 삶을 생각하고 돈이나 성공보다 중요한 자신을 찾는 사람에겐 그렇다. 중요한 건 도시가 아니라 농촌이다. 도시 없는 농촌은 가능하지만, 농촌이 없는 도시는 불가능하다. ‘농촌이 마침내 도시를 구원할 거야’라는 말은 창조주의 메시지이다. 교회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목회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장이요 공동체로서 얼마든지 변화하고 변신해야 한다. 예수와 복음의 정체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지향성을 다양하게 풀어감으로 시대의 희망을 심고 나누어야 한다.
세상의 희망은 농부이신 하나님께 있다. 고로 농업과 농민에 대한 위상과 격이 교회로부터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자본에 예속되고 도시에 대한 열등감에 빠진 농촌이 아니라 온전한 시골<새로운 시작, 제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공간/ 니체>로서 생명과 태초의 먹거리가 있는 진짜 은총의 자리이다. 생태 도시 쿠바의 아바나처럼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씨앗을 뿌리거나 농사를 우선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