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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박 화 목
소녀의 두 눈은 까얗고 꿈을 보는 듯 빛났읍니다.
그러나 소녀의 얼굴은 무척 여위었고 사뭇 희었읍니다.
지금 하얀 눈이 나풀나풀 내리는 창에 바투 침대를 놓고 소녀가 누워 있었기 때문인지 소녀의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읍니다.
소녀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누워 있었읍니다.
아마 한 달하고 열흘은 더 되었나봅니다. 그러니까 꼬박 마혼 날을 병을 앓고
누워 있었융니다.
〈소아마비〉
이것이 의사선생님이 소녀의 어머니에게 말한 병 이름이었읍니다.
“나의 귀여운 딸 혜순이가 소아마비에 걸리다니------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린 딸이….
하고 소녀의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읍니다.
그러나 이러고만 있어선 안 된다.
하고 어머니는 어린 딸의 병을 힘껏 간호하였읍니다. 의사선생님도,
“제가 힘자라는 데까지 치료해 보겠읍니다. 과히 염려마십시오. 다리 하나가 절게 되겠지만, 그리 크게 절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고 혜순이의 어머니를 위로하였읍니다.
어린 소녀의 이름은 박 혜순. 일곱 살. 오는 봄이면 국민학교 1학년 또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아마비를 앓고 몸이 무척 여위었으니까 걱정이죠.
가을 무렵에 앓기 시작한 혜순이의 병은 어느덧 겨울철에 접어들었으나 위험한 고비는 다 지나갔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었읍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혜순이의 무척 여윈 몸이 어서 튼튼해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혜순이가 누워서 바라보는 유리창에, 노랗게 물든 가랑잎 두 잎이 떨어지더니, 소슬한 바람이 불어와서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다 몰아가고, 오늘은 하얀눈이 소리없이 내리기 시작하였읍니다.
하얀눈은 사뭇 수많은 하얀 나비들처럼 공중에서 서로 얽히고 춤을 추고 하다가 창가에 사뿐히 내려앉은 것이었습니다. 저 눈송이들은 하늘 어느 곳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일까?
하고 어린 혜순이는 그 하얀 눈송이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였읍니다.
혜순이의 까만 눈동자는 서로 얽히고 춤을 추고 하는 수많은 하얀 나비들 같은 눈송이들을 쫓아서 공중으로 헤맸읍니다.
어쩌면 혜순이의 꿈을 보는 듯한 까만 눈동자 속에서도 하얀 눈이 나풀나풀 내리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눈송이들은 혜순이가 지켜보고 있는 유리창 앞에 가만히 내려와서 부딪치곤 하였읍니다.
---문 좀 열어주셔요, 아가씨?
하고 눈송이들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읍니다.
혜순이는 일어나서 유리창을 열어주고 싶었읍니다.
눈송이들이 놀러 들어왔으면 하고요.
그러나 아까 외삼촌네 집에 빨리 갔다와야겠다고 나가시면서 어머니가,
“혜순아, 어머니가 외삼촌을 만나러 나갔다올려는데, 너 혼자서 심심할 거야. 심심하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의사선생님이 네가 일어나고 싶은 땐 꼭 어머니가 부축해주라고 그러셨어. 그러니까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해. 내가 얼른 다녀을 테니까------.”
하고 다짐을 한 것이었읍니다.
저녁녘이 되니까 창문턱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읍니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담장 위랑 이웃집 지붕들 위랑 또 지붕들을 넘어서 아주 멀리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랑 온통 하양게 눈이 덮여서 하얀 눈의 나라가 되었읍니다.
--아마 우리 집 대문 바깥에도 눈이 흠뻑 쌓였을 거야.
하고 어린 혜순이는 생각합니다.
“눈이 흠뻑 쌓였구 말구. 대문 바깥뿐만 아냐. 골목길에두 발목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쌓였어요.”
하고 혜순이가 누워 있는 방 어느 구석에서 누가 이렇게 대꾸하는 것 같았읍니다. 혜순이의 귓가에 그런 말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으니까요.
“어머나! 우리 집 골목길에 발목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쌓였어? 눈사람을 만들었으면 신나겠네!”
하고 이번엔 혜순이가 혼자서 가만히 중얼거렸읍니다.
“그래 그래. 눈사람을 만들자꾸나.”
하고 또다시 누가 대답하는 것 같았읍니다.
혜순이는 고개를 돌려서 방안을 휘둘러보았읍니다.
천정에 수세미처럼 대롱대롱 달린 전등이 눈에 띄었읍니다.
또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띄었읍니다. 그리고 어머니 옷들이 걸려 있었읍니다.
그뿐 아무도 없었읍니다.
“째깍 째깍 째깍------.”
이것은 괘종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째깍 째깍 째깍------.”
괘종시계의 초침소리가 아까보다 좀 더 또렷이 혜순이의 귓가에 들려왔읍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마 어머니가 눈을 흠뻑 맞으시면서 집으로 돌아오실 거야.
혜순이는 시선을 다시 창문 쪽으로 돌리면서 생각합니다.
하얀 꽃잎사귀 같은 하얀 눈은 그칠 줄 모르고 그냥 내려고 있었읍니다.
눈송이들은 여전히 혜순이가 지켜보고 있는 유리창 앞에 내려와서 부닥치곤 하였읍니다.
“아마 눈이 밤까지 내리려는가봐. 밤새도록 하얀 눈이 내렸으면 좋겠어------.”
혜순이는 지난 겨울 어느 눈이 많이 내렸던 날을 생각해내었읍니다. 그날에도
정말 눈이 흠뻑 내렸으니까요.
어린 혜순이가 동네 조무라기 아이들과 함께 눈덩이를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었던 일도 생각에 떠올랐읍니다.
어쩜 나이어린 귀여운 혜순이가 그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서,
“호! 고 눈사람 묘하게 생겼다!”
하고 지나가던 동네사람들이 꼬마 눈사람을 보고 한마디씩 하였읍니다.
“이 눈사람은 제 동생이에요.”
하고 혜순이는 제가 만든 눈사람을 어머니에게 또 동네 조무라기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거든요------.
그날 밤 혜순이는 감기에 걸려서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꽁꽁 앓았읍니다.
꽁꽁 앓고 누웠으면서도 밤이 지나는 동안 꼬마 눈사람이 깨뜨려지지 않을까 하고 사뭇 그것이 걱정이었융니다. 동네애들이 심술이 나서 발로 툭 차버리면 눈사람은 그만이니까요------.
다음 날도 혜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감기약을 먹고 하룻밤을 더 지나고 난 뒤에야 감기가 나았읍니다.
혜순이가 얼른 대문 밖을 나가보았을 땐 골목길엔 눈도 깨끗이 쓸어버렸고 꼬마 눈사람도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았읍니다.
꼬마 눈사람이 없어진 것을 알고 혜순이는 엉엉 마구 울었읍니다.
어린 혜순이가 눈내리는 창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골몰히 하고 있을 때다시금 혜순이의 귓가에,
“혜순아!”
하고 누가 부르는 음성이 가만히 들려왔습니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를까?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하고 혜순이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읍니다.
한번 두번 고개를 기웃거렸읍니다.
수세미처럼 대롱대롱 달린 전등, 괘종시계, 벽에 걸린 옷들------ 아까 보았던 그대로 눈에 뛸 뿐 방안에는 혜순이외에 아무도 없었읍니다.
---참 이상도 해라.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은 분명히 들었는데·----- 혹시 저 괘종시계가 말을 할 줄 아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혜순이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였읍니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괘종 시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읍니다.
“째깍 째깍 째깍------.”
괘종시계는 여전히 초침을 돌리고 있었읍니다.
그때 또다시,
“혜순아! 어딜 보구 있는 거야? 나 여기 서 있어.”
하고 누가 말하는 음성이 혜순이의 귓가에 더 가까이 들렸읍니다.
이번엔 그 음성은 바로 유리창가에서 들리는 듯하였읍니다.
혜순이는 가늘게 놀라면서 또 고개를 유리창 쪽으로 얼른 돌렸읍니다.
“어머!”
혜순이는 유리창 밖에 조용히 서 잇는 한 어련 소녀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혜순이보다 조금 키가 작을까 말까 한 혜순이의 나이 또래의 그러니까 혜순이의 동무가 될 듯싶은 그런 어린 소녀였읍니다.
어린 소녀는 하얀 옷을 입고, 머리카락도 하얀눈을 맞아서 사못 하얗습니다.
그리고 살결도 회고 얼음같이 맑고 부드러웠읍니다. 오직 두 눈동자만 하늘의 초록별같이 파랗습니다.
하얀 소녀는 입가에 짧은 웃음을 띠고 파아란 두 눈을 깜박이면서 유리창 너머 혜순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어머! 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가 했어. 네가 그랬구나!”
하고 혜순이가 말하였읍니다.
“그래 나야.”
하고 하얀 소녀가 대답하였읍니다.
“네가 누구니?”
혜순이는 지금 저 창밖에 서 있는 소녀가 이웃에 사는 동무가 아니고 낯설고모르는 소녀인 것을 깨달았읍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기도 하였읍니다만, 그러나 모르는 얼굴이었읍니다.
그러니까 혜순이가 하얀 소녀의 이름을 모르거든요.
“네 이름이 뭐니?”
하얀 소녀가 아무 대답이 없어서 혜순이가 다시 물었읍니다.
“내 이름은 말야------ 내 이름은------”
하고 하얀 소녀는 말 끝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읍니다.
“그래 뭐니?”
“혜순아------ 내 이름은 없어. 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단다.”
“이름이 없는 사람도 있담. 그래 너는 어디서 왔니?”
“하늘나라서 왔어.”
“어머나! 저 눈이 내리는 하늘나라 말야?”
혜순이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읍니다.
“그렇단다. 저 하얀 눈과 함께 내려왔단다. 혜순아, 네가 심심해 하니까 같이 놀아주려구 찾아온 거야.”
하고 하얀 소녀의 음성은 어쩌면 고양이 털처럼 부드러웠읍니다.
“그건 정말 고맙구나. 네가 유리창을 열구 들어오렴. 나는 일어날 수가 없단다.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나하구 같이 놀아도 괜찮아. 여기 그림책두 있어.”
하고 혜순이는 하얀 소녀를 향하여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읍니다.
그런데 하얀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읍니다.
“혜순아, 나는 방안에 들어갈 수 없어. 따뜻한 방에 들어가면 금시 녹아버리는걸.”
창밖에 서 있는 하얀 소녀는 혜순이가 누워 있는 방안을 사뭇 부러운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읍니다.
하얀눈이 수북이 쌓인 유리창 사이로 소녀의 하얀 얼굴이 더욱 달같이 떠올랐읍니다.
어쩌면 그 하얀 소녀는 지난해 이맘때 혜순이가 골목길에 만들어 세웠던 눈사람 같았읍니다.
아니 그 눈사람이 다시 살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혜순이가 독한 감기에 걸려 이틀 밤을 앓고 누웠다가 나와보니까 혜순이가 만든 눈사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거든요.
정말 그 눈사람이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갔다가 저 하얀 꽃 이파리와 같은 하얀 눈송이들과 함께 다시 땅 위로 내려왔나봐요. 어린 혜순이는 맘속으로 꼭 그럭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래서 창밖의 하얀 소녀를 바라보면서,
“얘얘, 너 작년의 애가 아냐?”
하고 물었읍니다.
작년의 그 애란 혜순이가 만든 일이 있는 꼬마 눈사람을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래요, 지난해 겨울에 언니가 만든 눈사람예요.”
하고 하얀 소녀가 대답하였읍니다.
“어머? 너두 키가 컸구나!”
“그동안 일 년이 지나잖았어?”
“그래 여름 동안에는 어디 갔었니?”
하고 혜순이가 다시 묻는 말.
“하늘나라에 있다가 왔어. 하늘나라가 내 고향이에요.”
하고 하얀 소녀는 초록별 같은 두 눈동자를 깜박였읍니다.
이런 신기한 일이 있을까? 혜순이가 만든 눈사람이 지난해 한 해 동안 키도 자라구 또 말도 할 줄 알구------ 정말 혜순이의 동무가 되었나봐요.
혜순이는 눈소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정말 즐거웠읍니다. 창 바깥엔 꿈길처럼 그냥 하얀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방안에 들어와서 나하구 얘길 좀 오래오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혜순이가 혼잣말 비슷이 하자, 눈소녀가,
“그러지 말구 혜순아, 나하구 마당가에 나와 놀자꾸나.”
하고 하얀 손을 들어 손짓하는 것이었읍니다.
“어머! 난 일어날 수가 없단다. 병을 앓았기 때문에 다려 하나가 쩔름거려.”
하고 혜순이가 말하니까 눈소녀는 조용히 웃으면서,
“그건 염려없어. 내 손을 잡으면 날 듯이 걸어다닐 수 있어.”
하고 말하였읍니다.
“정말이니?”
“그럼 정말이구 말구------ 내 손을 잡아봐?”
“내가 네 손을 어떻게 잡니? 너는 창밖에 서 있는걸.”
“창을 조금만 열어줘요. 내가 손을 디밀께.”
“그래.”
혜순이는 상반신을 일으켜 유리창을 조금 열었읍니다. 찬공기가 새어 들어왔읍니다. 그리고 찬공기와 함께 눈소녀의 하얀 손이 들어왔읍니다.
혜순이는 그 손을 잡았읍니다.
눈소녀의 손은 산뜻하니 찬손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 같았읍
니다.
“일어나봐!”
하고 소녀가 말하였읍니다.
혜순이는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읍니다.
“어서 빨리 창밖으로 나와요.”
하고 눈소녀가 말하였읍니다.
혜순이는 눈소녀의 손을 꼬옥 잡고 한 발자국 걸었읍니다.
이상하게도 걸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날아가는 듯싶었읍니다.
다리 하나가 절름거리지도 않았읍니다.
--이건 참 이상한데----j.
혜순이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눈소녀를 바라보았더니 눈소녀는 생글생글 웃고만 었잖겠어요-----.
다른 한손으로 유리창을 드륵 열었읍니다.
유리창도 가볍게 열리는 것이었읍니다.
유리창이 열리니까 창 바깥의 광경이 눈망울에 가득히 들어왔읍니다.
눈소녀의 얼굴도 더욱 똑똑히 보였읍니다.
눈소녀의 얼굴은 사뭇 꿈속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신비스러운 것이었읍니다.
어서 밖으로 나오라는 듯 눈소녀는 혜순이의 손을 잡아끌었읍니다.
어느새 혜순이는 창밖 하얀눈이 수많은 나비들처럼 흩날리는 속에 서 있었니니다.
하얀눈이 혜순이의 머리카락 위에 사뿐이 내려앉았읍니다.
그런가 하면 콧등에도 내려앉고 손잔등에도, 어깨위에도 하얀눈이 사뿐사뿐 내려앉았읍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싸늘한 하얀눈이 포근한 것같이 느껴졌읍니다.
혜순이는 문득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이 났읍니다.
“얘, 춤을 추어보자꾸나.”
하고 눈소녀에게 말하였읍니다.
“맘대로 하렴. 그렇지만 내 손을 꼭 잡아야 해요.”
하고 눈소녀가 대답하였융니다.
“그건 왜 그러니 ? 내가 절름거릴까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지?”
하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다리를 눈소녀가 괜히 걱정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읍니다.
“하두 오래 누워 있고 보니까 자꾸만 뛰어다니고 싶어.”
혜순이가 깡총깡총 뛰어보았읍니다.
절름거린다고 의사가 말한 그 다리가 아무렇지 않았읍니다.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고 얼마든지 뛰어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읍니다.
--이런 힘을 내 몸 어디다 간직해두고 있었담.
하고 혜순이는 이렇게 눈속을 다시금 뛰어다닐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새삼 놀라는 것이었읍니다.
혜순이의 방안에 환히 켜논 전등불 빛이 유리창으로 강물처럼 흘러나와 눈속을 뛰어놀고 있는 두 소녀를 꿈속에서처럼 비췄읍니다.
혜순이의 어머니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거예요.
그런데 날이 아주 저물어서 바깥이 어둑어둑해졌는데 혜순이의 어머니는 왜 안 돌아오실까?……
그러나 어린 혜순이는 눈소녀와 손을 서로 잡고 하얀눈 속에서 뛰어놀기에 정신이 없었읍니다.
“아 참 재밌다!”
하고 혜순이가 외쳤읍니다.
“인젠 그만 뛰어라!”
하고 눈소녀가 말하였읍니다.
“다시 병이 더칠까봐 나더러 방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거지?”
하고 혜순이는 눈소녀의 얼굴을 돌아보면서 눈을 흘기었읍니다.
“아아니.”
“그럼?”
“나하구 저쪽으로 가보잖겠니?”
“저쪽으로?”
“응.”
혜순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였읍니다.
“저쪽에는 왜 가자는 거니?”
하고 혜순이가 물었읍니다.
“가보면 알어.”
눈소녀는 혜순이의 손을 가만히 잡아끌었읍니다.
혜순이는 이상한 힘에 끌리는 듯이 끌려갔읍니다.
어느덧 혜순이는 눈소녀의 손을 꼬옥 잡고 하얀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었읍니다. 잠옷바람인데도 춥지 않았읍니다. 발도 시리지 않았읍니다.
---어쩌면 눈이 솜같이 포근할까?
하고 혜순이는 이상하기만 하였읍니다.
---눈길을 걸어가면서도 발이 시리지 않는 까닭은 내가 눈소녀의 손목을 꼬옥 잡고 있기 때문일까---
눈소녀의 손목에는 무슨 신비한 힘이 있어서 그 손목을 꼬옥 잡고 있는 혜순이의 손목으로 흘러오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고 보면 혜순이가 사뭇 춤을 추며 가는 것 같은 가벼운 발걸음도 이상하잖겠어요.
하얀 오솔길에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혹은 눈내리는 저 구름을 뚫고 달빛이 새어오는 것인지 한줄기 희미한 빛이 혜순이가 걸어가는 길 앞을 비췄읍니다.
썰매를 타고 씨잉 달리고 싶은 하얀 오솔길은 끊이잖고 이어갔읍니다.
돌아다보니까 혜순이의 집도 또 혜순이네 집이 있는 동네도 보이지가 않았읍 니다.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이 가려서 안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혜순이는,
---여기가 어딜까?
하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얘, 여기가 어디니 ? 그리구 우리가 어딜 가는 거니?”
하고, 혜순이가 물었읍니다.
“글쎄, 어디라구 할까요? 그냥 눈길을 걸어가는 건데.”
하는 눈소녀의 대답이었읍니다.
“어머, 어디로 가는 건지 알아야 하잖아?”
하고 혜순이가 눈이 동그래지니까 눈소녀는,
“염려마, 내 손만 꼭 잡고 있으면 아무 일 없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금시 돌아갈 수도 있어요.” l
하고 대답하면서 생글생글 웃는 것이었읍니다.
혜순이가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혜순이의 발에 밟히는 눈송이들이,
“아가씨, 어서 오세요.”
“아가씨, 어서 오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읍니다.
--아마 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눈소녀가 살고 있는 하늘나라 집이 있는지도 몰라------
하고 혜순이는 생각하였읍니다.
얼마를 걸었을까. 하얀 오솔길은 어느 숲 사이로 접어들었읍니다.
혜순이가 다시 물었읍니다.
“얘, 어디로 가는 거니 ? 말 좀 해주렴.”
“다 왔어.”
하고 눈소녀가 대답하였읍니다.
“혜순 언니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가는 건데 뭐------”
“내가 가고 싶어하던 곳이라니?”
“이제 가보면 알아요.”
혜순이와 눈소녀는 조금 더 걸어갔읍니다.
내리던 눈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치고 환한 달빛이 눈길 위에 비쳤읍니다.
달빛이 눈에 반사되어 하늘의 별들이 땅 위에 떨어진 것 같았읍니다.
또 나뭇가지에 쌓인 눈 위에도 환한 달빛이 비쳐서 별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얘 정말 여기가 아름답구나. 여기가 대체 어디야?”
하고 혜순이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하였읍니다.
“여기가 말야, 우리 마을이야.”
하고 눈소녀의 대답이었읍니다.
“우리 마을이라니 ?”
“우리 눈사람들이 사는 동네 말예요.”
“어머나, 눈사람들이 사는 동네람 하늘나라에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여기가 하늘나라지 뭐니?”
혜순이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읍니다. 눈소녀는 손목을 잡고 눈내리는 하얀 오솔길을 걸어온 것인데 눈사람들의 고향인 하늘나라에 온 것이라고 하잖겠어요.
그러고 보면 하얀 오솔길이란 혹 꿈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읍니다.
어쩌면 지금 혜순이가 서 있는 곳의 경치란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광경 같았읍니다.
“정말 여기가 하늘나라야?”
“그럼.”
“거짓말 아냐!”
“거짓말 아냐!”
혜순이는 지금 신비스런 기분에 잠겨 있었읍니다.
눈송이들은 아까처럼 설레이는 것이 아니고 고요히 떨어지는 것이었읍니다.
구름 사이로 비쳐오는 휘영청한 달빛이 눈송이마다 비쳐서 사뭇 하늘의 아기별들이 소리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읍니다.
“혜순아? 춥지 않아?”
하고 눈소녀가 물었읍니다.
“아아니.”
하고 혜순이가 대답하였읍니다.
여기서는 길바닥에 소복이 쌓인 눈더미가 차가운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양털처럼 혹은 눈부신 흰구름처럼 포근한 것이었읍니다.
“여기가 눈사람들의 마을이람 너희 집도 여기 있게?”
하고 혜순이가 새삼 생각이 난 듯 물었읍니다.
“그럼.”
“어머! 어디?”
“저어기야.”
하고 눈소녀가 다른 한손을 들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읍니다.
나무숲 사이로 한줄기 환한 빛이 흘러오고 있었읍니다.
그 빛줄기는 저만큼 멀리 어느 아담한 오두막집 창문에서 흘러오고 있었읍니다.
오두막집--- 여러분이 외국 어느 경치 좋은 산위에 세운 조그마한 산장을 상상하시면 되는 거예요.
통나무를 그대로 이용해서 지어논 높은 굴뚝과 작은 창문이 있는 오두막 집------.
굴뚝에서 한줄기 파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읍니다.
“저어기가 우리 집이야.”
혜순이는 눈소녀에게 끌려 오두막집 앞으로 가까이 갔읍니다.
정말 서양 그림엽서에 보는 것같이 아름다운 오두막집이었읍니다.
“어머나! 정말 아름다운 집이구나!”
하고 혜순이가 다시금 감탄할 법도 하였읍니다.
오두막집--- 그 뒤에는 별들이 낮게 내려 있고 눈이 쌓인 산봉우리가 멀리 바라보였읍니다.
뜰에는 이름모를 꽃나무들이 하얀눈이 흠뻑 쌓인 속에서도 아름다운 빛깔의 꽃을 피우고 있었읍니다.
혜순이는 더욱 두 눈이 휘둥그래질 뿐------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못하였고, 눈소녀에게 끌려갈 뿐이었읍니다.
어느새 오두막집 문 앞에 다 왔읍니다.
집안에서 누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세월아 세월아
물레바퀴야 돌아라,
세월이 다 감기면
나는 꿈나라로 간단다------
하고 노래를 불렀읍니다.
혜순이는 이 노랫소리를 듣자 멈칫 발걸음을 멈췄읍니다.
노랫소리는 사뭇 자장가 같기도 하고 또 산골을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 같기도 하였읍니다.
혜순이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읍니다.
세월아 세월아
물레바퀴야 돌아라.
세월이 다 감기면
나도 꿈나라로 간단다.
하고 노랫소리는 다시금 들려왔읍니다.
혜순이는 눈소녀에게,
“얘얘, 누가 부르는 노랫소리니?”
하고 물었읍니다.
눈소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응 저 노래는 말야, 우리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예요.”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어쩌면 꿈을 부르는 것 같은 노래구나!”
“응, 혜순아, 우리 할머니는 추억의 실을 뽑아서 꿈을 짜가지구 착한 아이들에게 꿈을 나눠준단다.”
“어머나! 꿈을 짜다니?”
하고 혜순이가 두 눈이 휘둥그래서 물으니까, 눈소녀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하고 혜순이의 손목을 끌었읍니다.
혜순이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읍니다.
그리고 오두막집 문앞에 섰읍니다.
창문틈으로 한두 줄기 빨간 창문에 불빛이 새어나와서 하얀눈 위에 떨어져 빨간 선을 그어놓았읍니다.
눈소녀가,
“할머니!”
하고 불렀읍니다. 방문이 스르르 열렸읍니다.
금시 방안의 환한 불빛이 강물처럼 밀려나와서 혜순이의 눈을 부시게 하였읍니다.
혜순이는 눈소녀를 따라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하얀눈처럼 하얀 할머니 한 분이 물레를 돌리고 있었읍니다.
물레바퀴에는 하얀 실과 까만 실 두 을의 실이 칭칭 감기고 있었읍니다.
--저게 무슨 추억의 실이람!
하고 혜순이논 이상하게 생각하였읍니다.
할머니는 두 소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미래야, 지금 돌아오니?”
하고 말하였읍니다. 미래는 눈소녀의 이름이었읍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또 혜순이를 보고,
“혜순이도 같이 왔구먼.”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물레를 돌리고 있었읍니다.
“할머니, 제 이름을 알고 계셨어요?”
하고 혜순이가 물었읍니다.
“응 나는 벌써부터 네 이름을 알고 있었지. 혜순이의 이름뿐 아니라 다른 소녀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단다.”
하고 할머니는 말하였읍니다. .
이 말을 듣고서 혜순이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읍니다. 그래서 또다시 물었읍니다.
“할머니, 어떻게 제 이름을 전부터 알고 계셨어요? 제가 여기 찾아온 것두 첨이구, 또 이전에 할머니를 만나뵌 적도 없었는데요. 그리구------”
“그리구 또 뭐냐?”
“그리구 얘를 만난 것두 오늘 저녁 첨이거든요.” ;
“그랬을 거다.”
하고 할머니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혜순아, 그렇지만 이 할머니는 말야, 저 창문을 통해서 혜순이를 늘 바라보고 있었단다.”
하고 벽의 어느 한 곳을 가리켰읍니다.
혜순이는 그곳을 바라보았읍니다.
그곳에는 큰 거울 하나가 달려 있었읍니다.
“어머나! 저 거울이 창문예요?”
하고 혜순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였읍니다.
“그렇단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아라.”
혜순이는 거울 앞에 가까이 섰읍니다.
그리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읍니다.
거울 속에서도 혜순이가 서서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읍니다.
--어째서 저 거울이 창문이람!
하고 혜순이는 할머니의 말이 이상하기만 하였읍니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정말 신 기한 일이 생겼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가 금시 얼굴이 해말쑥해지더니 방바닥 위에 쓰러지는 것이었읍니다.
혜순이는 어리둥절하였읍니다. 정말 혜순이는 여전히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혜순이가 방바닥 위에 쓰러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꼭 무엇에 흘리는 것만 같았읍니다.
거울 속에 이상한 구름 같은 것이 스치더니 어느새 혜순이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광경이 나타났읍니다.
아, 그 침대는 혜순이가 조금전까지 누웠던 그 침대였읍니다.
그리고 침대가 놓여 있는 방도 바로 혜순이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
한간방이었읍니다.
--어느새 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일까?
하고 혜순이는 고개를 돌려서 둘러보니까 여기는 틀림없이 눈소녀의 집이고 눈소녀의 할머니는 여전히 물레를 돌리면서 나직이 ‘세월아 세월아------’의 노래를 부르고 있잖겠어요------.
그러나 거울 속의 혜순이는 혜순이네가 살고 있는 집, 그 한간방, 거기 놓여 있는 첨대 위에 누워서 열이 올라 의식을 잃고 괴로와하고 있는 것이었읍니다.
--내가 병을 앓고 누워 있을 때 일이야------
하고 혜순이가 생각하였읍니다.
그리고 거울 속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가 열이 나서,
“엄마! -----·물좀------”
하고 앓는 소리를 할 때 사뭇 안타깝기도 하였읍니다.
---정말 어머니가 왜 안 오신담?
하고 앓는 혜순이를 혼자 남걱두고 어디 가셨는지 모르는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하였읍니다.
---어머니가 어서 돌아왔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무척 바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들어오셨읍니다.
어머니를 따라 의사선생님도 까만 가죽가방을 한손에 들고 들어왔읍니다.
어머니는 의사를 불러오려고 나가셨던 것이었읍니다.
혜순이는 어머니가 돌아오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 재가 나를 떨어뜨리려고 해!”
하고 헛소리를 하였읍니다.
의사선생님은 체온기를 혜순이의 입속에 넣고 열을 재었읍니다.
“열이 대단히 높습니다.”
하고 의사선생님이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청진기를 꺼내서 혜순이의 가슴에 대고 가슴속에서 울려나오는 무슨
소리를 찾으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거 보통 감기 같은 열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무슨 병일까요?”
라고 어머니는 사뭇 걱정하는 얼굴이었읍니다.
“혹시 소아마비 아닐는지?------”
하고 의사선생님의 말.
“소아마비라뇨?,,
하고 어머니의 크게 놀라시는 얼굴.
“소아마비?”
--소아마비란 어떤 병일까?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혜순이가 생각하였읍니다.
어머니가 크게 놀라시는 것을 보면 무척 무서운 병인 것으로 생각되었읍니다. 아니 지금 거울 속의 혜순이가 저렇게 열이 나서 꽁꽁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까 중한 병인 것이 틀림없었읍니다.
“나의 귀여운 혜순이가 소아마비에 걸리다니------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린 딸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시는 어머니의 음성이었읍니다.
“과히 염려마십시요. 다리 하나가 절게 되겠지만 그리 크게 절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고 의사선생님은 어머니를 위로하는 듯 이런 말을 하였읍니다.
그리고 주사기를 가방 속에 집어넣고 가방을 들고 방을 나갔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는 깊은 잠이 들었읍니다. 그 옆에 어머니가 앉아서 혜순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읍니다.
---소아마비를 앓고 나면 절름발이가 되는 것일까?------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혜순이가 생각하였읍니다.
---이상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거울 앞에서 몇 발자국 걸음을 걸어보았읍니다. 지금 혜순이가 생각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읍니다. 그런데 소아마비를 앓고 나면 다리 하나가 절게 된다고 의사선생님은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의사선생님이 모르는 거야------ 소아마비를 앓고 나면 다리를 전다지만 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금,
세월아 세월아 물레바퀴야 돌아라.
세월이 다 감기면 나도 꿈나라로 간단다------
하고 눈소녀의 할머니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읍니다.
그러고 보니까 혜순이는 너무 거울 속에만 정신이 팔리고 있었읍니다.
혜순이는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읍니다.
눈소녀의 할머니는 여전히 꿈을 짜는 물레를 돌리고 있고 그 옆에 눈소녀 미래가 가만히 앉아서 혜순이를 보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읍니다.
“그래 창밖을 내다보니까 어떠냐?”
하고 할머니가 말하였읍니다.
“할머니, 저것이 거울이지 창이에요?”
하고 혜순이가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였읍니다.
“응, 우리 눈나라에서는 저 거울 같은 것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창문이야. 예사로운 거울이 아니거든------”
하고 이번에는 눈소녀 미래가 말했읍니다.
“그래 참 이상한 거울이야?-----”
하고 혜순이는 두 눈을 깜박거렸읍니다.
“혜순아, 네가 병을 앓고 나서 동무가 없어 심심해 하는 것두 저 창문으로 내다보구 안 거야.”
“그래서 날 찾아왔구나?”
“그럼.”
“저 창을 내다봄 세상일 다 구경할 수 있니?”
“그럼.”
“어머나 ------”
혜순이는 두 눈이 더욱 커졌읍니다.
“저 창문은 참 편리하단 말야. 혜순이가 장차 어떻게 된다는 것까지 내다볼 수 었으니까 말야------” .
하고 눈소녀의 할머니가 말하였읍니다.
------나의 장래의 일을 어떻게 저 창문을 보고 알 수 있담?
하고 혜순이는 이상히 여겼읍니다.
혜순이는 다시금 저 하늘나라의 창문이라고 하는 거울 앞에 섰읍니다.
그리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읍니다. 안개같이 뽀오얀 구륨이 거울 속을 스치며 치나가더니 하나의 광경이 나타나보였읍니다.
그것은 혜순이네 집 앞마당이었읍니다. 마당 한 군데에 포플라 한 그루가 서있고 그 포플라 그늘에서 소녀 셋이 줄넘기를 하고 있었읍니다.
한 열두어 살씩 먹어보이는 소녀들이었읍니다.
줄넘기를 하고 있는 세 소녀 외에 다른 소녀 하나가 또 있었읍니다.
역시 열한 살 아니면 열두어 살 가량 먹어보이는 소녀였읍니다. i
그 소녀는 포플라나무 밑에 우두커니 앉아서 줄넘기를 즐기고 있는 소녀들을 사뭇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저 애들이 누구 누굴까.
하고 혜순이는 소녀들의 얼굴을 들여다볼 양으로 거울 앞에 조금더 가까이 다가 섰읍니다.
그러니까 거울 속의 광경이 마치 영화처럽럼크게 보였읍니다.
소녀들의 얼굴들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읍니다. 소녀들의 얼굴을 바라보는순간 혜순이는,
“어머나, 재들 아냐?”
하고 깜짝 놀랐읍니다.
줄넘기를 하고 있는 소녀들은 모두 이웃에 살고 있는 인숙이, 학실이 그리고 영애들이었읍니다.
모두 열두 살 가량의 키가 자란 소녀가 되어 포플라나무 그늘에서 줄넘기를 하면서 봄날 저녁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읍니다. ;
“그럼 포플라나무 밑에 혼자 앉아 있는 소녀는?------”
하고 혜순이가 들여다보자 저도 모르게,
“어머나!”
하고 큰소리를 질렀읍니다.
포플라 밑에 혼자 앉아 있는 소녀는 다른 소녀가 아닌 바로 혜순이 자신이 없던 것입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도 열두어 살 가량의 소녀가 되었읍니다.
그런데 다른 소녀들과 함께 어울려서 놀지 못하는 외로운 소녀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 왜 거울 속의 혜순이는 다른 소녀들과 함께 어울려서 놀지 않고있을까?”
하고 혜순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읍니다.
그러자 눈소녀의 할머니는 혜순이의 마음속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이,
“혜순아, 조금더 계속해서 들여다보아라. 절로 알게 마련이니까------”
하고 말하였읍니다.
혜순이는 거울 속을 그냥 들여다보았읍니다.
그러니까 포플라 밑에 앉아 었던 거울 속의 혜순이가 일어서더니 줄넘기를 하고 있는 소녀들에게 말을 건네었읍니다.
“인숙아, 나도 함께 줄넘기를 놀게 해줘?”
그 음성은 사뭇 애처로웠읍니다.
줄넘기를 하고 있던 소녀들이 잠시 멈추더니, 혜순이를 보고·모두 까르르 웃었읍니다.
한바탕 웃음이 그치자, 인숙이가,
“혜순아, 네가 어떻게 줄넘기를 할 수 있어?”
하고 야무지게 말하였읍니다.
혜순이는 울상이 되었읍니다. 그러니까 영애가 측은하다는 듯이,
“얘들아, 혜순이도 한몫 넣어주자꾸나. 채는 줄만 잡고 있으면 되잖아.”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러자.”
“그래 그래 좋다.”
하고 다른 소녀들이 말하였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는 소녀들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었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는 한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다른·소녀들에게 가까이 갔읍니다.
소녀들은 또다시 까르르 한바탕 웃었읍니다.
“혜순이는 다리를 절면서 어떻게 줄넘기를 하겠다는 거야.”
하고 인숙이가 톡 쏘았읍니다.
“그러니까 줄만 잡고 있으람 되잖아?”
하고 영애가 말하였읍니다.
혜순이가 머뭇거리고 서 있으니까 인숙이가,
“얘, 빨리 이 줄을 잡아!”
하고 입을 비쭉거리면서 말하였읍니다.
혜순이는 줄의 한 끝을 잡았읍니다. 그리고 다른 한 끝을 영애가 잡았읍니다.
인숙이와 학실이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 혜순이와 영애가 돌리는 줄을 깡총깡
총 뛰어넘었읍니다.
다음은 혜순이와 영애가 줄념을 차례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혜순이는 줄 한 끝을 잡고 돌리기만 하였읍니다. 다른 소녀들을 사뭇 부러운 듯이 바라보면서··
“얘들아, 혜순이가 끼니까 재미없어, 안되겠어.”
하고 인숙이가 말하였읍니다.
“그래, 혜순이도 제 차례가 되면 줄을 넘어야 할 텐데 그게 안되잖아?”
하고 학실이가 대꾸하였읍니다.
“나두 줄넘기를 할 수 있어.”
하고 혜순이가 말하자,
“얘가 미쳤어, 절름발이가 어떻게 줄넘기를 한단 말이야!”
하고 인숙이가 특 쏘면서 혜순이가 잡고 있는 줄을 빼앗았읍니다.
혜순이는 그만 울상이 되었읍니다.
“얘들아, 혜순이가 불쌍하지 않니?”
하고 영애가 측은하다는 듯이 혜순이를 바라보았읍니다.
“누가 절름발이가 되래?”
하고 학실이도 한마디하였읍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혜순이는 이 광경을 더 계속해서 바라볼 수 없었읍니다. 혜순이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돌렸읍니다.
혜순이의 마음은 적이 슬펐읍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내가 다리를 철다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리를 절다니------ 거울 속이 거짓말이야------.
하고 이렇게 생각하였읍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혜순이의 귓가에 다시금 눈소녀의 할머니가 부르는
‘세월아 세월아 물레야 돌아라’는 노랫소리가 꿈결같이 들려왔읍니다.
어쩌면 혜순이는 곤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읍니다. 깊은 잠속에서 깨어나는 것 같기도 하였읍니다.
혜순이는 손등으로 눈두덩을 비비고 나서 다시금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읍니다.
-----이상한 일이다!
포플라 그늘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던 소녀들은 모두 사라졌읍니다. 아니 지금 보이는 곳은 포플라 그늘이 아니라 잔디풀이 잘 자란 어느 언덕이었읍니다.
그 언덕 위에 화가를 세우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소녀 하나가 있었읍니다.
언덕을 넘어서면 푸른 벌판을 가로질러 기어간 하얀 오솔길이 바라보이고 또 푸른 벌판 건너편에 초가집들이 버섯처럼 옹기종기 모여사는 고요한 마을이 멀리 바라보였읍니다.
-----아마 소녀는 그 고요한 풍경을 그리는가보다. 그런데 소녀가 누굴까! ---
하고 혜순이는 거울 속을 가까이 들여다보았읍니다.
거울 속의 화가 앞에 앉아서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소녀는 바로 혜순이자신이었읍니다.
그리고 거울 속의 혜순이는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어 열다섯 가량의 큰 소녀가 되었읍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
하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어린 혜순이는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읍니다.
어느덧 저녁 해가 서산마루 아래로 뉘엿뉘엿 떨어지고 서쪽 하늘에 빨간 저녁놀이 곱게 비쳤읍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고 었는 거울 속의 혜순이의 푸 눈망울에도 또한 저녁놀이 곱게 비쳤읍니다.
저녁놀은 사뭇 바이을린이 울리는 고운 음악 같았읍니다.
어쩐지 마음이 아늑해지고 그리운 일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읍니다.
어느 숲속에서 산비둘기가 〈구구구구!〉 을었읍니다.
그 산비둘기도 저녁놀 속에서 어느 벗이 그리웠는지 모를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지금 화가 앞에 앉아 있는 혜순이는 혼자였읍니다. 혼자 앉아 있는 혜순이였지만 혼자 같지가 않았읍니다. 꼭 그런 생각이었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 말고 또다른 혜순이가 아니 다리를 절지 않는 환상속의 혜순이가 꼭 어디든 있을 것만 같았읍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혜순이는 어느 혜순이가 참 혜순인지 어리둥절
할 뿐이었읍니다.
하늘을 곱게 비치던 저녁놀은 짧았읍니다.
산그늘이 벌판을 가리고, 사방은 어둑어둑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거울 속의 혜순이는 화가를 걷어 옆구리에 끼고 돌아가는 길을 걷기 시작하였읍니다.
어둠은 장막처럼 내려앉았읍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늘에 벌이 솟아나지 않았읍니다.
--금시 구름이 저 하늘을 온통 가리었을까?
조금 전까지 빨간 저녁놀이 곱게 비치던 하늘이었읍니다.
---이상한 일이다!
거울 앞에 서 있는 혜순이가 생각하였읍니다.
그때 하얀 꽃이파리 같은 것이 하늘가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였읍니다.
정말 그것은 하얀눈이었읍니다.
어느 사이에 계절은 겨울철로 바뀌고 하얀눈이 어둠을 뚫고 내려와서, 어둠이 내려앉은 땅바닥 위에 하얗게 쌓이는 것이었읍니다. 하얀눈이 내리는 오솔길을 하염없이 절름거리면서 걸어가고 있는 거울 속의 혜순이었읍니다.
그 혜순이의 모습이 똑똑히 바라보이는 것이었읍니다. 하얀 꽃이파리 같은 눈송이 속에, 아니 지금은 하얀 꽃이파리가 되어버린 눈송이 속에서 혜순이는 어
디론지 걸어가고만 있는 것이었읍니다.
문득 하얀 꽃이파리들은 또한 많은 사람들의 손바닥 같기도 하였읍니다. 혜순이의 둘레에서 요란한 박수소리가 울려나왔읍니다.
혜순이는 여왕이나 된 것 같은 기분이었읍니다. 그러나 어챈지 외로왔습니다. 혜순이는 사방에서 울려나오는 박수소리에서 벗어나서 뛰기 시작하였읍니다. 어디서부터인지 하얀 줄기 빛이 흘러나왔읍니다.
--저 빛이 비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혜순이는 그 이상한 빛이 비쳐오는 곳을 향하여 뛰었읍니다. 얼마쯤 뛰었을까? 무엇이 발목을 잡아당기어 푹 넘어졌읍니다.
“아! 아! ------ 아! ------“
하고 혜순이가 소리를 질렀읍니다.
“혜순아, 왜 그러니?”
하고 누가 부르는 음성이 혜순이의 귓가에 어슴푸레 들려왔읍니다. 혜순이의 어머니였읍니다. 언제 돌아오셨는지 혜순이의 어머니가 머리맡에 앉아 있다가 잠에서 깨어난 어린 혜순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읍니다.
“아 ! 어머니------”
하고 혜순이는 휘둘러보았읍니다. 밤은 고요히 깊어가고 어둠이 들여다보고 있는 저 창문에는 하얀 꽃이파리 같은 하얀눈이 소리없이 그냥 내리고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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