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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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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명소여행 스크랩 인도의 관광지
일 행 추천 0 조회 57 09.02.21 06: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디아게이트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던 인도 군인들을 위한 위령탑

인디아 게이트는 세계제1차대전에 참가했던 7만여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뉴델리의 중앙 교차로에 세워져있으며, 얼핏보기에는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킨다. 크기는 42미터 의 높이로 서있으며, 앞의 광장에는 밤에 화려하게 조명을 장식해놓아 많은 시민들이 이 광장에서 인디아게이트의 야경과 불꽃놀이등을 즐기는 시민의 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프간 북서전선에서 죽어간 13,516명의 영국군과 인도군의 명패가 모셔져 있으며 초석은 에드윈 루티엔스(Edwin Lutyens)에 의해 설계되었고, 1921년에 세워진것으로 알려졌다. 10년 후에는 아르 윈(Irwin)경에 의해 국가에 헌납되었다. 또다른 기념비는 아치형의 모양을 띄우고 있으며,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에서 죽어간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라즈파트(대통령궁)
인디아 게이트에서 서쪽으로 넓게 뻗은 길을 라즈파트라고 한다. 정부청사들과 의사당 그리고 대통 령관저를 끼고 있어 권력의 상징과 같은 곳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라쉬트라파티바반으로 불리며 대 통령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원래 총독의 관저로 에드윈 루텐스에 의해 설계되었다. 라쟈 샤 바와 록 샤바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허버트 베이커에 의해 왕자들의 회의실과 의회로 설계되었다 . 인도의 헌법이 채택된 1월 26일에는 코끼리 낙타 등을 동원하여 이곳에서 대규모의 행진이 있다.
라즈가트
라지가트의 입구는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입구를 지나 잘 정리된 잔디를 지나 10분정도 걸어가 면,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화장터가 나온다.
1948년 1월30일에 극우파 힌두 청년에게 암살당한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으로 중앙에는 검은색 대리석에 그 중앙에는 간디가 남긴 마지막말이라는 '헤이 람(오 신이여!)'가 새겨져 있다. 그 앞에 는 향을 놓을수있는 단을 마련해 놓고있다. 관광객은 들어갈 수없다.
자마 마스지드
델리에 있는 자미 마스지드는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으로 알려져있다. 이슬람사원을 뜻하는 자미 마스지드는 이곳 뿐만아니라 여러곳에 있다. 델리에 있는 자미마스지드는 유명한 술탄 샤 자한 (Shah Jahan)에 의해 1644년부터 165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당시 엄청난 돈인 10만 루피가 사용되 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화려함을 알수있다. 이 사원에는 한번에 2만여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들이 예 배를 드릴수있는 규모라고 한다.

관광객들에게는 사진요금을 따로 받고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에서 옷차림을 검색한다. 특히 여성들 은 반바지나 나시등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곳을 관광하고 싶은 관광객들이라면 미리 반소매나 긴 팔 긴바지등을 준비하길 바란다.
만약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입구에서 대여해주는 천을 두르고 입장하면 된다.
예배시간에는 관광객 입장이 불가하다. 한가지 더 이슬람사원에 들어갈때는 신발을 벗고 맨발이나 양발을 신고 들어가야한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뜨거운 햇살에 바닥이 화끈화끈거릴수있으니 양발이나 덧신을 준비해 주는것도 좋다. 외국인 관광 객들을 위해 천으로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을 이용해서 사원으로 들어가는것도 좋다. 현지인들은 땡 볕에 그을린 바닥을 맨발로 아무렇지않게 다닌다.

들어가자마자 큰 연못같은 곳이 나오는데 사원에 들어가기전에 이곳에서 손과 발을 씻고 정결한 마 음으로 사원으로 들어간다. 사원안에는 많은 이슬람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교토를 들리는 사람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들어있는 곳이다.
벌라 만디르
1928년 낮은 캐스트 계급인 하리쟌에게도 허락한 최초의 사원인 벌라 만디르(Birla Mandir)라고 알 려진 락시미 나라얀 만디르는 근대식 건축양식의 대리석 건축물로 자이푸르에서 놓칠 수 없는 명소 이다.
락시미 나라얀 사원은 인도 굴지의 재벌이었던 벌라(Birla)가문이 세운 수많은 세원 중 하나로 자 이푸르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벌라일가에서 세운 사원이라, "벌라 만디르"로 알려지게 되었다. 100년이 넘게 비종교적인 인도 전통문화를 엿볼수 있는 좋은 본보기로, 종교로 이르는 서로 다른 접근을 표현하는 3개의 돔과 백색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사원은 람싱그 2세가 그의 아내 마하라니 가야트리 데비(Maharani Gayatri Devi)를 위해 세운 작은 궁전인 모티 둔그리 성(Moti Doongri Fort)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붉은성
무굴제국 시대의 왕도인 올드델리의 명소, 랄 킬라(Red Fort)

무굴제국시대(1639-1648년)에 건립되었으며, 빨간 사암으로 건축된 성벽이 인상적이며 일명 빨간성 이라 한다.
지금은 비록 조잡해 보이지만 예전에는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현재의 모습으로 변한 이유는 영국점령군에게 수없이 침략 당했기 때문이며 당시 에는 보석과 귀금속으로 장식되고 아름다운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궁전 안으로 연결된 수로에 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곳에서 안락하게 살던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천국 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정문인 라호르문과 남쪽에 있는 델리문이 있으며, 정원 안쪽에는 흰 대리석 궁정인 디와니암이 있고, 더 안쪽으로는 궁전 디와나카스, 예배소인 모티마스지드등이 있다. 또한 오른쪽에 위치한 박물관에는 무굴제국 시대의 회화와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르나트(녹야원) 유적지 및 박물관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 사르나트 또는 녹야원(Sarnath,鹿野園)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땅으로 유명한 녹야원(사르나트)은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아래에서 깨닮음을 얻고, 같이 수행했던 5명의 형제들과 처음으로 불법을 이야기했던 땅으로, 다메크 스투파 라고 불리우는 불탑과 큰 수도원의 흔적, 고고학박물관등이 같이 있다.
초전법륜(初傳法輪)의 땅이라고 일컬어지며 옛 경전에 녹야원(鹿野園)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전에 왕이 이곳에다가 사슴을 풀어놓고 살도록 했다고 해서 이름지어졌다고도 전해진다. 불교의 4대성지 의 하나로써 룸비니, 붓다가야,구시나가라와 이곳 녹야원을 꼽고있다.
이곳에는 아쇼카왕의 돌기둥과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의 유적, 무라간다 쿠티 비할(根本香積寺)의 건 물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다메크 스투파는 직영이 28미터, 기부에서의 높이가 43미터의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메크 라는 것은 산크리스트어로 법(法)의 중계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무라간다 쿠티 비할은 통칭으 로는 日本寺라고 불리우는데 이 절의 내벽에는 일본인화상에 의해 석가의 생애가 그려진 프레스코 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Sarnath Archaeological Museum)

박물관에 들어서면 인도의 상징인 2.31미터의 거대한 사자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고고학박물관 (Sarnath Archaeological Museum)에는 불교보호자에 의해서 알려진 아쇼카왕이 만들었던 석주(돌기 둥)의 머리의 꼭대기부분에 있었던 4마리의 사자상의 석상(인도의 국장이 되어서, 지폐에 인쇄가 되어있다)이 전시되어 있다. 사자상은 BC 2세기경 마우르얀 아쇼카왕이 최초 불경이 시작되어 부처 가 설교했던 곳에 세워졌던 돌기둥위에 올려졌던 것으로, 4개의 사자상은 각각 4개의 방향을 바라 보고 있다.
박물관 입구 왼쪽 벽에는 2개의 좌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의 좌불상은 "부처의 설법"라 는 이름의 5세기경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불상의 몸은 화려한 후광의 테두리가 둘러있는 사르나트 (Sarnath)의 역사적 사건들을 지니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관은 이 지역에서 발굴된 힌두 조각상 전시관들과 건물과 수도원의 아름다운 장식, 당시 사용되었던 연장 및 도구, 테라코타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인도의 고고학적 발견품목은 매우 값지고, 종교적 성향이 짙은 것으로 사라나트에서 일부 공개되었 다. 입장권은 박물관 입구에서 구매가능하며, 관내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사라나트 발굴지역을 포함하여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갠지스 강변
여신 강가(Ganga)의 이름을 따서... River Ganges
힌두명 강가(Ganga)인 갠지스강은 티벳-인도 국경지역 히말라야산맥 남부, 고마크(Gaumakh)에서 흘 러나온 물줄기가 모여 2,510 km에 이르는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어. 중국, 인도, 네팔과 방글라데시 등 4개국에 거쳐 흐르고 있다. 1,000,000 ㎢의 갠지스강 유역은 매우 기름지고, 5만명이상의 도시 가 100여개 도시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매우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갠지스강 유역의 민족들은 그 기원이 서로 얽혀 있다. 갠지스강의 서부과 중앙 지역은 투르크족, 몽골족,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인, 아랍인 등이 원 아리아인들과 섞여 있고, 벵갈지역인 강의 남 부와 강의 동부는 티벳, 버마인과 고산민족등으로부터 혼재된 기원을 보여준다.

힌두교는 갠지스강을 가장 신성한 강으로 여기고 있다. 히말라야 신의 딸인 여신 강가(Ganga)의 이 름을 따서 강의 이름이 붙여졌다. 강을 따라 여러지역은 성지순례지역 중 특히 중요한 지역으로 알 려져 있다.
황금 사원
강가(Ganga) 강변에 위치한 힌두종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성지 중 하나이다.

바라나시에서 가장 성스러운 사원으로 비슈와나트 갈리에 세워진 비슈와나트 사원은 시바(Shiva)신 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힌두교에서는 시바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믿고 있으며 비 힌두교신자와 타 종교신자도 또한 이곳을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고 있다. 비슈와나트 사원에 있는 시바링가는 12개 죠트리링가(Jyotrilinga) 중 하나이다.

원래 사원이 무갈제국의 아우랑그제브(Aurangzeb)에 의해 파괴된 후, 사원은 몇번에 거쳐 재건되었 으며, 현재 모습의 사원은 1776년 아할야 바이(Ahalya Bai)가 각각의 탑끝을 800kg 에 달하는 금박 으로 장식함으로써, 황금사원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서부/동부/남부 사원군 관광
주요 볼거리가 있는 서부 사원군

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지리적 특성에 의해 서쪽사원군, 동쪽사원군, 그리고 남쪽사원군으로 세그룹 으로 분류된다. 서쪽사원군은 확실히 가장 크고 카주라호 사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주로 우리가 카주라호의 사원이라고 하면 이곳 서쪽 사원군들을 말한다.) 85개의 사원중 14세기 이슬람교도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 22개만 남아있으며, 남아있는 22개의 사원 중에서 14개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의 사원들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40m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깐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 사원, 비슈누의 3번째 화신인 멧돼지를 모셔놓은 락슈미와 바하라 사원, 락슈마나 사원 (Lakshmana Temple), 시바신을 상징하는 남성의 성기 모양의 조각인 링가를 모셔놓은 메딴게스와라 사원(Matangeswara Temple), 마하데바 사원(Mahadev), 빠르바띠를 모셔놓은 데비 자가담바 사원 (Devi Jagadambe Temple), 태양신인 수르야를 모셔놓은 치뜨라굽따 사원(Chitragupta temple), 시 바신의 교통편의를 제공하였다고 하여 암소를 숭배하는 사원인 난디(Nandi)사원, 빠르바띠 사원, 시바를 모시고 있는 비슈나와트 사원(Vishwanath Temple), 서쪽 사원군 중 유일하게 화강암을 사용 해서 만들어 칼리신(Kali)에게 헌납된 차우사트 요기니 사원(Chaunsat Yogini), 랄구안 마하데브 사원 등이 있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문화가 혼합된 동부 사원군

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지리적 특성에 의해 서쪽사원군, 동쪽사원군, 그리고 남쪽사원군으로 세그룹 으로 분류된다.
힌두교와 자이나교가 혼합되어 있는 곳이 동쪽사원군이다. 카주라호 마을 가까이에 있다. 가장 큰 사원 자이나교 사원은 빠르와나쓰 사원(Parswanath)이며, 북쪽 외벽 위의 정교한 조각물들이 이 사 원을 돋보이게 한다. 이 조각품들의 주요 테마는 무한한 일상생활이며, 영원에 관한 것들이다. 그 외에도 자이나교 사원으로 지금은 허물어져 가는 간타이 사원(Ghantai Temple)과 빠르와나쓰 사원 의 북쪽으로 아담한 크기의 아딘나타 사원(Adinatha Temple)이 있다. 이 동쪽 사원군에서 힌두교 사원으로는 브라마(Brahma), 외벽에 천상의 선녀인 압사라가 두줄로 늘어서 있는 조각이 있는 바마 나(Vamana) 그리고 자바리(Javari) 사원이 있다.

남부 사원군

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지리적 특성에 의해 서쪽사원군, 동쪽사원군, 그리고 남쪽사원군으로 세그룹 으로 분류된다. 남쪽 사원군은 카주라호 마을 5km 정도 떨어진 곳에 남쪽 사원군이 있다. 이곳에는 2개의 사원이 있는데, 각각 힌두교 사원과 자이나교 사원이 하나씩 남아있다.
가장 볼만한 사원으로는 챠트르부즈 사원(Chaturbhuj Temple)이 있는데 비슈누신의 정교한 조각상 을 볼 수 있다. 둘라데오 사원(Duladeo Temple)은 길에서 약간 멀리 떨어져 있고 자이나교 계열의 사원이다.
제항기르 마할
오르차의 궁전 중 가장 거대한 유적지로서 마하라자 비르 싱 데오가 반란에 실패한 왕자 살림을 위 해 지은 궁전이다.
라즈마할
오르차로 도읍을 옮겼던 마하라자 루드라 쁘라탑에 의해 지어져 마두카르 샤 대에 완성되었다. 내 부의 침실에는 벽 전체에 벽화가 아름답다.
타지마할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타지마할은 세 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엄청난 건축비용이 들었지만, 이 하얀 대리석의 웅장한 사원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간곡한 기념비가 되었다. 1648년에 만들어져 현재는 우타르 프라 데시 주(州) 아그라 교외 아그라 성(城)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타지마할(Tajmahal)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을 가지며,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은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명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그의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 할(Mumtaz Mahal)을 위하여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53년에 완공을 보았다. 사원은 좌우 대칭 의 총대리석으로 높이 5.5m, 종횡 94m의 기단상의 중앙에는 높이 58m의 사당, 四遇에는 높이 42m의 첨탑이 세워져있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고를 탕진해 가며 완성하였고, 온갖 재보(財寶)와 미 술/공예품을 한데 모아놓았다.
아그라성
견고하고 화려한 아그라성(Agra Fort)

1565년 무굴제국 제3대 악바르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이후 자한길, 샤 자한에 의해 보강되 어 증측되었다. 길이 2.5km에 달하는 붉은 빛의 사암의 성벽인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의 북서쪽, 야 무나(Yamuna)강을 따라 만들어졌다. 전쟁을 위한 견고한 성으로 이중으로 이루어진 굴, 이중으로 이루어진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외측에 비해서는 견고함이 대조적인 내부의 궁전은 화려함 의 극치로 지어져 있다.
높은 성벽을 지닌 곡선모양의 성채는 웅장한 성문인 아마르 싱(Singh)만을 위한 것으로, 지금은 일 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원래 웅장한 아그라성 입구는 '하티폴(Hathi Pol)' 혹은 '코끼리문 (Elephant Gate)'라고 부르는 내부 정문으로 이어지는 델리게이트를 통해 들어 갈 수 있었다.
아그라성에서는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샤 쟈한는 만년에 자식에 의해 이 성에 유폐가 되어서 매 일 아내의 묘를 바라보며 생활했다고 알려졌다.

▶ 아그라성내의 건축물
- 디완이암 (Diwan-i-Am)
1628년 샤자한이 건립한 디완이암은 강연장으로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 졌다. 3개의 열을 지어 세워 진 돌기둥들은 백색 치장벽토로 기둥벽을 꾸미고, 공작의 꼬리털모양의 아치형으로 마무리되어 지 붕을 지지하고 있다.

-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
샤자한이 1646년부터 1653년에 세운 대리석 사원으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부르고 있다. 완벽한 균 형비를 이루고 있는 사원은 페르시아의 명각은 완벽한 진주에 비유되고 있다. 광할한 사원 뜰 중앙 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다.
페테푸르 시크리 관광
승리의 도시이자, 유령도시인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

아그라에서 37 km 떨어진 곳에 1571~1585 사이에 무굴황제 Akbar에 의해 파테푸르 시끄리가 있다. 주변 지역은 붉은 사암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이 도시는 원래 악바르가 수도로 계획된 지역이었지 만 물의 부족으로 인해 이 도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도시가 건설된 지 20년 후 무굴의 수 도는 Lahore로 천도되었다.
오늘날 이 유령의 도시에는 약 3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버려진 도시는 많은 고대의 건축물 들이 남아 있으며, 고고학을 위해 보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파테푸르 시끄리는 무굴제국의 건축물들의 가장 좋은 실례이며, 높이에서 무굴 건축물의 웅장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비록 도시는 황폐해졌지만 아그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반드시 거쳐야할 장소이다. 이 고성의 일몰을 바라보면 제국의 영화가 덧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될 것이다. 1571년부터 1585년까지 세워진 파테푸르 시크리는 무갈제국과 힌두 건축의 최고봉을 엿볼수있는 곳 이다. 판치 마할(Panch Mahal)과 파테푸르 시크리 유적지로 들어가는 승리의 문(Buland Darwaza)등 무갈제국의 수많은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도시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해질 무렵에는 그 아름다움의 최정점에 이른다.
파테푸르 시끄리는 힌두와 이슬람 건축물의 절정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실례이다. 파테푸르 시끄리 의 모스크는 메카 사원의 견본이 되어 페르시아와 힌두 건축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졌다고 한다.
암베르성
카츠츠와하 왕조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암베르 성

암베르성은 자이푸르에서 차로 한 40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자이푸르 외곽지역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1600년에 마하 라자 만 싱(Raja Man Singh)에 의해 세워졌으며, 현재의 모습은 스와이 자이 싱 (Swai Jai Sin)에 의해서 18세기에 완성되었다. 이 성은 붉은 사암과 흰대리석을 사용하여 힌두와 이슬람 건축양식이 잘 조화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이 성채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거울궁전이라고 불리는 세쉬 마할(Sesh Mahal)이다. 이 궁전에는 자체적으로 성벽을 쌓고 테라스와 정자들을 갖추 고 있다. 무굴이 만든 딜라람 가든(Dilaram Garden)이나 모한바리(Mohan Bari Garden) 정원과 같은 정원도 구경거리이다. 우아한 품위를 풍기는 실라 마다 사원(Shila Mata)은 궁궐 내에 자리잡고 있 다. 한 때 수천명의 참배객들로 붐볐던 '어머니 여신상(Mother Goddess)'은 라자 만 싱이 지금의 방글라데쉬의 Jessore에서 가져와 이곳에 모셔둔 것이다.

여행객들이 언덕 위에 있는 이 성으로 들어가는 방법중 코끼리를 타고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도 가 질 수 있다. 코끼리는 2명의 관광객이 한 코끼리를 타고 한 5분정도 언덕을 걸어 가는 것으로 내려 올때는 성뒤의 층계를 이용해서 손쉽게 내려올수있다.
그리고 암베르성역시 안에 사원이 있는데 이곳은 신을 벗고 들어가야한다.
하와마할
5층 건물, 하와마할은 일명 '바람의 궁전(Palace of the Winds)'이라고도 하며, 1799년 왕족의 여인들이 일상생활과 시내의 행열을 지켜보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높게 지어졌으며 , 자이푸르 시내중앙의 다른 건물들처럼 핑크빛으로 칠해졌다. 자이푸르는 150만명의 사람들이 살 아가는 라자스탄주(Rajasthan)의 주도이다. 이 도시는 계획도시로 1727년 Maharajah Jai Singh II 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엠버의 비좁고 갑갑한 환경 때문에 무굴제국의 멸망과 함께 쇠퇴해졌다.
잔타르만타르
인도의 첨성대, Jantar Mantar

잔타르 만타르는 자이푸르를 세운 Maharajah Jai Singh II에 의해 이 지역의 돌과 대리석으로 만들 었다. 이 왕은 천문학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직접 설계하여 천문학 관측소를 자 이푸르와 델리, 바라나시 등의 장소에 직접 만들었다. 자이푸르 관측소는 아직도 건재하며, 16개의 관측장비를 가지고 있다. 30m 높이의 삼랏 얀트라(Samrat Yantra) 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 이다. 삼랏 얀트라의 면은 자이푸르의 위도인 27도만큼 기울러져 있다. 꼭대기에 있는 작은 돔모양 의 전망대는 달과 별의 식, 계절풍이 오는 것 등을 관측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901년 완전 복구가 이루어졌고, 1948년 잔타르 만타르는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꾸?미나르
델리를 대표하는 상징물, 꾸뜹 미나르(Qutab Minar)

꾸? 미나르는 높이 72.5m, 기저부의 지 름 14.5m의 거대한 탑이다. 꾸?는 탑을 만든 사람의 이름 을 딴 것이고, 미나르는 탑을 뜻한다.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노예왕조 Mamluk dynasty 를 세 운 꾸 ?-우드-딘 아이박 Qutab-ud-din Aibak 왕이 힌두교도에 대한 승리를 기 념하여 1199년경에 착공하였다. 5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3층은 붉은 사암, 4~5층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1층은 꾸?-우드-딘 아이박왕이 2~3층은 그 다음 왕인 일뚜뜨미슈가 완성했다. 4~5층은 그 다음 왕 조의 뚜글루끄 Tughluq 의 피루즈 샤 Firuz Shah 왕에 의해서 완결되었다. 꾸? 미나르는 각층마다 발코니가 있어 밖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으나,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탑 내로의 진입 이 금지되었다. 꾸? 미나르는 1993년에 유네스코 UNESCO 에서 세계문화유산 World Heritage monuments 으로 지정되었다.
바하이템플
연꽃사원(Lotus Temple)로 알려진 바하이 사원(Bahai Temple)

바하이 사원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 이 그 외관을 따서 연꽃사원(Lotus Temple)으로 부르고 있으며, 40미터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 공사는 1986에 완료가 되었으며, 그 장엄한 아름다움을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잘 감상할 수 있고 야경은 또 다른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이 장엄한 사원은 현대 인도의 타지마할이라고 부른다. 바하이 종파의 소유이며, 현재 델리의 빼어 난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 건축물은 반개한 연꽃의 형태로 순수 백대리석으로 지어져 있고 잘 정돈 된 잔디로 싸여있다.
이 건축물은 대리석과 시멘트, 백운석으로 만든 경이적인 건축물이다. 27개의 거대한 연꽃잎 모양 의 사원을 멀리서도 볼 수 있으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입장이 허용된 다.
아침과 저녁 기도시간에는 관광객들의 입장이 불가능하며,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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