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명 : 서울숭례문 (서울崇禮門)
지정내용 : 국보 제1호 (지정일 1962.12.20)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시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 국보 보기
위치 :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1동)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숭례문은 1962년 12월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5월 숭례문 주변에 광장이 조성되었습니다.
화재 前, 숭례문의 모습
그런데 이 숭례문은 누각이 목조로 지어진 탓에 화재에 취약하고,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와 대들보 등의 구조물이 불 탈 경우
건물 자체가 붕괴되는 구조입니다.
10일 문화재청과 서울 중구청 등에 따르면
숭례문에는 소화기 8대가 1,2층에 나뉘어 비치되고,
상수도 소화전이 설치된 것이 소방시설의 전부였습니다.
감지기 등 화재 경보설비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 화재를 막는 시설이 취약한 상태
숭례문은 이번 화재 말고도 상처를 입은 적이 몇 있었습니다.
1991년 8월에는 만취 50대 남성이 훔친 승용차 몰다
숭례문 철제 출입문을 충돌했습니다.
1997년 2월에는 만취 30대 남성이 일본인 관광객 2명과
숭례문 통제구역에 침입했다 체포되었습니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숭례문 현판은 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초기 명필로 꼽혔던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숭례문의 현판은 여느 현판과는 다르게 세로로 쓰여있는데,
이는 풍수지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만들 때
톱니 모양의 관악산이 뿜어내는 화기를 눌러 궁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숭례에서 ‘례’는 오행에서 말하는 ‘火‘를 뜻하고 높인다는 의미의 ’숭’자와 함께
세로로 써 불은 불로써 다스린다는 이치를 적용한 것입니다
2. 화재 발생 긴급사태다!!
Tip*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가는 상황 파악을 잘해주세요~
10일 오후 8시48분-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국보 1호 남대문에서 화재가 발생
- 소방당국의 초기 진압(소방차 28대와 소방인력 90여명)으로
고가사다리와 소방 호스 등을 이용해 진압, 연기는 계속되고 불길은 진화된 것으로 보임
오후 10시40분-숭례문 현판 부근에서 안쪽에서 직경 6m가량의 불길이 치솟아 긴급 진화
- 불이 발화한 곳은 2층 누각으로 알려졌다.
- 숭례문 현판이 불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해 톱으로 잘라냈다.
소방관들이 진화과정에서 추가 화재를 막기 위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 해체 승인을 얻어
불씨가 남아있는 누각 천장의 숯덩이 등을 떼어내면서 국보 1호가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소방관들의 초기 진화로 큰 불길은 잡았으나, 불씨가 남아있었습니다.
소방관계자는 "숭례문 지붕과 내부가 나무로 오밀조밀 구성이 되어 있어
지붕에 물을 뿌려도 내부에 난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을 뿌리면 붕괴우려가 있어
진화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소방차량들이 도로를 막고 진화작업을 벌여 몇 시간동안 숭례문일대에서는
교통혼잡이 일고 있었습니다.
2층 누각이 완전 붕괴되는 큰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1층 누각도 완전 연소되는 등 크게 훼손됐으며 불은 2층 누각이 큰 굉음 소리와 함께
완전 붕괴된 직후 화재 발생 5시간여 만인 11일 오전 1시55분쯤 꺼졌습니다.
소방당국은 11일 오전 2시50분 경, 남은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곧 잡힐 듯 했던 남대문 화재는 그러나 화재 발생 2시간쯤부터
육안으로도 지붕 위 불길이 확인될 정도로 화재가 심각해졌다. 화재 발생 4시간 정도가 지난
11일 오전 0시30분에는 불이 2층 누각 전체로 완전히 번졌고, 오전 0시40분쯤
누각 일부 기왓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2층 누각 지붕이 무더기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형체를 잃어가던 2층 누각은 오전1시50분쯤 완전 붕괴돼 1층에 포개졌다.’
3. 어떻게 이렇게..?
‘문화재청·지자체·소방당국의 ‘부실’ 3박자가 숭례문 화재 불렀다?‘
'국보 1호' 방재 우선순위는 고작'48호'
‘10일 오후 발생한 화재로 불에 타 무너져내린 숭례문에 대한 보험가입실적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화추정위치
서울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숭례문 지붕은 맨 위 기와가, 바로 아래 흙이 있으며
그 아래 '강화다짐'과 '적심', '회벽바름' 등의 순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강화다짐과 회벽바름은 전통 목조건물에 흔히 사용되는 방수공법으로,
그 사이 적심까지 불이 발생했다면 아무리 물을 뿌려도 발화지점까지
물이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입니다.
소방 당국은 이러한 방수공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후 10시30분쯤 연기가 줄어들자
화재가 진압된 것으로 판단하고, 잔불 진화작업에 나섰습니다.
현장 소방관들은 취재 기자들에게
"대충 불길을 다 잡고 잔불처리 작업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방 당국 판단과 달리 오후 10시40분쯤 숭례문 2층 현판 부근에서 직경 6m가량 불길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또 소방당국이 문화재 훼손을 우려해 화재 초기 지나치게 신중하게 대응하다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숭례문 화재가 발생해 10일밤 서울소방본부 측이 대전에 있는 문화재청과
연락해 화재 진압방식을 논의했으나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이
'문화재가 손실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불을 꺼 달라'고 당부하는 바람에
초기 적극적인 진화에 나서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은 YTN에 출연해
"소방당국이 초기 진화에 실패한 것이 화재를 키운 가장 큰 원인"이라며
"헬기를 동원하거나 근접 집중 분사 등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관리 당국인 중구청과 문화재청이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방화 시설조차
갖추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남대문 내부에는 화재를 대비한 스프링클러가 없었으며,
소화기 8대도 1, 2층에 나누어 비치되는 등 소방시설이 미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지기 등 화재 경보설비도 없는 상태로 확인됐습니다.
또 홍예문이 개방되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8시 사이에
평일 3명, 휴일 1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관리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무인경비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번과 같이 홍예문 폐쇄 시간에 발생한 화재 상황에는 신속한 대처가 어려운 상황이다.
황 위원은 "스프링클러는 동절기 동파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필요했다"며 "근본적으로 목조문화재 화재대응원칙이 없는 등
문화재 방재시스템의 부재가 화를 불렀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초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숭례문이 목재 건축물임을 감안해
기왓장 등 일부를 해체하고 진화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인 경비업체는 무인경비업체로서의 한계를 해명했습니다.
“무인 경비업체는 도난을 방지하는 것이 주된 서비스 영역이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방화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애초에 문화재 관리 당국이 유인 경비를 두고,
무인 경비 시스템에는 보조역할을 맡겼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상 이 챕터는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세하게 풀지 못했습니다.)
4. 누구의 방화인가
김영수 남대문경찰서장은 “자연발화 가능성보다는 방화로 추정된다”라 말했습니다.
숭례문 현장 CCTV 분석 결과 성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화재현상서 사다리 두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연이어 라이터가 발견되어 국과수에 감식을 맡겼습니다.
방화범에게 최고 무기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이 아닌, 김영수 남대문경찰서장이 추측을 한 시점으로 가봅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그러나 불길이 처음 치솟은 곳이 일반인 접근이 금지된 곳이라는 점에서
조명시설에서 발생한 누전 화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소방당국은 당초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해 방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오는 증언은 여러 기사들을 참고 하여 빠진 부분을 다 채워 넣은 것으로
말이 모순된 듯 하다 하여도 너그럽게 넘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택시기사 이모(44)씨는 “남대문 방면으로 향하는 도로의 갓길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건널목을 건너서 내 쪽으로 오기에 택시를 타러 온
손님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대로 지나쳐갔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8시 45분쯤)
쇼핑백을 들고 숭례문 옆 계단으로 올라갔다”며 “잠시 후 숭례문에서 불꽃놀이를 하듯이
빨간 불꽃이 퍼져나왔고 신고를 하고 보니 그 남자가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남성은 오른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으며 항공점퍼 같은 옷을 입었고
아래는 검은 등산바지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보통 걸음으로 남대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남대문에서 내려온 뒤에도 전혀 뛰지 않고 차분하게 걸어서 현장을 벗어났으며,
남대문 뒤편 남산방면 도로 인근의 골목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씨는 “경찰이 그 남자를 쫓아가지 않아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쫓아갔는데 찾을 수 없었다”
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목격자도 언론사 등에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사다리를 타고 남대문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제보했습니다.
또 다른 택시기사 이모(49)씨를 불러 참고인 조사를 벌였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화재 발생 무렵인 10일 오후 8시40분~8시50분 사이 숭례문 근처인
서울 중구 YTN빌딩 앞쪽 횡단보도에서 점퍼 차림에 모자를 눌러 쓴 50대 남성을
자신의 택시에 태운 뒤 숙명여대 입구에서 내려주었습니다.
이 남성은 입에서 술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몹시 불안하고 경직돼 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이씨는 전했습니다.
이씨는 "남대문을 지나칠 때 연기가 보이길래 `왜 연기가 나지?'라고 중얼거렸는데
손님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며 "나중에 뉴스를 듣고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씨가 목격한 남성은 황색 계통의 상의를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목격자가 전하는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들의 증언에 따라 40여명의 경찰관을 현장 주변에 투입, 목격자 등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였습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오후 10시께 숭례문 남쪽 서울역 인근에서
방화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이모씨(55)를 붙잡아 현재 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이씨가 만취한 상태여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씨는 술을 마신 가운데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며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알리바이가 있는 이씨를 귀가시켰습니다.
--- 진범 채씨를 체포했습니다.
‘시너 1통(3병)ㆍ라이터 1개로 600년 국보 잿더미’
피의자 채종기(70)씨를 화재 발생 23시간 만에 체포한 데는 '심스(CIMS)'라고 불리는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이 일등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심스'는 2004년 이후 발생한 1000만여 건의 범죄기록이 담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범인의 진술 내용과 범행수법, 성장 과정, 심리상태, 외모와 범인의 특징,
사법처리 결과까지 키워드 검색을 통해 한 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심스'로 용의자 추적을 시작한 것은 화재 발생 직후인 10일 밤 9시쯤.
방화범은 1~2년 안에 비슷한 범죄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화 전과자를 1차 용의선상에 올렸습니다.
최초의 키워드는 '방화'와 '문화재'. 검색된 사건 중 범인이 잡힌 경우만을 뽑아
최근 사건부터 과거로 거슬러가며 분석했습니다. 부부싸움이나 말다툼이 발단이 된
1회성 방화사건은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던 사건으로
재차 용의자를 좁혔습니다. 5~6시간이 지난 11일 새벽 2~3시쯤
용의자가 3명으로 좁혀졌습니다. 2007년 3월 북한산 도선사에 불을 지른 30대,
2006년 수원 화성 서장대에 불을 지른 20대, 그리고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지른 채씨였습니다.
새벽 5시쯤엔 나머지 2명은 수감 중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했습니다.
강력계 외근형사들은 즉시 채씨의 주소지인 일산 아들집으로 출동해
채씨의 행적을 파악한 뒤, 강화도로 가서 채씨를 체포했습니다. 채씨는 검거되는 순간
"이렇게 빨리 잡으러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채씨는 불을 지르기 위해 지난해 7월과 12월에 숭례문을 사전 답사하고
사다리와 시너를 준비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채씨는 토지보상금 4억원 가량을 기대했다가 9600만원밖에 못 받아
관련 부서에 민원제기를 많이 했다.”
“창경궁 화재건의 재판 당시 채씨가 공탁금 500만원을 걸었는데 문화재 훼손에 대해
1300만원 벌금을 물게 되자, 자기는 억울하고 약자니까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고 있다.”
“걸어 올라갔다가 1층 (누각)으로 넘어가는 담벼락에 사다리를 걸치고 넘어갔다.
1층의 턱이 높아 사다리 없이는 힘들어 본가에서 사다리를 갖고 와 사용했다.”
“철학관을 운영하다가 접고 그 다음에는 약품배달을 했고, 현재는 집에서 쉬고 있다.”
12일 숭례문 방화 관련 브리핑에서 채씨가 종묘를 범행 장소로 고려했지만
낮에는 사람이 많아 큰 피해가 우려되고
밤에는 외부인 출입이 어려워 포기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숭례문을 지목한 이유는 인명피해의 우려가 적고 접근이 가장 용이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열차 전복 등 대중교통수단을 대상으로 한 테러도 고려했으나 인명피해를 우려, 포기했답니다.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의 피의자인 채모(70)씨의 아내 이모(70)씨는
눈물기 가득한 눈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채씨 부부는 20여 년간 살던 일산의 집이 2006년 3월께 재개발과정에서 헐린 이후
같은 해 9월께 강화도 하점면 장정2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지난해 초 이들 부부는 합의 이혼을 했지만 채씨는 부인 명의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채씨의 이런 태도와 관련, 딸(48)은
“아버지가 보상금 문제 때문에 여러 차례 진정을 했지만
소용이 없자 앙심을 품으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남편이 조용한 성격에 평소에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으며
가끔 마을회관에서 장기, 바둑 등을 두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채씨는 강화도에 와서는 토지 보상문제에 대해 특별한 말은 안 했지만
평소 이씨가 남편 채씨에게 전세도 못 내는 사람도 있다며
불만을 갖지 말고 살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했습니다.
채씨는 강화도로 이사 오기 전 서울, 일산 등지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면서 지냈으며
강화에서는 밭 2마지기를 사서 배추, 무 등을 재배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일산 등지에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채씨는
강화로 이사 온 뒤에는 주변 이웃들과 어울리며 지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장정 2리 최순식 이장은 "채씨는 말이 적은 편이었고
마을회관에 가끔 들러 놀다 가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5. 현재상황
1) 11일 오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숭례문 화재는 노무현 정부 때문”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숭례문 화재가 이명박 때문인가, 노무현 때문인가! 하는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2) 숭례문 릴레이 추도사 사이트
news.naver.com/search/search.naver?rcsection=&query=%BE%C6%2C+%BC%FE%B7%CA%B9%AE+%A1%A6+%B8%B1%B7%B9%C0%CC+%C3%DF%B5%B5%BB%E7
3) "김문수 지사가 어제 남대문 화재현장에 갔다
서울시장으로 오인받거나 문화재청장인 줄 알고
분노한 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 했다"고 밝혔습니다.
4) 다음과 네이버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숭례문을 사랑하는 사람들(cafe.daum.net/koreantreasure)’과
‘숭례문 살리기 카페(cafe.daum.net/sougremoon)’등 40여개의 숭례문 관련 카페가 생겨났다. 또 ‘숭례문 추모 사이트
(hi2oo.com/sungrezchoomo/mczmodulefos/efnchoomo/index2.htm)’
에는 네티즌들의 애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5) 당국은 숭례문 화재 현장에 쌓여있는 잔해들을
위치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서둘러 수거해,
크기가 작은 것은 그대로 폐기물 처리장에 내다버리고 있습니다.
6) 한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나온 기왓장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 네티즌은 숭례문 기왓장을 폐기물 처리장에서 수집했다며
경매가를 50~100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이에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판매 중단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자 경찰이 해당 글이 게시된 경위와 함께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7) 시민들이 전화 등을 통해 자원봉사 가능성을 묻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자원봉사가 필요한 작업은 없어서 연락처만 받고 있다고 합니다.
복구에 쓰일 소나무 구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재청에는 전화와 홈페이지를 통해 복원에 쓰일 소나무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8) 2006년 제작한 정밀 실측도면 182장을 기본으로 하고
1960년대 초 발간된 숭례문 수리보고서를 참고로 해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
원형복원 최소한 2~3년 걸려 국산 대형 소나무 확보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현판이라도 건진 것이 다행일까요..
9)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 복원과 관련
"우리 국민 모두가 십시일반 모은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을)복원하자"고 12일 제안했습니다.
덧붙여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국민 정성으로 복원해 우리 마음을 추스르고
소망을 다시 깨우는 제안이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화답하고
"문화재 관리에 대한 법과 시스템을 선진국에 맞게 준비했는지,
우리 마음가짐은 어땠는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의견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답니다.
10) 12일 오후 서울 숭례문 화재현장에 한 어린이가 숭례문을 의인화해 쓴 편지가 꽃다발 위에 놓여있습니다.
11) ‘숭례문에 무궁화, 국화 바치기 운동’, ‘100원의 기적’ 등
여러 운동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12) 철제 15m 가림막이 잘못을 가리는데 급급한 처사라는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투명으로 교체된다고 합니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덧집도 씌운다는군요.
영하와 영상의 날씨가 반복되는 최근의 기온 때문에
축대 안에 스며든 물기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해 축대 자체가 위험합니다.
13) 숭례문 1층 뼈대 90% 살아 있다는 군요. 기쁜 일입니다.
14) “관광객마저 발길끊나”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숭례문(남대문) 화재에 넋을 놓았습니다.
15) 국보 제1호 숭례문의 넋을 기리는 49재(四十九齋: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가
3년 전 화마(火魔)에 휩싸였던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에서 치러집니다.
숭례문 화재 후 49일인 3월 29일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에 있는
이 사찰의 대웅전에서 숭례문 추모제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풍납사랑 우리님들
우울한 소식과 함께 시작한 하루였지요?
전쟁 중에도 일제 시대에도 살아 남았던
우리나라 국보1호 숭례문이 불과 몇시간만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600년을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보고 껴안고 지켜주었을 터인데...
맘이 아픈 모습에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지키고 보존해야할일을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리고 무시해버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들을 해보는 계기가 되셨음 좋겠습니다.
장미처럼 화사한 화요일 시작 하세요...*^^*
배경음악;사랑인걸 /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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