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를 두 번 갈아타고, 지하철 역시 두 번 갈아타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 곳은 서초구 교대역 부근에 위치한 지역재단 사무실이었다.
29일 오후 2시 전국 방방 곡곡에서 농촌교육에 관심이 있다는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하나둘 모여 자리를 가득 메웠다. 강원도 횡성에서도, 경남 거창에서도 충남 공주에서도, 전남 나주에서도 경기 강화도에서도 농촌의 비참한 교육현실을 토로했고, 꽉 막혀 있는 희망과 대안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했다.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결손가정 아이들이 그냥 방치되고 마는 농촌교육, 면에서 읍으로, 읍에서 시로, 시에서 서울로, 농촌교육의 물꼬는 도시로 도시로 타고 흘렀다.
선생님과 학부모, 아이들은 더이상 농촌과 농업에 대해서 가르치지도 배우려 하지도 않았다.
성적의 중요성, 그리고 서울대의 중요성은 알아도 누구도 농촌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농촌과 농업, 지역, 생태 환경은 묻혀져 갔고, 농촌교육은 서울대를 몇명 보내는 가에 따라 그 성공여부가 결정됐다. 간혹 나오는 깡촌 학교의 서울대 진학 성공기가 몹시 우울했고, 대안학교도 지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몹시 서글펐다.
거창고가 농촌 지역의 일류고로 서울대를 70-80명을 보내는 학교가 됐지만, 그 학교를 채우는 아이들은 결국 전국에서 오는 수재들만 차지하고, 정작 거창의 아이들은 4등부터 7등으로 매겨진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 학교지만 지역 아이들이 없었고, 그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다시 거창으로 오지 않았다.
'등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결국 거창을 지키는 아이들은 거창의 삼류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네들은 일찌감치 고등학교에 진학함과 동시에 결코 달갑지 않은 낙인과 주홍글씨를 맘속에 새긴다. 우리네 지역에서 옥천상고가 그러하듯이....
일류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이들과 부모들을 괴롭히고, 스스로 낙오자가 되게 한다.
나주의 사례가 발표됐다. 이웅범 나주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이 발제했다. 나주도 광주에 교육침탈이 되고 있었다. 옥천이 대전에 그러하듯이...이웅범 국장은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할 때마다 학생들이 광주로 많이 빠져나간다고. 그래서 시에서 재정지원을 해 영어교육에 신경을 썼고, 면 지역 학교에 심화보충수업비를 대줬다고..눈물겨운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까지 잡아둔 아이들은 결국 다시 나주로 돌아올까?
그렇지 않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울화가 치밀었다. "장학금도 주고, 열심히 서울대 가라고, 좋은 환경도 만들어 주는데, 왜 고향에 내려오지 않는 거야?"
우리는 언제까지 '옥천고에서 몇명이나 서울대 보냈다더라!' '옥천 출신 누구누구가 서울에서 성공했대!'라는 말을 들으며 자위를 할 것인가? 그것이 정녕 옥천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항상 우리 옆에 있는 선산을 지키는 등굽은 소나무가 우리 지역 공동체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한 면지역 초등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농사하면 드는 생각이 뭐냐고? 어렵고 힘들고, 돈 못번답니다. 농부가 꿈인 아이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 넓은 뜰 10년 후면 누가 지킬까? 아득했습니다.
한 중학교 아이한테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너 공부 못하면 평생 농사짓는다고 말해서 기분이 나빴답니다. 농사도 머리가 좋아야 짓는 건데,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데.... 옥천의 환경농업인들과 홍동에 가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농민들이 농촌이 점점 어렵다고 하자, 이야기하더군요.
정민철 풀무 전공부 교사가 여러분들 자식들 농사 시킬 것입니까? 여러분도 자식들 농사 안 시키려 하는데, 누가 농촌에 들어오겠습니까? 농사짓는 학부모들은 더이상 아이들 농사일 안 시킵니다. 농업과 농촌에 대해 잘 모르는 선생님들 아이들에게 도시로 가자고 가르칩니다. 지역은 아예 없습니다.
생태와 환경은 책 속에 갇혀있고, 아이들은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그 가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 아이들이 지역과 농촌을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농촌 교육 문제, 서울대를 몇 명이나 더 보내고, 학력을 더 신장시키자고 하는데 목숨을 건다면 해답은 없습니다.
공부를 못 하더라도 지역과 농촌, 생태 환경을 이해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를 나온 아이들이 몇이나 지역에 돌아올까요? 기껏 들어와봤자, 군수나 한다고, 국회의원 한다고 찾아들 것입니다.
지역에 남을 아이들에 주목합시다. 우리의 지역 일꾼들을 성실하게 키웁시다. 어릴 때부터 농촌과 지역, 생태를 이해한다면
하바드, 옥스퍼드 대학을 가더라고 다시 지역을 찾을 것입니다. 지역에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줍시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학생은 지역의 사회복지사가 되고, 건축을 전공한 학생은 생태건축가, 농업을 전공한 학생은 농부가 됩니다. 문헌정보학을 공부한 학생은 마을 작은도서관 사서가 되고, 연극을 전공한 아이는 지역의 극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자치단체가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지역 공동체를 더 윤택하게,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입니다."
목소리 톤이 높아졌고, 말이 끝나자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괜한 이야기를 한 건가?
돌아오는 열차속에서 다시 한번 고민했다. 지역에서 이 화두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 넘기 힘들다는 서울대 패러다임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역에 머물러 사는 아이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감을 가질 날은 과연 올 수 있을 것인가?
첫댓글 실천해라..움직여라..바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