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체험 1
‘카드연체로 거래 중지. 문의사항은 1544-XXXX로 문의바랍니다.’
작은 쪽지 하나만 남기고 현금 인출기가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뽕길은 다른 카드 두 개를 써 보았지만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십만원 정도는 현금 인출기에서 간단하게 뽑아쓸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이 난 것일까?
무슨 일인가 물어보려고 1544-xxxx번으로 눌러보았지만 전화불통이다.
뽕길은 강릉에 있었다. 직장에서 보내 준 직무연수를 마치고 차를 빼 가지고 나오려는데 오른쪽 백미러가 너덜너덜했다. 누군가 차로 백미러 부분을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당장 새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못해도 삼만 원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침 연료도 바닥 직전이다. 고물차지만 4만원 정도는 먹는다. 가다가 밥 사먹으려면 만원 정도 들어갈 것이다. 올 때 넉넉하게 이, 삼십만원 정도는 가져와야 했었는데 자린고비 짓을 하느라고 딸랑 육만원만 챙겨 왔었다. 같은 지역친구끼리 한잔 후배 사준다고 한잔, 무슨 회비 낸다고 술먹다 보니 슬금슬금 빠져나가더니 육만원이 모두 빠져나갔다.
“통장에 돈이 없어서 카드대금 연체가 되었네요.”
뽕길이 내민 쪽지를 본 여직원이 알아본다.
“그럴 리가 없어요. 일주일 전에 300만원 넘게 있었단 말요.”
“계좌조회해 드릴까요?”
통장계좌번호를 불러 주었다.
“지금 계좌에 제로입니다. N카드대금 130만원이 연체되어 있네요.”
“N카드가 연체되었다고 S카드까지 정지되나요? S카드대금은 연체되지 않았는데요.”
“네, 요즘은 한 카드회사가 연체되면 다른 회사의 카드도 동시정지되거든요.”
뽕길의 시야에 갑자기 노오란 색만 가득찼다.
아침만 해도 그랬다. 거리에 노란 은행잎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노란 색이 별로 좋은 색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절망스러울 때 보이는 색이 노란 색일까?
차 수리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름은 넣어야 대관령 고개를 넘어서 원주에 갈 수 있을 텐데...
강릉에 아는 사람이 있나 기억 속을 헤매 보았다.
강남기, 중학교 선생이름이 생각났다. 십여년 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푼돈 꾸어달라고 부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동환, 대학교 교수이름이다.
전화하기 마땅치 않았다.
꾸르르르륵...
뭐야 이거.
이넘의 뱃속에는 거지가 들어앉았나?
대책이 서지 않을 때 뽕길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었다. 길을 찾지 못해서 이곳저곳 헤맬때는 오줌이 그리도 마려웠었다. 공중화장실에서 해결하고 30분 정도만 돌아다니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오줌이 마렵곤 했었다.
배가 심하게 고파왔다. 돈이 당장 필요한데 해결이 어려우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마이너스 대출통장 시절 마이너스 한도가 넘어서 이곳저곳에서 연체료 청구서를 받고도 해결하지 못할 때 그토록 먹고 싶은 것이 많았었다. 한우 등심고기, 돼지갈비, 삼겹살, 옆집에서 파는 싸구려 통닭고기라도 한 점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허기가 밀려왔었다. 몇날 며칠을 밥을 먹어도 언제 먹었냐 싶게 뱃속이 허전하고 불안했었다.
당장에 기름값 만원과 고속도로비, 싸구려 해장국을 먹는다고 해도 이만원은 있어여 할 것이다.
구걸할까?
한푼만 줍쇼.
그것도 해본 사람이나 하지 첫 마디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걸 왜 몰랐을까?
농협지점장의 눈빛이 떠올랐다. 같은 사무직이라서 그런지 사정하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았다.
“도와 주세요. 이만원만 빌려주세요.”
전후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선뜻 빌려주었다. 얼씨구나 좋구나 땡이로구나.
그렇게 노오랗던 하늘이 푸른 하늘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뽕길은 근처 식당에서 싸구려 해장국을 먹고 남은돈으로 기름넣고 고속도로비 내며 집으로 잘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황당했던 일을 콩트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황골농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