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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도 기 행
2008년 11월 6일~8일(2박3일 ) 나들이
제경 안동사범11회 동기생 23명중 17명은 대절한 관광 버스로 종합운동장역에서 8시 30분에 거창을 향해 힘차
게 출발 하였다. 중간에 2명을 태우고 또 3명을 태워야 되는 데 깜박하고 지나 처 버려 안성휴게소에서 대절한
버스가 들어가 태워오지 못한 3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 먼 길을 이동 할 때는 중간 중간에서 개개인의 편리를 보아서
서는 것도 좋지만,
고속도로 여건상 버스가 자주 정차해서 사람을 태운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인 것 같다. 책임자들은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둘러 보았지만 아무 도움도 주지를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 만 가졌다. 그리고 안성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는 이길영 친구는 아마 무지무지하게 지루 함을 갖고 혼자 기다릴 것이다. 버스를 노처 버린 3명은 택시로 달려왔다. 꾀 시간을 보내고서야 출발 할 수가 있었다. 안성 톨게이트에서 길영군을 태우고, 23명을 태운 관광버스는 힘차게 거창을 향해 달렸다. 주위의 풍경은 이제 스산한 초겨울 모습을 하고 있어, 겨울이 온다는 풍경에서 조금은 쓸쓸함을 느끼게 하였다.
오늘 일기예보로는 비가 내린다고 했었는데 날씨가 너무도 좋다.
아침에 승차관계로 조금은 신경을 썼지만 지금부터는 모두들 좋은 마음으로 돌아 섰다. 승차한 동기생들이 옛 날 학창시절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초로의 밝은 모습에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해있다.
벌써 대전을 빠져나가니 남도의 냄새와 이제는 대도시 모습은 살아지고 옛 고향의 냄새가 코에 닿는 것만 같다.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위를 차는 힘차게 달리고 있다. 농촌의 집과 산골짝의 논과 밭들은 옛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였다. 금방 육십령 백두대간 터널을 빠져 나와서 거창 땅으로 들어섰다. 옛날 같으면 추풍령을 넘어 김천~거창을 거치는 좁은 국도로 온다면 아마 2시간은 더 걸려야만 되는 길을 지금은 고속도로 바른 길로 달리니 거창은 대전에서 금방이다.
거창은 우리나라 내륙 깊숙이 들어 앉아있는 조그마한 고장이다. 서북쪽에 남덕유산(1507m)~무룡산(1492m)~ 덕유산(1614m)~삼도봉(1248.7m)~수도산(1327.4m)의 백두대간의 부채 모양의 천 미터가 넘는 준봉들이 뒤에서 감싸 안고 있어, 그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수려한 계곡을 만들어 계곡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어 풍류객이 즐기는 정자 문화가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을 손짓하고 있다. 우리도 사도의 길을 걷던 사람들이라, 그 풍류에 빠져 보고 푼 마음에서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것이다.
그 중에서 농월정(弄月亭)앞 안반과, 수승대(搜勝臺)는 손꼽히는 빼어난 곳이다. 이 두 곳을 우리 일행은 관광 목적지로 삼고 거창을 찾게 된 것이다.
먼저 농월정 앞 식당가에서 메기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영, 서비스가 엉망이다. 음식을 차려놓고는 주인이나 종업원
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는다. 너무도 화가 나서 주인장을 큰소리로 불렀으나 금방 오지를 않는다.
경상도 사람들의 서비스 정신을 고처주어야 되겠다고 큰 소리로 여기저기서 불러도 꿈적 않는다. 겨우 밥 한 그릇을 가지고 오면
서 이 밥 남기면 안 된다고 큰소리에, 우리 정태씨가 화가 잔득 나서 아주머니를 혼내는 모습이 대단했다. 아주머니의 기를 확실히 꺾으니, 이제야 꼬리를 내린다.
식사를 마치고 농월정 아래 암반 구경에 나섰다. 지족당(知足堂)박명부가 지었다는 농월정은 어떤 취객이 술을 먹고 불을 질러 불에 타서 흔적도 없고, 그 자리에 글씨만 암반에 새겨져 있었다. 그 앞에 1,000여평의 반석만 선비들의 이름이나 행적을 새겨 놓고 있어 그들의 옛 영화를 말해 주는 듯 했다. 달빛이 물 아래로 흐른다고 해서 농월정이라 했는데 우리 일행도 암반사이로 옛 선비들이 즐기던 마음으로 흐르는 물길위룰 잠시 서성이면서 물길을 뛰어넘으며 거닐어 보았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수승대(搜勝臺)를 찾았다.
이곳 은 삼국시대 때,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을 보내는 곳이라서 수송대라 불렀으나 퇴계선생께서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처가 집에 오셨다가 빼어난 경치이야기를 접 하시고 이름을 수승대(搜勝臺)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니, 고을에서 그 이후로 수송대를 수승대(搜勝臺)로 개명을 하였다 한다.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오래도록 쓰이어 오던 지명을 한 인격체의 말 한마디에 지명을 하루아침 에 바꾸어서 사용한다는 것은 퇴계선생님이 그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존경 받는 분이셨다는 것을 짐작 해보게 한다.
정말 수승대는 아름다운 곳이고 그 거북바위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 감탄 하였다. 그러나 그 거북바위에는 많은 상처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떨런지는 모르지만 나만은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상처를 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그 당시에는 그런 문화가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은 요즈음에 그런 일을 하였다가는 큰 욕을 얻어먹고 말 것이다. 이북에 유명한 곳은 거의가 김일성 찬양 문구를 새겨놓았지만, 과연 그자가 먼 훗날 통일이 되었을 때에 사람들이 그것을 수용할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수승대에서는 관광 안내원이 따라 붙어 자세히 해설 해 주었다. 다, 둘러보고 올 때에 조금의 수고비를 건너려고 하였으나 한사코 사양하고 창녕군 관계자에게 안내 잘 받았다는 전화 한통화로 족하단다. 외진 이 조 그마한 고장에도 관광 문화가 정착되는 것 같아 우리들 모두에게 밝은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수승대를 뒤로하고 버스는 진주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촉석루에 도착했다.
촉석루 주위는 옛날과는 달리 잘 정비 되어 있었다. 촉석루 앞에 의암사(義巖祠)가 있고 의암이 물위에 떠있다.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붉은
그대마음 흘러라.
(변영로의 시 논개에서)
이 시한수로 님 이신 논개님의 마음이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의암(義巖) 앞에서 혼자서 읊어보았다. 진주 시가지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1960년대에는 진주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옛 일이 떠오른다. 파인에플 재배를 하기로 마음 먹고 모종을 사기 위해 몇 번을 들락 거렸다. 결국 논4 마지기의 돈을 날려버리고 재배를 포기했었다.
유적지들을 돌아보고 오늘 밤을 보낼 부곡 온천을 향해 버스는 어두운 밤길을 달렸다. 온천장에 도착해서 온천욕 을 하고 하루 밤을 편안하게 보냈다.
아침식사를 하고 곧장 달려서 사명대사의 유적지를 답사했다. 표충비(表忠碑)를 둘러보았다.
임진왜란 때 협상자로서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포로 3천명을 대리고 오셨다니 머리가 숙여진다. 나라가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태로울 때에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들은 목숨이 아까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에, 당신은 가서 죽을 지도 모르는 적의 나라에 목숨 걸고 들어가 할말 다해가며 적의 마음을 녹여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 왔을 때 과연 녹을 먹고 임금 밑에서 호강호식 하는 신하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가 궁금했다. 그 위대한 분의 행적을 오늘 직접 와서 보게 되어서 정말 잘 왔다고 생각이 든다. 생가도 방문했다.
마침 사명대사 모친의 제사 날이 라서 제물을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선 사명대사 사적지를 둘러보았다. 사명대사님의 애국심을 기리남기기 위해서 나라에서 많은 돈을 드려 사적지를 잘 정비했었다. 사명대사의 동상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배례를 드렸다.
그 길고도 치열했던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을 비롯해 권율장군, 사명대사, 서산대서, 곽재우, 등 많은 선인들이 구국에 온힘을 기울였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
영산 정사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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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정사는 사찰이면서 탑의 형 태로 지어졌고, 박물관이 있어 박물관을 견학하였다. 진신 사리 100만과 10만 패엽경과 2천 여 점의 각국의 불 상이 전시되어 있어 불교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까지 와보지 못한 곳을 방문하고 견학해서 좋은 경험을 하고 우리일행은 김해로 떠났다.
김해에는 김수로왕릉(金首露王陵)이 있다. 소박하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왕릉이었다. 가락국(서기42년) 시조대왕으로 김해김씨, 허씨, 인천이씨의 시조다.
점심을 먹기 위해 김해 야외 음식점이 몰려 있는 유명한 삼겹살집으로 갔다. 정말 맛이 있어 한사람이 2인분 이상씩을 먹어 배가 불러 일어서지를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김해평야를 달려 부산 태종대에 도착 했다. 부슬부슬 비가 조금씩 내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았다. 부산에 사는 사범학교 시절 운영위원장(학생회장)을 한 신화균 군이 우리일행을 반겨 맞아 주었다. 부산에도 몇 명의 동기생들이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혼자만이 나왔다. 정말 반가웠다. 얼굴들이야 세월이 많이 흐르고 모습들이 많이 변해서 알아보기가 힘들겠지만 동기생이라는 한 가지 인연으로 무조건 반가웠다. 태종대는 관광 열차로 한 바퀴를 도는데 경노 증 때문에 직원들과 조금은 옥신각신 했으나,공동사회에서의 질서 때문에 원칙을 지키려는 직원들의 태도가 조금은 거칠어서 기분은 좋지 않았다.
잘 해결되어 관광열차를 타고 태종 대를 그만 지나치고 그저 열차로 한 바퀴 돌아내려오고 말았다.
대신 용두산 공원을 가기로 했다. 용두산 공원을 언제와 보았던가? 너무도 오래여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다.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에서는 이런 전망 좋은 곳이 꼭 있어야 될 것 같다. 부산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조망권이 넓어 정말 좋았다. 계획된 태종대 관광이 약이 되어 좋은 것을 놓쳐버릴 번 했다. 용두산 공원 주위가 재개발하느라 분주한 모습과 100층이 넘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또 이곳이 부산의 명물이 될 것 같다.
부산을 한눈에 다 보고 자갈치 시장으로 이동해서 회센터에서 회 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 로 질서는 잡혀, 음식이 근방 나오고, 여러 점포가 협업으로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새로 지어진 건물로서 부족한 점은 화장실 시설이 엉망이었다. 그 넓은 건물에 화장실하고는 너무도 초라해서 실망하였다. 화장지도 걸려 있지 않고 지저분하였다. 운전기사의 곡예운전에 마음이 조려서, 펀치를 않았지만 능숙한 운전 솜씨에 감탄 하였다.
좁은 골목길을 대형버스가 곡예를 하며 빠져 나와 밤의 부산시가지를 질주하고 있다. 밤의 부산은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시가지는 자갈치 시장에서 우리가 하루 밤을 보낼 송정까지는 지루하기만 하였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야 송정에 있는 여관에 도착했다. 짐을 정리하고 신화균이 가지고 온 안동소주 진품 과 문어안주로 맛있는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몸을 풀고 와서는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윤 목사님은 바둑에 심취해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바둑 뜨기에 몰두 하는 것 같다.
윤 목사가 걱정이다. 몸도 좋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그래도 맛있게 3시간 정도는 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데, 밤새도록 바둑에 몰두한 신화균 군이 부엌 한쪽에 이불도 비개도 없이 쪼그리고 눈은 붙이고 있는 모습에서 친구가 좋기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하균 군의 잠자리에 내 이불을 갖고 가서 덮어주고 비개 하나도 갖고 가서 배어 주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방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 아서 마음이 좋지 않고 신경이 쓰였다.
5시 30분 신화균 군이 집으로 가면서 여성 동기생들에게 인사 못하고 간다고 대신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떠나는 동기생의 모습에서 인연과 정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송정 해수욕장 이곳은 3년 전 친구와 둘이서 용산에서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고 여수까지 가서 회집에 들려 회를 먹고, 또 오후에 순천에서 부산까지 오는 완행 열차를 타고 밤늦게 부산에 온 일이 생각난다.
10시에 도착하니, 제자들이 마중을 나와 우리를 반기고 회식을 시켜주고 온천장에 편히 쉬게 하고, 그 이튼 날도 제자 별장에 들려 푸짐한 대접을 받고 하루 밤을 이 곳 송정에서 보낸 곳이다.
그 때 잔 여관도, 먹었던 음식점도 그대로 있다.
그때에 나 혼자만의 꿈을 꾼 것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송정해수욕장에서 10년 동안 6학년을 6번 했으니 그 제
자들을 불러 모아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순서를 정하고서 그들과 이곳에 와서 40 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 때 운동회에서 했던 종목들을 가지고 운동회를 열 것을 꿈꾸어 보았다. 잠 안 오는 오늘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부드러운 모래밭에서 달리기 시합도 하고, 씨름도 하고, 기마전도 하고, 수건돌리기도 하고, 하루라는 시간을 옛날로 돌려놓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 보았으며 하고 꿈 같은 생각을 꿈꾸며 잠 안 오는 이 새벽을 보내고 있다.
그럼 나는 하얀 체육복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단위에서 호루라기를 부러 가며 지휘를 하고 50대 초반인 학생들과 60대 초반인 학생들이 뒤고 달리고 붙어서 싸우고 왁자지껄한 운동회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 남학생은 덤부링을 하고 여학생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고 남학생들은 사람을 뛰어넘어 구룰 수가 있을까? 남학생이 고무 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에게 가서 칼로 고무줄을 잘라
버릴까? 눈을 감고 혼자 고소를 하며 상념에 젖어 본다.
아니 꼭 이룰 것을 오늘 저녁에도 나와의 약속을 해 본다. 그러려면 예산을 짜야겠지, 돈은 얼마가 들까? 어디에서 충당할까? 꿈같은 꿈을 꾸며 달콤한 송정에서의 새벽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약속해 본다. 꿈꾸는 자에게는 꼭 꿈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말이다.
창가가 밝아오니 서둘러 세수를 하고 아침바다를 바라보며 정한 회집을 찾아 나섰다. 송정 해수욕장은 깨끗했다. 반달모양의 아담한 고운 모래가 깔려 부드럽게 보였다
이곳이 나는 학교 운동장으로 생각한다. 갈매기 떼가 한 무리지어 아침 바다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한참을 가서 정한 회집에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오늘 일정은 울주군에 있는 자수정 동굴나라를 관람하고 양산 통도사를 방문하고 운문땜을 지나 운문사를 방문하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스산한 날씨지만 동굴이라서 구경에는 지장이 없다. 규모가 대단했다. 보기에는 좋지만 이곳도 애환은 있는 법, 이 어마어마한 굴을 개발하자면 많은 희생도 따랐을 것이고 희로애락이 많았을 것이다.
선물용 물건을 사고 버스에 올라 통도사를 향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로 들어간다. 해인사, 송광사, 그리고 통도사다.
통도사는 거대한 사찰이다.
건물도 많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있어 불보사찰이라고도 한다. 건물이 모두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그 이후에 중수하였다. 점심식사는 통도사 강변 하천길에 위치한 부촌 쌈밥집 불고기 정식을 점심 식사로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은 것중에 제일 맛이 있는 음식이었다. 특히 울릉도 명이나물, 나래분지에서 생산되는 나물인데 불고기를 싸서 먹으니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있었다. 호박전도 된장찌개도 모두가 맛이 있었다. 음식이 깔끔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북쪽을 향해서 버스는 달린다. 운문땜이 나오고 산굽이를 도라 오르니 운문 땜은 살아지고 내리 막 길을 달리다 또 굽이굽이 돌아드니 운문사가 나타났다.
운문사는, 17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이다. 비구니의 전문 강원으로 선정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 기간이다
그리고 천연 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가, 보는 이 마음을 기쁘게 하고 거기 의젓하게 서 있다.
이 소나무는 봄가을 두 차례 막걸리를 먹는 다고 한다. 또 사찰 주위에는 생식 마을이 형성되어 생식 마을로도 유명하다. 스님 가운데서도 생식을 하는 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운문사를 뒤로 하고 서울로 버스는 힘차게 달린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 할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소주
잔이 돌아간다. 이제는 강제가 통한다. 술 못하는 사람들도 한잔씩을 한다. 일어서서 몸을 흔든다. 한 시간 동안은 격렬한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대었다. 음악이 꺼지고 모두들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 후 기상, 석식으로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고 이번 여행을 뒤 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임원진의 노력으로 많은 인원이 동참하게 되었다. 나도 떠나는 날 아침에야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못 왔으면 후회 할 번했다. 참가 못한 동기생들은 모두 각자 형편이 맞지 않아 못했을 것이다. 함께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형편상 동참하지도 못하면서 찬조금까지 보낸 마음이 넓은 친구들도 있어 참가한 모두가 늦게나마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본다. 헤어 질 때는 두 가지의 선물도 안겨준다. 어쩌든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못가 본 곳을 답사 했다는 것과.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경험과 즐거운 여행이었다.
앞에서 애를 쓴 임원진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먼 훗날 늙어서 못 움직일 때, 그 때가 너무도 좋았어 ! 하고 이 여행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양지 바른 곳에서 햇볕을 쪼이며, 이날이 그리워 눈물을 훔칠지 누가 알 것인가?
사진찰영 : 김정태 (대머리)
편 집 : 심재권 (거 산)
글 쓴 이 : 남동완(동 몽)
첫댓글 동몽! 잘 보았네. 세 사람의 공조로 멋진 남도 기행을 만들었네. .그러나,우리는 모두 주연자가 아니고. 조연자 일 뿐이며 액스트라일 뿐일세. 아름다운 화면 배경을 멋지게 만들어 놓고,우리를 무대 위에 올린 분이 누군가? 우리는 무대 위를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잠시 잠간 지나 갔을 따름일세. -나를 바라보고,관객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연출자를 바라보고, 연출자의 계획과 마음을 알고, 무대 위에 서야 하지 않을 까?===산파 윤 형 선 올림===
아니, 아니, 아니...... 우리 모두가 주연자였지. 우리 동기들 행사에 누가 주연자고 또 누가 조연자란 말인가? 모두가 주연자고 주인이고, 모두가 앞잡이고, 다 같은 동행자일 뿐. 앞선자도 없고 뒤진자도 없어. 다, 다, 다 똑같은 주연자라네. 엑스트라??? 우리 친구들을 욕 보이는 말씀일세. 그 말이랑 취소하는 게 마땅...승리자, 할말 있음 해봐, 해봐, 해봐........
대머리님! 이해가 빗나갔군. 촛점이 다르군. 대머리님은 우리또는 나 중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나는 촛점이 다른거라오. ....1.아름다운 배경을 꾸며 놓고 만들어 놓은 분이 누구신가? ...2.아름다운 단풍을 만들고.하늘을 높고 맑게 쳐 놓고. 산천을 예쁘고 아름답게 단장하여 옷을 입힌 분이 누군가? ...3. 괴암절벽 바위를 올려놓고. 높고 낮은 산. 골짜기의 맑은 물이 흐르게 하신 분이 누군가? ...4. 우리의 마음을 일으켜-잠시잠간 스쳐 구경하게 하신 분이 누군가? ...5.그 분의 위대하신 성품을 바라보고. 우리 입에서 감탄사가 나오고, 시가 나오고. 노래가 나오게하신 분이 누구신가?..
6. 우리는 꾸며놓은 장치 깔아놓은 무대위에 잠시잠간 엑스트라로 지나갔을 뿐. 내가 한일이 있는가! 내가 한 일은 없고, 눈으로, 마음ㅇ,로 보고 느끼고. 감탄한 것 뿐 아닌가? ..누가 계획하고 ,꾸며 만들었을까? 내가 잠시 여행계획을 짜고 만들고 한 것이 주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더 크게 웅대하게 만민을 위한 계획자요. 연출자를 말하고 있다네. 귀공과 내가 보는 시각이 다르다 이거지. -대머리님! 내 마음을 이해하시게나! ---산파 윤형선의 꽈배기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군---
승리자는 오로지 모든 걸 그 쪽으로만..... 나하고는 모든 게 다르니......대화 자체가 안돼는군!!!
동몽!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 "내 살을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로다."요6;55) -동몽! 내가 사과를 알고,사과임을 믿고, 사과가 한 상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과를 먹지 아니하면, 그 사과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과를 내가 입으로 찢어서 먹어야 참 맛을 알고. 내 몸에 들어가서 양식이되고, 에너지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하듯-예수그리스도가 나에게 힘이되고 피가되고 양식이되고있는가
동몽!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한 1서 2;15)--우리의 육신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즐기고, 쾌락을 사랑하고. 눈에 보이는 안목을 좇아 따라 가게 된다오. -마치 신기루를 따라 가다가 멸망하듯,,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딤전 5;6 ). 동몽! 믿음의 선배 앞에 내 지혜가 부족하고, 앎이 부족하여-말씀만 적었네, 널리 이해 하시게...... ==산파 윤 형 선 올림==
설교 말씀 잘 둘었습니다. 목사님! 부산 신화균 과 1시간 정도 통화했다. 너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학교다닐때도 바둑을 두었나 보더라 공부는 안하고 바둑만 두었어 신화균에게도 설교 말쑴을 오래도록 들었다 . 신앙심이 대단하더라 잠 못자서 힘은 안 들었는지? 나는 갈 때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갔다오니 몸이 좋아졌어? 사모님 말씀 잘 듣그래이 알았지.
우리집 사람 걱정 안끼치려고, 요사이는 말을 잘 듣고 있어요. 고마와요. --동몽!! 나는 지금 설교자의 위치에 있지 않아요. 설교하려고하지 않고. 서로 대화의 위치. 상담의 위치에 있어요. --동몽에게 직설 한다면..."거듭났느냐! 라는 질문을 하고 싶고." -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가지 못하니, 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흰 눈같이 양털 같이 깨끗이 씻었느냐 ! (사1;18) 를 -상담하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 뿐일세. - 마음이 율법에 의하여 사망이 온 적이 있느냐! ....이런 대화를 하고 싶다 이거지. ---미안해요. ===산파 윤 형 선 올림===
동몽! 동몽과 나 사이에 마음이 연락되고, 마음이 서로 통하기를 바라오. 마치 다윗의 마음과 요나단의 마음이 서로 연락되어 통하듯-- 동몽과 나 사이에 진리의 마음이 흘러 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오. - 마치 전선이 이어지면- 불이 켜 지듯. 서로의 마음에 진리의 불이 켜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오. ===윤 형 선 올림===
동몽! 동몽의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일하시는가! 아니면 죽은 하나님이 있는가! .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음으로, -눈이 밝아지게 되고..선과 악을 알게 되고. 자기를 바라보니 벗은것을 발견하여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기의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웟지. =눈이 밝아지니, 허물을 보기 시작했고, 문제가 생기고.두려움이 오고. 슬픔이 오고. 악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이 어두워진것이라오. = * 성경 속에는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오.
우리가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의 눈, 아담이아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생각을 ,우리도 물려 받아서.-하나님의 세계를 모르고 살아온 거라오. 지금까지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고, 살아온 세계와 전혀 다른세계가 있음을 느끼고 알게된다오. = 성경을 읽다가 보면 아!! 이것이 우리와 다른세계로구나. 아 이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았구나!! 알게된다오. 마음의 세계를 알고 나면- 나도 성경 속에 기록된 인물과 같이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여 동행하면서--하나님의 세계로 진입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오.=창6장에서 노아는 다른사람들과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방주를 지어, 홍수위에 올라설 수 있었고,
창5;24절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에녹은 일반 사람들과 다른 마음으로=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다가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나간 이야기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하나님으로 부터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다윗은 초장의 목동이었으나,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함으로 -사무엘로 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고.---성경의 수많은 선진들이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를 발견한 자들의 이야기 라오.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내 생각 내고집. 내 굳은 의지를 꺾고,. 참감람 나무가지에 접붙임을 받아,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마음에 받음으로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새로운 마음으로--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새 것을 받아 살아간다면 얼마나 복 될까. 이거지 !!! === 산파 윤 형 선 올림===
목사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위에 대머리가 주연 조연 으로 시비를 걸어 왔는데 왜 아무 대답이 없나요. 꽈배기 심정으로 올린것 같은 데 그 대답기다려서 답이 나오면 내가 또 꽈배기 심정으로 뛰어 들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 궁금해 죽겠네 그리고 신회균과도 전화로 대화하기 바라네.
동몽! 죄를 씻고 거듭나서 구원받기를 바라오. 동몽! 내 말 좀 신뢰해 보시게, 동몽에게 일생일대의 가장 큰 복된 날이 올거라 믿네= 복의 근원이 되라 이거지................
부산의 신화균에게도 전화하면 ..이 질문을 하여-보겠네.
슬리자 ! 내 말은 앞에서 대머리가 꽤배기 심정으로 승리자에게 질문을 했는데 승리자가 대머리에게 한번 시비를 걸라는 거지 대머리는 지금도 승리자가 답해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탠데 말이다. 이거야 신화균 대단한 크리스찬이야 꼭 전화르 이야기 해보게나 어제 갑선이 하고도 전화를 했는데 힘이되도록 격려 부탁
남도여행의 사진이며 사연은 이미 듣고 보아 알고 있지만, 동몽의 글이 새삼 또 다른 맛을 주고있네. 수수하고 텁텁한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닐세. 山水를 내집으로 전국을 유람하는 동몽이 부럽네. 계속 좋은 글을 올려주시게. 고맙다 친구야!
칭찬 해 주어서 고마워, 나는 인터넷을 몰라서 우리 친구들이 쓴 글의 댓글도 몇일 전까지 쓸 줄을 몰라서 달지를 못해서 너의 글도 읽었지만 댓글을 쓸줄 알아야 쓰지? 그런데 정태가 날 비행기 태워서 내가 기지도 못하는 놈이 이제 날려고 지 혼자서 별짓을 다하고 있지. 정말이야 댓글 답글 몰랐어 몇일 전에 알았어 전영택이 그 많은 시를 올리지만 이 맹추는 읽기는 좋아 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어. 정말이야. 고맙다. 알맹이가 없는 놈이 이렇게 날 뛰어도 되는 지를 몰라한다. 니가 불편한 몸인줄 알면서 위로한번 제대로 못한놈이다. 빨리 훨훨털고 28일 밥 한끼 함께 먹자.
이번 남도여행 에서는 정말 재미 있는 일도 많았지,송정해수욕장에서의 50년전의 추억을 되살리는 바닷가의 산책,양산 통도사에서 비를 핑게삼아 우산밑에서 바싹붙어 걷던 한 쌍(?)을 놀려대던 일'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누가 더 잘 흔드나 시합이라도 하듯이 흔들던 친구들의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한데..... 오늘 이 카페에 들어와보니 마치 오늘 일처럼 되살아 나는 것은 못다한 추억에 대한 아쉬움일까? 다시 또 하고 싶은 욕망에서일까?.........자주 이런 기회 만들어 달라고 투정을 부리고 싶은생각이 저절로 나는 것은 나만의 엉뚱한 생각은 아니겠지? 어쨌든 즐거운 여행이였어!!!!!!!! 안사11회 화이팅!!!!!!!!!
신영호군!!! 드디어 우리 카페에 登壇 하셨네!!! 반갑고도 반가우이.... 앞으로 자주 들러 커피(?)도 마시고 잡담도 늘어 놓고..... 좋은 글, 소견, 댓글 기대 하겠네!!!
나는 신영호 군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눈 한번 안주는 것 같아 그동안 조금은 섭섭했네. 왜냐고 나도 동기회모임에 나타난 것이 거의 너와 비슷해서 처음에는 조금은 낯설어 하였지. 이제는 정태 같은 적극적인 사람이 용기를 주어서 낯설이 살아졌지. 서울에사는 동기들은 거의 가 조금은 엉뚱한데가 있다네 나같이 농땡이(일찌사표를 낸사람) 가 아니 면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 , 그것은 그렇고 자네 나하고 둘이서 북한산 등산 한번 하자. 허락하는거지 마누라 하고만 다니지 말고. 신영호 내가 사람보는 눈은 있거든 신영호도 매사에 무서우리 마치 신중하다는 것을, 반갑네 28일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