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한 여수문학관 건립
임병식 rbs1144@daum.net
한 지역의 문학관은 그 지역의 문화척도를 가름한다. 굳이 예술분야에서 문학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문학은 늘 선두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시당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여수가 그러하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애환이 응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은 이야기와 노래형태로 구전되어 전해오다가 문자가 생기면서 문학의 형식으로 기록이 되었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은 주나라 때 지어져 나중 공자님이 엮은 시경(詩經)이다. 거기에 보면 당시 살던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것으로 알려진 '동동'이 있다. 이것은 지금도 여수지방에 전승되어 온다.
“정월의 냇물은 어이얼어 녹고 있는데/ 세상 가운데 난 몸이여 홀로 있구나.” 이 역시 삶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다. 그만큼 문학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그런데도 여수는 문학이 소외되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렇다할 문학관 하나가 없다. 여수는 한때 전남의 제일도시였다. 지금은 그 자리를 순천에 물러주고 2위에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큰 도시이다. 한때는 인구도 3려(三麗) 통합당시에 32만명을 기록한 적도 있다. 지금은 많이 빠져나가 28만명에 머물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역 침체는 ‘문학관의 부재’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관 하나 없는데 얼마나 살만한 매력이 있다고 정주를 하겠는가. 이는 시세가 비슷한 목포와 순천을 비교해 보아도 짐작할 만 하다. 목포는 박화성, 차범석, 김우진, 세 분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고, 순천은 김승옥과 정채봉을 기르는 문학관이 존재한다. 벌써 30여년 전에 들어선 것들이다.
이웃 고을은 어떤까. 보성 벌교에도 태백산맥 문학관이 들어서 있고, 고흥에는 조정래문학관과 송수권문학관이 있다. 강진은 김영랑문학관, 해남은 고정희문학관이 있다.
그런데 여수만 감감무소식이다. 해서 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근자에 반가운 문자하나가 전달되었다. ‘문학관 건립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자 하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웠다. 해서 주최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반가운 소식인데 무슨 감이나, 언질이 있어서 추진하는 건가요?”
한데 돌아온 대담이 좀 싱거웠다. 문학관 건립이 현시장이 내건 공약사업인데, 차일피일 지나고 있어서 지금이라도 논의를 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 같아 서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취지에는 공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느 세월에 될까'하는 회의를 감추지 못했다. 하나, 처음부터 김을 뺄 생각은 없어서 참석하는 것으로 힘을 보태었다.
이날은 발제가가 몇사람 있었다. 한사람은 문학관 전반의 실태와 현황을 설명하고, 한 사람은 외부인사로서 경남문학관 관계자가 운영상황을 설명했다. 또다른 사람은 지금부터 자료수집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자기가 소장한 희귀본을 나중 문학관이 개관하면 기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기증하겠다는 것은 양주동의 향가 연구집, 현대문학 창간호부터 50호, 그간 주요문인의 서신과 사진 등.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서가를 점검했다. 몇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여수수필등 창간호 몇이 있었는데 다른 문학관에 기증해버리고, 스승인 이석봉 선생님이 속지에 적은 간단한 편지가 적힌 소설집을 친척이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래도 몇 개는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니 몇 권이 보인다. 첫째는 표준조선말 사전이다. 이윤제선생이 짓고 사위인 김병제선생이 편찬한 것으로 1947년에 펴낸 것이다. 그리고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한국대포 고전선, 한국현대문장선, 한국대표수필문장선, 박연구의 바보네가게등이 있다. 이 정도의 것이라면 가증할만 하지 않는가 한다.
서간문으로는 나와 특별히 인연이 닿은 것이 있다. 최자영 선생은 문창시절부터 교류한 분으로 서신이 남아 있고, 당대에 문명을 떨치던 제주의 김순이 선생의 편지, 한국전쟁박물관에 시비가 세워진 유희남선생의 편지 등이 있다.
특히 유희남선생의 편지는 선생이 사망 후 남편인 박천식사장이 금산에 문학관을 지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편지를 전부 기부하였다. 한데 보관중인 편지 한통이 되돌아왔다. 부군의 말에 따르면 편지를 써놓고 미쳐 선생이 부치지 못한 것 같다며 부쳐온 것이었다. 그런 사연이 담겨있어 개인적으로는 중하게 여기고 있다.
문학관이 세워진다면 그 안에 채워야할 내용이 중요할 것 같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그런데 문제는 언제 문학관이 세워지냐는 것이다. 한발 앞서서 미술협회에서는 정부 보조금까지 받도록 절차를 밟아가고 있는데, 문학관 건립은 아직 첫삽도 뜨지 못하고 있으니 앞날이 요원하기만 하다.
세미나를 주최한 측의 움직임을 보면 무언가 해보겠다는 결의가 읽혀지기는 하나, 그것이 얼마나 경고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왜 그런 우려를 표하느냐하면 내가 문협지부장시절 최초로 문학상을 유치한 이후, 겨우 30여 년 간 지속하다가 그것마져 후원이 끊겨 겨우 문협차원의 시상만 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임기를 마친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누구 한사람 문학상 유치를 한 사람은 없었다.
무얼 하고자 한다면 들끓는 열정이 필요하다. 관계인사를 만나고 접촉하고 끊임없는 설득을 해야한다. 그 과정에서 시간도 경비도 들어가야 한다. 그것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한데, 그만한 추진을 할 결의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학관 건립은 크게 몫돈이 들어갈 일도 아니다. 굳이 문학관이 땅값이 비산 도심에 들어설 필요도 없으며 신축을 할 필요도 없다. 헌집을 개조해도 되고 크게 구조를 바꿀 필요도 없다.
시에서 계획을 세우고 의회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취해온 관행을 보면 예술분야, 특히 문학에 투자하는 것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어 회의감이 든다. 차제에 시와 시민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 여수를 문학의 향기가 번져나도록 의식을 좀 바꿀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먹을것 많고 구경할 곳 많다는 식의 홍보전략에서 벗어나 문학을 좀 내세워보자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많은가. 잠재적인 자원또한 월등하다. 금년에 신춘문예에 당선자만 해도 4명이나 나왔다. 승부를 걸어볼 만한 것이 아닌가. 한데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한 간부의 행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행사장에 시청 간부가 참석했으나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인사말만 하고서 얼마 있다가 떠버렸다. 토론이 끝나면 질의응답의 시간이 에정되어 있는데,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쿤둥한 태도를 보고 우려를 표한 것이다. 그렇게 생색내기로 운만 떼고 만다면 과연 실천이 될지 염려가 된다. 해서 행사를 마친 뒤 끝이 개운치 않았다. (2024)
첫댓글 '여수문학관'이 없는 작금의 현실에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군요. 여수 보다 모든 여건이 불리한 지역에서도 의젓하게 문학관이 있는데 참으로 울분을 금할 수 없네요. 정기명시장이 여수인으로 여수문학관 건립 시장 공약을 내걸었다면 젠즉 서둘러야지 이제 와서도 유야무야 형식적인 모양새만 낸다면 이번에도 물건너 간것 같습니다. 문학은 그 지방 주민의 얼이 담겨져 있는데 그렇지 못한 다면 지역 주민 정신의 유산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하루 속히 여수문학관이 건립되기를 학수고대해 봅니다. 좋은 소식 잘 봤습니다.^^♡
엊그제 시민회관에서 문학관건립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힘을 보태주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주최측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청에서도 간부가 참석을 했는데 자기 인사말만 하고 나중에 보니 나가버렸더군요.
당연히 말미에 시민 건의사항이 있을텐데 보이지 않아서 맥이 빠져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걸 보고서 여수에서 그게 가능할까 회의감이 몰려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