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망
* 所:
바(일의 방법이나 방도), 것, 곳, 일정(一定)한 곳이나 지역(地域)
처소(處所), 장소(場所)를 세는 단위(單位), 도리(道理), 사리(事理)
지위(地位), 자리, 위치(位置), 관아(官衙), 어떤 일을 처리(處理)하는 곳
(所자는 戶(지게 호)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所자는 본래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했던 글자였다.
B.C 470년경의 시가집인 시경(詩經)에는‘벌목소소(伐木所所)’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所所란'나무를 찍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所자는 본래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하기 위해 戶자는 발음요소로
斤자는 의미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장소’,‘자리’란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 의미는 사라지게 되었다.)
* 望:
바라다, 기다리다, 기대하다(期待ㆍ企待--), 희망하다(希望--)
그리워하다, 바라보다, 엿보다, 보름, 음력(陰曆) 매월 15일
희망(希望), 소원(所願), 제사(祭祀)의 이름, 원망(怨望)하다, 책망(責望)하다.
(望자는‘바라다’나‘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望자는 亡(망할 망)자와 月(달 월)자, 壬(북방사람 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人(사람 인)자에 目(눈 목)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본래 의미는‘망보다’나 ‘엿보다’였다.
후에 의미가 확대되면서‘바라다’나‘기대하다’,‘바라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금문에서는 人자가 壬(북방 사람 임)자가 되었고 月자와 亡자가 더해졌다.
여기서 亡(망)자는 발음역할을 하고 있다.)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헬라어
엘피스(ἐλπίς) 소망, 희망, 기대
동사형은 엘피조(ἐλπίζω). 바라다, 기대하다, 소망하다.
* 히브리어:
티크바(tikvah, תקווה ) 동앗줄, 밧줄, 생명줄, 소망, 희망, 등
사바르(שָׂבַר) 믿는다, 확신한다, 소망하다, 고대하다, 등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의미합니다.
헬라어 엘피스의 일반적 의미는“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 기대”를 뜻하는 일반적인 단어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헬라인들에게 있어 소망(엘피스)이라는 단어는 희망의 의미보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절망 가운데 위로를 뜻했습니다.
당시 스토아 학자들은 소망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소망은 미래에 대한 주관적인 계획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하여 멀리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헬라인들은 세상에 만연하던 수많은 우상을 통해
진정한 소망을 가질 수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당당하게“산 소망”이라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절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공생을 하면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목격 하였기 때문입니다.
벧전 1: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히브리어 소망은 티크바(tikvah, תקווה )라는 단어는
이스라엘인들이 고향 땅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기 원하는 유대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구원으로 말미암아 이미 소망을 이루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헬라어나 히브리어 단어가 내포 하고 있는 미래적 소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의 오늘 그리고 현재가 소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는 현재 소망 가운데 있는 사람이며
또한 오늘 현재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제가 좋아하는 소망에 관한 성경 몇 구절입니다.
로마서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 찌니라.”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곳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시편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62: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로마서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15: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저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쥐게 하리라.”
● 소망은 생명
샤르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라고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습니다.
그 싹은 마침내 꽃 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라고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를 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조세핀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라고
그래서 황제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습니다.
샤르니는 감옥에서 핀 꽃을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가꾸었습니다.
소망은 생명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은 좋은 동역자인 것입니다.
jykch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