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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봄은 경력사원☆]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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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경력사원]
권영해 시집 / 황금알시인선 77 / 도서출판 황금알(2013.11.30)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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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경력사원
권영해
그녀는 베테랑
온다는 소문만 나도
숱한 남자들 가슴을
설레게 하지
노하우가 축적된 그녀는
얄미운 계집,
도착도 하기 전에
입이 닳도록
침이 마르도록
자신을 위해 노래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세상사 그저 관행일 뿐이건만
노련한 경력사원 덕분에
줏대 없는 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호들갑을 떨 뿐이지
하마평이 무성한
입춘 근처
기고만장한 저년의 가슴은
해마다 관록이 쌓여 간다.
절망에 관하여
권영해
꽃이 진다고 아파하지 마라
진다는 것은 이미
피어난 기쁨이 있었거니
한때의 절망을 또한
은거隱居한 기쁨 아니냐
저 규칙적 궤적을 보아라
한쪽이 올라가면 건너 쪽은 내려가야
온전한 사람살이가 되지 않느냐
시소에 앉은 아이가
내려간다고 언제
절망한 적이 있더냐
시 비비기
권영해
나는 밥을 잘 비빈다
아니,
애들이 엄청 잘 비빈다고 한다
상추, 열무김치, 된장찌개에
고추장 팍팍 섞어
밥알에 땀나도록 비비면
나물은 기가 죽어 맛깔스러워지고
참기름은 적당히 기가 살아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나는 내 시를 잘 비비고 있는가
밥은 시가 되지만
시는 밥이 되지 못한다는데
차라리
행간과 행간 사이
치커리같이 쌉쌀한 단어 몇 조각에
땡초 두어 개쯤 썰어 넣고
거칠게 버무리고 치대어
이미지와 비유마저 뭉개져 버린
독하고 못된 시,
까칠한 시밥 한 양푼
비벼냈으면 한다
소금
권영해
햇살 피어나는
개펄 위에서
수차는 꺼져가는 불씨를
퍼올리고 있다
물길 따라 불길이 퍼지던 염전
숯불처럼 타오르다
숯처럼 식어갈 사랑아
희디흰 정신의 응결을 믿고
짜도록 그윽하게 익어간다 해도
증발의 안타까움 견디며
물에서 녹을 것을
다시 물로부터 나오는가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여
내장산, 속을 비우다
권영해
적막하던 가을 산에 볼거리가 터졌다
승부에 안달이 난 홀리건들이
내기를 걸고 치고받는 내장산
묵언정진하던 스님들도
낮술을 한 잔들 하셨는지
벌겋게 단 몸으로 운동장을 질주한다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낯 뜨거운 깜짝쇼에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서고
스탠드는 산기슭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판만 빌려주고
표정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산들은
맞불을 놓아 버리고는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다
별 사냥
권영해
울란바토로에는 사랑이 없다
울란바토로에는 눈물이 없다
울란바토로에는 이별이 없다
울란바토로에는 꿈이 없다
울란바토로에는 길이 없다
다만
울란바토로의 가슴에는
방목하는
별,
별
이 있다
책을 읽다
권영해
기존의 지식은 너무 낡고 병든 것이어서
나는 한꺼번에 싱싱한 새 책을 읽기 위해
산으로 갔네
인간의 마을을 벗어나 숲의초입으로 들어섰을 때
포플러는 부드러운 소리로 풍월을 읊고
높은 지식을 과시하는 교목
전나무, 자작나무 숲에서는
푸른 글들이 바람에 책장을 넘기고 있었네
펄프의 길을 따라 상수리나무 아래 이르자
읽은 책마다 열매를 터뜨리며 귓속으로 떨어져 내렸네
이것은 꿈이 아니었네, 정녕
딱따구리와 어치는
쉼 없이 참나무 책을 쪼아 서가를 만들고
황조롱이는 부지런히 병든 들쥐들을 잡아내며
숲은 퇴고하고 있었네
아아, 누구든
책의 대웅보전에 와서
고요히 온축蘊蓄된 자연의 말씀을 경청하다 보면
왜 계곡은
끊임없이 역류하는 송사리를 담고 흐르며
바람은 어떻게 세상에 어록을 남기고
잡목 사이로 길을 낼 수 있는 지에 대해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네
곶감
권영해
수많은 어머니들
말랑말랑
젊어지시네
추녀 밑 흙벽에 대롱대롱
고행하는 과메기처럼 매달려
비바람을 견뎌내며
해바라기를 즐기시네
화려했던 왕관도 벗어 놓고
멍들고 떫은 삶도
울컥울컥 깎여나간 세월 속에
시설柹雪로 묻어두고
쪼글쪼글 익어가는
당도 높은
어머니
연어, 편지를 쓰다
권영해
거친 물살을 헤치고
지친 그리움들이 역류한다
망각의 강을 거슬러
지워진 물맛 따라 길을 내며
퍼덕임 하나로
삶을 다자인하는
간절함의 메시지
형상기억의 힘을 믿으므로
퍼덕임은 엔진이다
아가미에서 발현된
항抗물살의 추진력으로
베일해링해의 하늘빛에 물든
연어의 붉은 근육이 출렁일 때
무수한 물무늬를 함유한
파도의 DNA들이
치어의 혀끝에서부터
세차게 일렁이는 강의 지느러미까지
모천회귀의 답신을
엮어낸다
무엇이든
끝자락에 닿으면
연어가 된다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
권영해
흐르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하여
그리움은
산으로부터 나와
핏줄 속에 요동치며
애틋한 장편의 강을 엮어내고
강폭은 점점 넓어져
무심히 아파 오는 기억의 끝자락에
사람들은 물길 따라 발길을 만들며
가슴에 뜨거운 맥박을 키우네
잃어버린 길이 어디 있으랴
간절한 것은 물 위에서 저절로 길이 되고
흐르는 길 따라 삶은 쉼 없이 이어지는데
길을 떠나면 강은 흐르지 읺네
강변을 서성이다가
길을 지우며 흐르는 안개도
바람이 시간을 거슬러 달리는 저녁에
다시 강 끝에서 길을 만나네
흐르는 것은 모두
길이 된다네
개소리
권영해
그날
동물농장에서
보호소에 억류 중인
유기견 한 마리
작심하고 사람들을 향해
쓴소리 한 마디 내뱉었다
컹!
지구, 사랑에 눈뜨다
권영해
가끔
숲은 잘 살고 있는지
산에 청진기를 대어 보자
쑥부쟁이의 속이 평안한지
지렁이는 흙을 끌어안고
기름진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진료하자
지구는 하나의 오케스트라
계곡이 과학적 선율로
응얼응얼 물의 현을 퉁길 때
한여름 순회공연을 우이해
매미 애벌레님 땅 나설 준비하는 소리
개구리는 밤새껏
열 권도 넘는 잠언록을 쓰고
개똥벌레는 엉덩이를 흔들며
짧고 밝은 삶을 사나니
일고 보면
모두 짝을 찾아
이 세상 수컷들이 보내는
열정의 몸짓
지상을 베이스캠프 삼아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
해우소解牛所에서
권영해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 위쪽
척판암擲板庵 뒷간에 가서
속 시원히
근심이나 좀 내려놓을까 하여
괄약근에 힘께 썼는데
몸 하나 비우기는커녕
소 수천 마리 해체하느라
땀만 뻘뻘
쏟고 나왔다
지물포를 아십니까?
권영해
세상의 지물포紙物鋪에는
돌돌 말린 온갖 꿈들이
퍼지기를 기다리며
꼼지락거리고 있다
아내가
거실 단장을 위해
도배지를 고르고, 고르고
또 골랐는데도
집에 돌아와 후회하고
다음날 다시 찾아가
견본책에 머리 조아리고
고민을 해도
지물포에서의 선택은
어린 시절 구멍가게에서
제일 맛나는 사탕을 고르는 일처럼
언제나 미련이 남는 법
오늘도, 내일도
먼 모레에도
오래된 지물포志物鋪에는
떼고 붙이고,
붙였다 떼고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마음들이
서성이고 있으리
사월, 아침, 바다
권영해
큰 스님 한 분
결가부좌하고 계시다
아득한 고해苦海로부터
수천수만 천진불들
잔잔히 걸어오시고
문득
큰스님 주장자 내리치며
할!
그 많은 새들을 방생하시니
세상이 일렁거리네
나는 자꾸
발을 헛디디고
길 위에서
권영해
나를 길러준 스승들과
내가 기르는 제자들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어재의 길과 내일의 길 사이에
굴절되거나 비굴한 삶도 많았다
눈을 감으면
선각先覺의 발자국은 이미 안갯속에 가렸고
앞에는 점점 난해해지는 좁은 길
이정표도 방향타도 없는 디지털 시대의
길,
길들이 나타나,
가정할 수도 단언할 수도 없는
그 길 위에
잠시 마우스피스를 던져둔다
고장난 벽시계
권영해
뻐꾸기가 죽었다
뻐꾸기가 알을 낳기 위해
개개비의 둥지를 오리던 날
우리는 모두 집에 없었다
그동안
아무도 절름발이 뻐꾸기에 대해,
그의 울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의 탁란托卵에도 관심을 주두지 않았으며
모이를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뻐꾸기가 죽은 것이다
개개비 둥지 속에서 뻐꾸기는
굶어 죽은 것이다
개개비를 의심할 수도 있지만
사실,
뻐꾸기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지 못햇다
그해 5월 어느 날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58세의 어부 김용철 씨는 주꾸미에 딸려나온 12세기 고려청자를 발견하고 곧장 당국에 신고하였다
권영해
주꾸미는
과거에 대해 말하고 싶어
온몸을 달았고
나는 끓이면 끓일수록 시원한
주꾸미탕을 퍼먹으며
질긴 것들은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말하고 깊어
안달이 났다
그날
나나
주꾸미는
무엇엔가
매달리고 싶었던 것 같다.
낙화 2 - 난중일기 7
권영해
이 세상
꽃들은
도박사처럼 모든 것 걸고
번지점프할 준비가 되어 이;t다
인생에도
때때로
적절한 포맷이 필요하다
나는 점점 노골적이 되어 간다
권영해
구운 생선에서
가시를 바르는 것은
과연
바르게 하는 것인가
그리게 하는 것인가
내 뱃속 채우자고
남의 척추를 발굴하는 것은
즐거움인가
애틋함인가
뼈대를 송두리째 들어내는 것은
물살 헤집으며
잔뼈 굵어가던 바다의 희열을
무자비하게 걷어내는 것
결국, 생선들
속살에 갈빗대마저 깔끔하게 내어놓고
마지못해 바닥으로 돌아누울 때
나는 점점
노골적露骨的이 되어 간다
부엉이 - 발문跋文에서
권영해
그는 세상을 볼 줄 안다 색깔을 초월한 그의 눈은 간상세포가 발달하였으되 우듬지로 뻗어나온 일과 사물의 곁가지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본다 한번 날개 움직이면 고요하고 담대한 숲의 정밀靜謐을 헤집으며 도도한 탐색이 시작된다 그가 정지 비행을 정지하고 하강하는 순간 숲의 생명들은 호흡을 멈추고 취사선택할 수 없는 경이감에 전율한다
어둠을 통해 빛을 볼 줄 아는 그의 안목은 그윽하고 깊다 그의 시선이 지나간 자리마다 탄생하는 시는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이며 단순하나 그만의 어법을 빌려 명징하게 읊조린다
절대, 미세한 움직임조차 놓치지 아니하고 망막에 포착되는 피사체. 지유자재로 조절된, 조리개에 밤은 광범위하게 설렵된다 짐승의 뷰파인더에 투사된 인간의 시간은 어두우나 달이 지배한 시간보다 더욱 섬세하게 집요한 혀를 놀려 숲을 지배한다 하여, 그 심원한 눈빛으로부터 분사되는 감성의 조도저도저한 발현은 둔중한 어둠을 장악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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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첫 시집은 상재한 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간 나는 나대로 바빴고
세상은 세상대로 바빴다
다만 바쁘지 않은 것은 세월이어서
연어는 해마다 모천으로 회귀하였고
도토리는 중력의 힘을 믿고
느긋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강산이 한 번은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나는 늘 세속적인 틀 속에 갇혀
벌레의 눈으로 사물 보는 법을 터득하지도 못하였고
장독처럼 둥글어지지도 않았으며
돈장처럼 숙성되지도 못하였으나
이제, 오랜만에
첫 수확한 장뇌산삼을 세상에 내어놓는
심마니의 심정으로
내 가슴은 한없이 설레고 있다
2013년 4월
권 영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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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詩集 [※봄은 경력사원※]
[ 해설 ] -
난중亂中의 시학
김 영 탁(시인,『문학청춘』주간)
권영해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의 부제시 ‘난중일기’가 입증하듯 그의 시 쓰기 정신이 면면히 흘러 도달하는 접점이 ‘난중亂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시가 이순신의 일대기를 그렸다는 건 아니며 일기 형식도 아니다. 시인은 시로써 오로지 난중에 뛰어들어 용맹정진의 시정신으로 난중이라는 벽을 박차고 나오는 일련의 과정이 ‘난중일기’를 되살리며 이순신까지 무의식으로 소환하는 것이다.
분명한 건, 시집『봄은 경력사원』이 이순신과 관련이 없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연동하는 것은, 임진왜란 때나 문명이 첨단을 달리는 지금이나 ‘난중’이라는 세상이 온전치 못하고 불안정하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미리 얘기하지만 권영해 시인의 시는 다종다양한 형태로 독립적인 정서를 노래하고 있으며, 또한 이순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원래 이순신은 7년 동안 일기를 쓸 때 아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정조에 와서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찬자가 편의상『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사를 걸고 왜구와 싸우면서 전쟁 가운데 쓴 일기는 난중의 세상에 시인의 치열한 시 쓰기와 어느 정도 실핏줄처럼 통하는 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모든 소식은
@골뱅이를 통해 전달되던 시대가 있었다
이곳은 이미
분필이 필요 없는 곳
나는 지시봉과 분필통 대신
한 손에 리모컨을 들고
목에는 마우스를 걸고
교실로 들어선다
전원을 켜면
세상 가득 전동 스크린이 펼쳐지고
수천수만 광년의 빛줄기로 쏟아지는
해동성국의 미래여
오직
@골뱅이의 몸을 통해서만
너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고
외계어를 타고서야
반딧불이를 말할 수 있을 때
단숨에 날아오르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한 가벼움인가
@골뱅이의 꿈이여
꼬인 날개여
이제부터 나도
@골뱅이 무침을 안주 삼아
세상을 꿀꺽하고 싶다
뷁!
-「암호명 @골뱅이-난중일기2」전문
시「암호명 @골뱅이」의 부제 ‘난중일기’가 암시하듯 시대의 난맥을 맛깔나는 골뱅이무침처럼 잘 버무렸다. 요즘 흔하게 유통되는 인터넷과 SNS 용어를 보면 @의 막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조금만 시류에 뒤쳐져도 알아들을 수 없는 전자매체를 떠도는 국적불명의 언어는 @골뱅이의 형태소처럼 뱅뱅 돈다. 시인은 교단에서도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국적불명인 사이버 상에 범람하는 외계어에 절망하면서 분필과 지시봉 대신 리모컨을 들고 목에는 마우스를 걸고 교실로 진입한다. 그야말로 미래에 도래할 미래전사未來戰士는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바로 눈앞에 도착했다. 이 미래전사는 암울한 현재를 다가올 미래의 거울로 세상을 비춘다. “세상 가득 전동 스크린이 펼쳐지고/수천수만 광년의 빛줄기로 쏟아지는/해동성국의 미래여”를 예찬하고 있지만, “외계어를 타고서야/반딧불이를 말할 수 있을 때/단숨에 날아오르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하고 가볍고 고독한지 시인은 노래한다. 드디어 시인은 @골뱅이의 꿈과 부러진 날개마저 @골뱅이 무침으로 안주 삼아 삼킨다. 앞 연에서 왜곡된 삶의 비애를 노래한 것과 대조되는데, 적극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대상 속으로 들어가 육화한다. ‘뷁!’은 무엇인가? 음소를 풀어보면 ‘블렉(BLACK-블랙-블랙홀)’ 정도로 볼 수 있으나, 시인이 삼킨 대상의 정체이면서도 기괴한 음音은 이 시의 화두이기도 하다. 블랙홀로 빨려들어 가는 세상과 부제시의 난중과 맥락적으로 연동한다.
부엌 밖으로 뛰쳐나온 주방장들의 절규 속에
이래저래 열 받은 솥들은
끓어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기꺼이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
-「솥을 던지다」-난중일기 5, 부분
통영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통조림 속을 뛰쳐나온 골뱅이 떼들 난무하여
어림 조준으로 비격진천뢰를 날리다
잠시 후
해무海霧 사라지고 포연 걷히니
정보에 취약한 아군의 레이더에
바퀴 부서진 휠마우스와 키보드의 잔해가 포착되고
날개 찢긴 골뱅이들 사이로
붉은 기운이 흥건히 울돌목을 적시다
적들은 여전히 활어 아가미에 붙어 과다 번식하니
전복을 꿈꾸는 과대망상증이 바다여
아가리가 너무 크구나
이러고는 제해권을 장악할 수가 없다
통제력을 잃어버린 수군통제사가
허공에 대고 황급히 소리친다
뱃머리를 돌려라!
이제는 서진이다!
-「적조 경보」-난중일기 6, 부분
위의 두 편의 시에서 종결어미를 읽어보면 “몸을 던졌다- 비격진천뢰를 날리다- 울돌목을 적시다- 뱃머리를 돌려라!”라고 술회한다. 화자는 던지고 날리고 적시고 돌리는 데 주체적이며 명령형에 가깝다. 자칫 명령형이 주는 시감詩感이 독자로 하여금 반발을 일으킬 수 있지만, 묘하게 통쾌하고 시원하고 재미있다. 바로 권영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비장미 속에 묘한 해학이 숨어서 시를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낸다.
시「솥을 던지다」를 읽는 자체만으로도 해학 속에 페이소스가 번쩍인다. 열 받은 솥들이 끓는 마음을 진정하려 한강에 투신하는 장면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하여, 웃음으로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들춰내고, 다가오는 연민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시인은 부조리한 세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감하지 않고 따듯한 연민의 마음으로 대상에 투신한다.「적조 경보」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상당히 입체적이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그려보면서 독자들은 현재의 가상세계를 동시에 떠올린다. 두 세계의 겹침은 묘하게 ‘난중’이라는 과거와 현재를 한 묶음으로 구현하면서 역동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전자매체를 기반으로 한 가상세계는 인간에게 편리한 유익함과 관계망을 좁혀주는 장점도 있으나 그에 반해 인간뿐만 아니라 한 국가까지 위기를 불러올 만큼 지극한 해악도 도사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첨단의 문명이 가져오는 장단점을 비교할 수도 없고,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는 건 자명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왜소하고 쓸쓸하고 고독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하여, 시인은 가상의 바다에서 전투를 한다. 가상세계의 스팸 골뱅이 떼를 향하여 비격진천뢰를 날린다. 아군도 피해가 있다. 휠마우스 바퀴와 키보드가 부서지고 쉽사리 죽지 않는 골뱅이들이 울돌목에 진을 치고 있다. 적들은 어지간한 백신에도 쉽사리 죽지 않고 끈질기게 진화하면서 세상을 위협하고 상황은 난중이다. 시인은 시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허허실실을 과대하게 늘리는 듯하다가 마감 처리에 아주 통쾌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함으로써 풍자와 비판의 정신으로 시의 집을 완성한다.
나는
대마도 근처에 포진한 채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거동 수상한 자들을 감시하였으나
백신이 없는 바다에는
왜구들이 멋대로 아군의 폴도 속을 드나들고
스팸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정보들을 쏟아 붓고는
달아나기 일쑤였다
-「독도」- 난중일기3, 부분
시「독도」와 ‘난중일기’의 연작시다. 권영해 시인의 시를 다루는 재치와 펀(fun)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시「암호명 @골뱅이」에서 시인은 골뱅이 속으로 들어갔으나 그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그 안의 세상에는 준비가 안 된 허허벌판이며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암흑의 세상이다. 적과 아군의 구별이 모호하고 정보의 바다라는 게 정체불명의 소문과 쓰레기 정보들로 가득 차서 스팸은 스팸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시인은 ‘난중일기’라는 부제를 통하여 흩어진 병선을 모아 울돌목에서 왜선 백여 척을 무찌르고 노량해전에서 유탄으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을 다시 되살린다. 다소 과장한다면, 이순신의 임전무퇴臨戰無退와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 정신이 시인의 부제시 ‘난중일기’의 시 정신과 통한다고 봐야겠다. 시인은 대상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이 경박하고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 대상들을 외면하지도 않고 포옹하면서 육화하고, 그 안으로 진입하여 세상을 부단하게 경작하려는 과감성을 보여준다.
꽃이 진다고 아파하지 마라
진다는 것은 이미
피어난 기쁨이 있었거니
한때의 절망은 또한
은거隱居한 기쁨 아니냐
저 규칙적 궤적을 보아라
한쪽이 올라가면 건너 쪽은 내려가야
온전한 사람살이가 되지 않느냐
사소에 앉은 아이가
내려간다고 언제
절망한 적이 있더냐
-「절망에 관하여」전문
절망은 기쁨과 슬픔의 간극에 있지 않고 어디든 따라 다니며, 절망을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한다. 흔히 꽃이 피는 게 기쁨이라 하지만, 꽃이 지는 게 ‘은거의 기쁨’이라니 대단한 발견이다. 죽음(은거)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기약하기에 꽃이 지는 건 또 다른 생산 활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시는 아이가 놀고 있는 시소의 작동으로 환원되면서 피고 지는 세속의 생멸이 하나의 놀이로 승화 작용한다. 아직 어른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시소놀이를 통해 죽음과 절망은 통과 의례를 거쳐 새 생명을 얻는다.
그녀는 베테랑
온다는 소문만 나도
숱한 남자들 가슴을
설레게 하지
노하우가 축적된 그녀는
얄미운 계집
도착도 하기 전에
입이 닳도록
침이 마르도록
자신을 위해 노래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세상사 그저 관행일 뿐이건만
노련한 경력사원 덕분에
줏대 없는 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호돌갑을 떨 뿐이지
하마평만 무성한
입춘 근처
기고만장한 저년의 가슴은
해마다 관록이 쌓여 간다
-「봄은 경력사원」
표제시「봄은 경력사원」은 봄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아득한 세월 저편에서 유래한 계절의 여왕은 셀 수 없는 경력을 자랑한다. 늙을 줄 모르는 여자아이면서 찰나를 연상하는, 잡을 수 없는, 어쩌면 청춘의 한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봄을 향한 찬사 일색의 입들을 시인은 비판한다. 전통적인 시 쓰기에서 봄을 찬양하는 건 관행이며 어쩌면 낡은 상징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새로운 시 쓰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시가 태어난 이후, 전통 서정시에서 봄은 당연한 대접을 받고 셀 수 없을 만큼 노래를 양산해 왔다. 시인은 관성의 봄을 단연코 거부한다. 그의 무의식에 흐르는 줄기는 새로운 시 쓰기로서 봄을 찾아가는 도정에 있다고 봐야 겠다. 하여, 이 시는 권영해 시인의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시에 대한 보고서이며 새로운 각오일 것이다. 용맹정진해 나갈 시인의 시가 기대되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보다 더 크다. 이제 봄은 시인의 미래다.
나는 내 시를 잘 비비고 있는가
밥은 시가 되지만
시는 밥이 되지 못한다는데
차라리
행간과 행간 사이
치커리같이 쌉쌀한 단어 몇 조각에
땡초 두어 개쯤 썰어 넣고
거칠게 비비고 치대어
이미지와 비유마저 뭉개져 버린
독하고 못된 시
까칠한 시밥 한 양푼
비벼냈으면 한다
-「시 비비기」부분
물길 따라 불길이 퍼지던 염전
숯불처럼 타오르다
숯처럼 식어갈 사랑아
희디흰 정신의 응결을 믿고
짜도록 그윽하게 익어간다 해도
증발의 안타까움 견디며
물에서 녹을 것을
다시 물로부터 나오는가
-「소금」부분
이 시집 전편에 흐르는 일정한 기류는 시인의 시 쓰기에 대한 화두이며 엄격한 자기검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독하고 못된 까칠한 시가 되길 바라며 양푼에 살아있는 시어를 비빈다. 참으로 처절하고 눈물겨운 밥이다. 여기서 시 쓰기는 차라리 전투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를 찾아 스스로 오지에 뛰어든 단독자單獨者 시인은 사막의 한가운데 전갈에 물려 생사를 오가야 할 운명이다. 시에 대한 치열한 정신이 잘 비벼진 시가「시 비비기」러 할 수 있다. 여기서 ‘시밥’이라는 새로운 시어가 탄생하는데 시도 음식처럼 생명의 양식으로 동일시된다. 약식동원藥食同原과 맥락을 같이하면서 시는 밥이고 밥은 약이 되는만큼 이 모든 근원은 시라 할 수 있다. 권영해 시인은 시병詩病을 앓고 있다. 시인으로서 시병을 앓지 않고 어떻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온몸으로 투신하는 시인의 시작詩作은 드디어 ‘소금’의 결정체로 몸을 바꾼다.
희디흰 정신의 응결을 집약한「소금」이라는 시도 ‘시 비비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권영해 시인의 부단한 시정신의 수행은 검은 숯이 희디흰 소금이 될 때까지 대상에 투신한다. 잠깐, 여기서 중국 설화에 나오는 삼천갑자동방삭을 아니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오래 살아서 귀신보다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한 동방삭을 잡을 수 없었던 저승사자가 꾀를 내어 숯을 씻는다. 희디흰 색이 나올 때까지 냇가에서 아무리 숯을 씻어도 희게 될 수 없는 건 다 아는 상식이지만, 세상 이치를 꿰뚫은 동방삭이도 걸려든 것이다. 하여, 시인은 세월이 흘러 사랑이 식어갈지라도 온몸으로 시에 투신함으로써 사랑은 희디흰 결정체 소금으로 귀환하면서 시는 사랑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물에서 나와 다시 물로 간다는 시인의 시안詩眼이 말한다. 출발과 회귀는 동일점에서 이루어진다고, 생의 비의를 알아차린 시인은 궁극에서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나는 왜 그동안
주먹밥 속에 주먹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왜
솜사탕 속에는 사탕이 없다고 믿고 말았던가
어머니가 싸주신 주먹밥 속에서
아기의 고사리 같은 주먹과
아버지의 굳은 살 박인 주먹과
아내의 가녀린 주먹이 불쑥 나오지 않던가
잉어빵 속 황금잉어보다
더 꿀맛 같은
눈물 어린 주먹이
주먹보다 더 거대한 골리앗의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주먹밥 속에는 주먹이 없다고
왜!
단정하고 말았던가
-「주먹밥 속에는 주먹이 있다」부분
흔한 말로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없다는 건 사실이다. 사실 이전에 우리는 붕어빵을 먹으면서도 형태는 붕어이지만 밀가루로 된 빵을 붕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늦게서야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말이 떠오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간 붕어보다 이미지를 먹었고, 붕어가 없다는 말은 먹는 행위 다음에 오는 결과에 대한 회상이다. 시인은 ‘주먹밥 속에는 주먹이 있다’고 한다. 주먹밥 속에 가족의 울타리가 떠오르면서 유년의 가난한 시절 어머니의 주먹을 통해 시인은 천진한 아기로 돌아갈 수 있다. 고사리 주먹이 어른 주먹이 되어도 주먹밥으로 어린 주먹을 키운 어머니는 영원한 것이다. 시인이 장성하여 가족을 이루면서 주먹밥은 계속된다. 이 상징의 주먹밥은 어느덧 가족의 주먹이 거기에서 솟아나는 걸 발견한다. 주먹밥은 타임머신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시 눈물겨운 삶이 반복된다는 걸, 시인은 눈물 젖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회고하며 반성한다. 세상의 밥은 어머니가 지은 밥이며 고단한 눈물과 진솔한 삶이 알곡처럼 빼곡하여 주먹밥으로 집약된다. 얼마나 눈물겨운 밥인가. 이 작품은 시인의 휴머니즘과 인정주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시다. 이 외에도 바쁜 일상사 작은 여유마저 없는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인간과 가족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드러내는 시들은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제 10여 년 만에 두 번째 시집『봄은 경력사원』을 내는 권영해 시인의 다양한 서정의 기층으로 직조된 시편을 ‘난중’이라는 말로 결집하고자 한다. ‘난중’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반작용이면서도 중의적으로 시의 블랙홀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은 권영해 시인의 해학과 자신을 던지는 과감한 투신 그리고 불굴의 시 정신이다. 더러는 시 쓰기에 있어 자신마저 해체하는 용맹정진의 정신이 도처에서 번쩍인다. 완벽 아닌 빈틈을 예비하면서도 외로운 것과 그리운 것 사이에서 탄생하는 가슴 앓는 시「솔개에게」를 읽으면서, 앞으로 그의 시가 축적된 내공을 바탕으로 빛나는 날개를 달고 세상에 긍정적인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날고 싶은 것과
머물고 싶은 것 사이에
날개가 있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로
추락을 꿈꾸며
날렵하게 솟구치는 순간
빈틈을 예비하는 것
거기다
한없이 감싸 안고 싶어지는 것
외로운 것과 그리운 것 사이
그 중심에
날개가 있다
가슴 앓는
네가 있다
-「솔개에게」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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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권영해는 풍자시인이다. 그는 시대착오와 부조리를 채집한다. 그는 숨막히는 시대적 모순을 질색의 살을 저며 담박하게 요리한다. 전혀 인공조미료를 치지 않은 ‘착한 가정식 백반’을 차려서 저 먼저 품평한다. 첫 시집에서는 멸치들에게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칭호를 붙이더니 이번엔 그 짓무른 뼈대들의 내력을 보여준다. 무의미도 그에게서는 의미가 되도 만다. 하여, 두 번째 시집 내기란 물러설 수 없는 이중격투기. 현대시의 의미가 되고 만다. 현대시의 옥타곤에서 감각적으로 타격하는 신예들과 싸워야 하므로. 다행히 시인에게는 역설逆說과 만필漫筆의 DNA가 엿보인다. 권영해는 과연 빠르지 않아도 날카롭고 신랄하지 않아도 유쾌한 ‘풍자의 수라상’을 차릴 것인가. ― 장창호(극작가)
권영해의 시는 예민한 더듬이로 사물의 이면과 이치를 탐사한다. 「절망에 관하여」에서 ‘시소’는 내려간다고 하지만 기실은 올라가고, 재빨리 물고기를 낚아채는「청호반새」의 둥지에는 가시고기 알이 자라는 이치와, 대상이 가진 양면성을 균형인식으로 잡아낸다. “저녁이 되면 해는 없어지지 않고 달을 밀어올린다. 달이 체인을 걸고 해를 잡아당기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표면만을 보고 흘러가는 버리는 우리의 오감五感과, 앳마크(@, 골뱅이)로 대변되는 일상을 ‘난중일기’를 통해 풍자하고 비꼬면서 사물과 현상 속에서 변하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본원적인 것에 몸을 실을 줄 안다. ‘그리움’, ‘간절함’,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동’이라 부르는 그 힘은 그의 시의 곳곳에 길을 내며 독자들을 흡입하는 마력으로 작용한다. ― 손진은(시인. 경주대 교수)
표제시「봄은 경력사원」은 봄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아득한 세월 저편에서 유래한 계절의 여왕은 셀 수 없는 경력을 자랑한다. 늙을 줄 모르는 여자아이면서 찰나를 연상하는, 잡을 수 없는, 어쩌면 청춘의 한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봄을 향한 찬사 일색의 입들을 시인은 비판한다. 전통적인 시 쓰기에서 봄을 찬양하는 건 관행이며 어쩌면 낡은 상징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새로운 시 쓰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시가 태어난 이후, 전통 서정시에서 봄은 당연한 대접을 받고 셀 수 없을 만큼 노래를 양산해 왔다. 시인은 관성의 봄을 단연코 거부한다. 그의 무의식에 흐르는 줄기는 새로운 시 쓰기로서 봄을 찾아가는 도정에 있다고 봐야 겠다. 하여, 이 시는 권영해 시인의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시에 대한 보고서이며 새로운 각오일 것이다. 용맹정진해 나갈 시인의 시가 기대되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보다 더 크다. 이제 봄은 시인의 미래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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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
∙ 1958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 대구고, 경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 『현대시문학』을 통해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 울산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 시집으로는『유월에 대파꽃을 따다』가 있으며,
∙ 현재 현대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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