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으로 다시 갑(甲)질 문제가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남양유업사태 등으로 한동안 중소기업-대기업 간 갑을문제가 들끓어 올랐는데, 이제 종업원과 경영자 간 문제로 또 터져 나왔다.
부사장이 직원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보면, 지침을 위반했다고 시비가 된 문제를 정작 질책하는 경영자는 지침을 완전히 무시했다. 즉, 회사라면 있을 직원에 대한 징계절차와 규정을 전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말하자면 초법적 행위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업무에 관련된 일에 국한되어야 할 질책이 인격적 모독으로 바뀌었다. 이런 경영자의 갑질은 종업원의 반발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경영자의 갑질에 종업원이 아이디어를 감춘다
둘째, 증언이 엇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검찰은 부사장의 권위에 눌려 지시에 따른 기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만약 기장의 행동이 그랬다면, 사고가 났을 때 세월호 선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본사 임원의 의사를 먼저 알아보고자 통화하고 지시를 기다렸던 일과 그렇게 다른 일인지 모르겠다. 기장의 도덕적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경영자의 갑질은 종업원을 눈치보게 하고 모든 일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이게 만든다.
IMF 위기가 있고 나서 몇 년 뒤부터, 주변의 기업 하시는 분들이 직원들이 업무 이외에 자꾸 딴짓을 해서 걱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주식투자를 한다거나 이직을 염두에 둔 자격(스펙) 준비를 한다거나, 퇴근 후에 두 번째 일자리(투잡)를 찾는 것 같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실제로 노조교육을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업원들에게 회사에 도움이 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곤 했는데,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에 와서는 즉시 보고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그냥 들고 있겠다는 대답이 훌쩍 늘어났던 기억이 있다. 적당한 기회란 회사 이직도 포함한다. 회사에 대한 일체감의 하락과 불안, 반발 등이 원인이었다. 경영자의 갑질은 이런 경향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고, 곧 회사의 발전기회를 스스로 죽이는 셈이다.
갑질이 경제의 발전기회를 죽이기는 중소기업-대기업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초가 되면 납품 단가와 판매 수수료 계약을 맺는 업체들이 많은데, 납품단가의 부당 인하를 둘러싼 잡음도 많아지는 때다. 작년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 협력 중소제조업체 300개를 대상으로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조사에 따르면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감액당했다는 응답률과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가 있었다는 응답률이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횡포에 중소기업은 신기술을 감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일환이라고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하도급법, 대규모 유통업법, 가맹사업법 등과 관련해서 10여 개의 제도를 도입했는데, 사실상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지나 않나 우려된다. 정부의 개선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세평이다. 실제로 새 제도들에 근거한 제재실적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개 기업을 가맹사업법위반으로 제재했을 뿐이다. 또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라 고발권을 갖게 된 중소기업청은 작년에 두 차례에 걸쳐 불공정 하도급거래행위를 한 8개 원사업자를 검찰에 고발한 데 그치고 있다.
하도급 대금이나 납품단가의 인하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 해당 중소기업은 신기술을 적용해 생산성을 높일 유인을 잃게 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대기업이 원가인하를 요구하고 바로 납품단가를 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금이 단가인하의 형태로 결국은 대기업에 귀속되어 버리는 현상과 마찬가지이다. 기술을 감추고 버티는 중소기업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정부는 작년 9월 17개 시도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기업 전담 지원체제 구축에 대한 민관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대구·경북은 삼성, 대전·세종시는 SK 식으로 대기업 그룹들이 연고가 있는 지역을 나눠 맡고, 지역별로 전담해서 창업 기업들을 지원하게 하는 방안이다. 갑을문제가 현격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종업원의 아이디어도 죽고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도 죽는다. 어떤 경제개혁방안, 회생방안도 공염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