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뿌리 엿보기
나무와 풀 같은 식물에만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도 뿌리가 있고 일상생활에도 뿌리가 있다. 대전지역에는 전국에서 오직 하나뿐인 뿌리공원이 있다. 새삼 내 조상은 누구인지 계보를 찾아보게 하며 효를 되새기게 한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조금만 마음을 돌리면 곳곳에서 여러 종류의 뿌리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뒤늦게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샘이지만 물길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한 방울 빗물이 모이고 모여들어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로 흘러간다. 나무의 뿌리는 흙 속에서 구불구불 기어서 틈새를 비집고 뻗어나가야 한다. 물을 긷고 영양분을 빨아들여 줄기에 공급해야 한다. 나무가 꼿꼿하게 흔들림 없이 중심 잡고 일어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뿌리 없는 나무나 풀은 없다.
백 년 된 식당으로 3대를 거쳐 운영할 만큼 오랜 전통의 뿌리가 있다고 자랑이다. 그냥 자랑뿐이 아니라 그만한 분위기에 그 집 특유의 솜씨로 맛이 있고 서비스가 있다. 뭇사람의 호감에 인정받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본인뿐 아니라 은근히 인근에서 자랑이 되고 있다. 그만큼 믿고 찾는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꾸준하게 많은 발길을 당길 만큼 뿌리가 있는 식당이다.
곳곳에는 비록 가족끼리 하는 영세한 사업이지만 성실하게 경영하면서 미더움을 바탕으로 신용이 오래도록 유지되고 널리 알려진 기업이 있다. 어느 집안은 뿌리가 있는 집안으로 선조가 정승에 재상을 지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학교를 나왔냐고 한다. 오랜 전통에 뿌리가 있는 학교라고 자랑한다. 잘 알려진 사람을 손꼽아 가며 어느 예체능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나무나 풀의 단순한 뿌리가 아니다. 사회 곳곳에는 초목에 빗대 튼실한 뿌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끊이지 않고 대를 이어 온 것이다. 좋은 맛에 품질을 유지한다. 이름만 거론해도 대뜸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인근에 이름이 알려진 집이 있으면 내 집안 이야기처럼 아주 오랜 뿌리가 있는 가문이라 추켜세운다.
어느 집인들 조상의 뿌리가 없으랴만 보통의 뿌리가 아니라 특출난 뿌리로 귀중한 인재가 생겨난 것이다. 뭇사람의 입줄에 오르내리며 두고두고 존경받는 사람이다. 그런 가문이 되기 위하여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을 찾아 끊임없는 암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가늠할 수도 없는 값에 엄청난 세력이 관련되어 서민은 감히 엄두도 못 내면서 전설처럼 전해 오기도 했다.
새삼스레 돌아보면 강에는 발원지라는 강의 뿌리가 있다. 낙동강은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태백산 금대봉의 ‘너덜샘’으로 밝혀졌다. 낙동강 뱃길 따라 천삼백 리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강의 발원지는 태백시에서 삼수령을 넘어 금대봉 자락 검룡소다. 빗방울이 모여 한강을 이루고 서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 따라 동해로 흘러가는 곳으로 삼수령이라 한다.
늠름하게 흘러가는 강줄기를 떠올리면 그 뿌리를 잘 못 안 것이 아닌지 너무 초라해 보인다. 대뜸 의문이 갈 만큼 보잘것없다. 금강은 장수군의 신무산 자락에서 출발한다. 장수,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 보은, 대전광역시, 청주, 세종특별자치시, 공주, 부여, 청양, 논산, 익산, 군산을 거쳐 398㎞를 굽이굽이 흘러 서천서 바다가 되고 뜬봉샘은 금강의 뿌리가 되었다.
강의 뿌리라는 발원지는 겉보기에 긴가민가하다. 초라하기 그지없을 만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오로지 마음에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알고 나면 신성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롭고 경외하는 마음이 든다. 그 근원에 물이 잦아들 정도면 가뭄이 심할 것이다. 뿌리가 마르면 그 나무나 풀은 살아남을 수 없다. 뿌리는 살아남기 위해 물을 찾아 온갖 발버둥을 치게 된다.
뿌리는 흙 속에 묵묵히 묻혀 보이지 않지만 할 일이 많다.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몸의 중심을 잡고 끊임없이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들여 줄기에 올려보내야 초목이 자란다.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치 자녀를 위해 온몸에 마음까지도 최선을 다하는 부모를 떠오르게 한다. 나도 뿌리가 되어 사회에 공헌하며 가족을 여유 있게 지탱하고 싶어진다.
꽃을 꺾고 나무를 베어 보아라.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튼튼해도 뿌리가 없으면 오래 가지 않아 죽을 수밖에 없다. 비로소 보이지 않는 뿌리의 역할이 대단함을 되새기게 된다. 심지어 바위를 타고 넘어 처절하게 물을 찾아 뻗어나가는 뿌리를 보면서 생명력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뿌리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보이지를 않으므로 평상시는 존재감마저도 없다.
‘뿌리’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기본의미로는 식물을 떠받치고 땅속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는 기관이다.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이면서 박혀 있는 사물의 밑부분을 말한다. 단어에서는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중심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수필도 문학에서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뿌리내렸다고 한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속에 인의의 본성이 뿌리박고 있다고 보았다.
가끔 너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근본 바탕이 되면서 줏대를 세우는 뿌리를 알 수 없어 의아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뿌리가 튼실해야 당당히 일어서 중심을 잡고 잎을 피운다. 꽃을 피워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잘 키우려 한다. 종족 보존이라는 본능적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게 된다. 그 과정을 달리 관리하거나 눈여겨보며 챙기지는 않는다.
고향이라는 뿌리가 있다. 뜨내기가 아니다. 연어는 북태평양을 떠돌다 수만 리 모천을 찾아와서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교활한 여우가 죽을 때는 고향 쪽을 향해 머리를 뉘고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우리의 조상은 우랄 알타이어족 중 몽골족으로 반만년 역사에 단군의 건국 신화까지 지닌 뿌리 깊은 민족이다. 한반도란 지역을 벗어나 세계만방에 떳떳하게 자랑한다.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활동 범위가 그다지 넓지 못하였다. 조상의 뿌리는 대부분이 인근에 사는 다른 집안과 혼사 맺어 뿌리가 뒤얽혀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백의의 단일민족이라고 곧잘 자랑삼았다. 그러다 보니 엉키면서 설키어 일가친척에 사돈에 팔촌이라고 한다. 이웃이면서 일가친척이면서 훤히 들여다보여 섣불리 이러쿵저러쿵 큰 소리 낼 수 없었다.
족보를 펼치면 거미줄처럼 이어져 전혀 남남이 아니다. 그러나 오래되면서 거의 왕래가 끊어져 무관심에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된다. 하지만 어쩌랴, 좁은 바닥에 사람이 들끓듯 많은 것을. 자연 속을 들여다보면 초목도 같은 종류가 끼리끼리 군락 이루며, 다른 종류는 침입을 막는다. 토끼풀밭 대나무밭 소나무 군락지 억새밭 갈대밭서 보듯, 같은 뿌리가 텃밭을 이룬다.
대전시 중구 침산동에는 세계 유일의 뿌리공원이 있다. 내 조상의 뿌리는 언제 어디에 어느 분이며 수백 년을 어떻게 이어오고 있는지 관심을 두고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며 자손으로서 자부심에 긍지를 지닐 수 있도록 한다. 씨족마다 본에 따라 종중에서 빗돌을 세워졌다. 찬찬히 읽어가며 나의 조상들이 어떤 분들이었는지 자랑스러운 후예로서 되새김질하게 한다.
외국에 입양된 아이가 의젓한 어른이 되어 뿌리인 부모를 찾고 있다. 우리말을 몰라 통역하면서 본인은 물론 보고 듣는 사람도 안쓰럽고 답답하게 한다. 저마다 쉽게 펴놓을 수 없는 사연이 있어 뭉클하게 한다. 개인은 물론 공공단체나 사적 모임도 좋은 전통을 세우고 그 맥을 이어가려 한다. 전통이라는 뿌리가 그만큼 돋보이며 활동하는데 미더움 되어 힘을 발휘한다.
이런 분이 우리 조상이며 내가 후손이라는 자긍심도 갖는다. 다른 집안과 비교도 해본다. 성씨의 파별로 상징하는 빗돌 200여 기가 세워져 무언의 힘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문의 이야기에 솔깃해서 옷자락을 여미고 설레는 마음으로 빗돌 글귀를 하나하나 조심조심 읽고 몇 번이라도 읽어가면서 마치 조상을 뵙고 있는 것처럼 다소곳하며 후끈하게 한다.
어느 학교가 자랑스레 이야기에 오르면 대뜸 언제 개교했으며 어떤 인물이 배출되었는지 알고 싶어지며, 전통의 뿌리를 자랑으로 삼는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이제 지방자치가 보편화되고 지방정부도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곳곳에는 고집스러운 근성의 뿌리가 아직도 남아서 곤혹스럽게 한다. 그것은 참된 뿌리가 아니라 잡초의 뿌리로 빨리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아시아에서도 우랄 알타이어계의 몽골족으로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백의민족이었다. 단군의 건국 신화까지 지닌 뿌리 깊은 민족이다. 그 자부심을 한반도 지역을 벗어나 세계만방에 떳떳하게 내놓았다.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랜 전통이 배어 흐르는 숨결로 쉬이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쉬이 끊어지지 않아 그 면면을 이어가며 자랑으로 여긴다.
뿌리 없는 식물이 어디 있는가. 넓은 의미에서 훑어보면 어디 그뿐이랴. 초목은 그래도 처음부터 생명의 조건으로 타고났는데 사람은 줄을 서고 잇대며 뿌리 만들기에 좀처럼 끝이 없어 보인다. 이제는 백 년을 살겠다고 한다.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남이 만나고 결혼하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자고 한다.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