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 도둑을 지킴에 있는 집주인 비유
마태복음 24장 43-44절 /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께서는 36-42절에서 (1)인자의 임하심은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따른 하늘의 아버지만 아시는 일임을 (2) 인자의 임하심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임을 (3) 인자의 임하심으로 밭을 가는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임을, 그처럼 집에서 맷돌을 가는 두 여자 중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서 본문 43-44절에서는 집주인이 깨어 있음으로 밤도둑을 지킬 것임을 비유로 들어 예고 없이 오실 인자의 임함을 예비함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의 죽으심을 맞게 될 제자들에게 장차 임하실 주님의 재림에 예비에 있어야 할 것임을 정신 들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말입니다. “작전에서 실패한 장교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경계에서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 무슨 이야기인지요. 전쟁에서 전투를 하며 병사를 지휘하는 장교는 전투에서 싸워 이길 작전을 짭니다. 그렇게 전투에 임하는 장교는 승리로 이끌기도 하고 패하기도 하는데, 패배하였을 경우에 그 원인을 파악하여 다음 전략을 새로 짜 다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고자 합니다.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에 실패한 장교는 용서받기도 하며 다음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계에서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경계 태세에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엄히 명합니다. 그리고 경계에서 실패하였을 경우에는 그 책임을 엄히 물으며 처벌합니다. 왜 이렇게 장교에는 관용적인데 병사에게는 가혹하는지요. 병사가 경계를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하여 적의 공격에 뚫렸을 경우에는 부대 전원이 몰살하는 참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국가 전체의 존망을 요인이 되기까지 합니다. 병사 한 사람의 경계 실패가 그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여 경계에서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며 그들의 경계 임무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며 깨어 있어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있는 적의 침투와 공격에 대비 상태에 있게 살피는데 집중하도록 주의를 줍니다. 부대는 그처럼 경계 근무를 24시간 할 수 있도록 병사를 교대시키며 적재적소에 배치합니다. 경계는 단 한 시도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병사에 의해 24시간 경계는 행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경계를 들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함에 있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에 앞서 밭에서 일하는 두 남자와 집에서 맷돌을 가는 두 여자 비유 (40-41절)를 통해 권면해 주신 말씀인 42절에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시어, 깨어 있어야 할 이유를 알려주셨습니다. 어느 날에 주께서 임할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43절에서는 “(그러나)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라고 말씀하셔서 제자들이 그렇게 깨어 있는 것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시각에’의 ‘시각’은 망루나 성문에서 파수를 보는 병사가 경계하며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서 유래하여 ‘경계하는 것’, ‘파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본 구절에서는 부대의 보초병이나 성을 지키는 파수병이 경계 근무를 서면서 교대병과 교대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밤 12시간을 셋으로 나눠서 3경(3×4)으로 보았으나 로마의 지배를 받은 후부터는 로마의 시간 구분법을 따라 넷으로 나눠 4경(4×3)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이곳에서의 ‘시간’은 4경의 한 경점을 말하는 것으로, 도둑은 집 주인이 깊이 잠 들어 있는 시간 때를 잡아 침입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도둑은 어느 집에 침입하는지 몇 시경에 침입할 것인지를 집 주인에게 알려주고 그 시간에 맞춰 오는 것이 아니라, 집 주인이 알지 못하게 주인이 깊이 곪아 떨어진 시간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쳐갑니다. 하지만 집 주인이 항상 깨어 있고 집에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면 어느 시간에도 도둑이 감히 침입할 마음을 먹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집주인이 깨어 있음은 언제 침입할지 모르는 밤도둑을 지키는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있게 되는 것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알지 못하는 때에 있습니다. 하여, 교대 근무를 서며 성을 지키는 파수병이 항상 깨어 있으며, 부대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보초병이 항상 깨어 있는 것을 들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또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이시나 깨어 있음으로 영접하여 맞이함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에서 42절에서 해 주신 깨어 있으라고 하신 말씀을 44절에서 다시 거듭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