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중학교 2학년 때 쓴 시 <겨울>이 《학원》이란 학생 잡지에 실렸다. 의아했다. 내게 재능이 있는 걸까? 중학교에 진학하며 한국 문학 전집을 읽는 재미에 빠졌다. 첫 시를 쓴 이듬해 학원 문학상을 받고, 한 지방 신문의 전국 학생 작품 공모전에서 시와 산문부 장원을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청소년기에 미술반 활동을 하며 문학보다 그림에 더 빠져 있었다.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그림을 보고, 밤늦도록 미술반 교실에 남아 정물화를 그렸다. 배가 고프면 퍼석해진 사과를 씹어 먹으며 수채화나 파스텔화를 그리곤 했다.
스무 살 무렵엔 서울의 고궁에서 스케치를 하고 유화를 그리거나, 시립 도서관에서 철학책을 찾아 꾸역꾸역 읽고, 음악 감상실의 어두운 구석에서 고전음악을 들었다. 중학생의 가정교사를 하며 용돈을 벌고, 남는 시간엔 시집과 문학 평론집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푸른 노트에 시를 썼다. 그 시절 낡은 타자기로 글을 썼다. 자판을 두드릴 때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운 좋게도 신춘문예에 시와 평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십 대 중반 편집자의 길로 들어섰다. 마흔 무렵 출판사를 접고 원고료와 인세로 생계를 꾸리는 전업 작가로 살았다.
마흔 해 동안 글을 썼다.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본성적 끌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육감적인 여자의 미소도, 인생의 쓰디씀도, 우주의 중력도 모른 채 시를 썼다. ‘완숙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무지의 극한이었다. 살구나무가 시를 쓴다는 것도, 별들이 한숨을 쉬거나 노래하는 것도 모른 채 무지몽매했다.
나는 악천후를 견디며 무지의 자각 속에서 무엇인가를 쓴다. “무엇보다도 일단 써 봐. 노래해. 피가 혈관을 흐르는 것처럼(메리 올리버).”
글쓰기에는 길이 없다. 가고 나면 길이 생길 뿐이다. 고독은 쓰는 자의 천형(天刑)이다. 음주의 기쁨도, 사교 생활의 번잡함도 다 끊고 글을 쓴다.
스무 살 무렵엔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벽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오랫동안 재능이 없는 거라고 탄식했지만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끼적이는 게 문장이 되었다. 펜에서 문장이 흘러나온다. 내가 걸을 길과 날씨들, 만난 사람과 식물들, 소용돌이와 혼돈, 내가 먹고 마신 것들, 즉 밥과 미역국, 낙지와 연어, 냉이와 두릅, 두부와 중국술에서 문장이 빚어진다.
나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무언가를 끼적인다. 어둠 속에서 벼락과 비, 어린 시절의 병과 외로움, 하늘의 매와 구멍에 웅크린 쥐, 오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석탑과 떨어진 대추 열매, 모란과 작약, 빵과 포도주, 어머니의 저녁, 젊은 연인의 키스, 정오의 슬픔과 간밤의 격렬한 꿈, 강의 하류와 헤어진 여자의 허리, 여자의 영혼에 드리운 그늘에 대해서 쓴다. 올해 나온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는 내가 쓴 백한 번째 책이다.
시 쓰기는 은유를 찾는 모험이다. 시인은 고양이를 ‘밤의 야경꾼’이라고, 매미를 ‘떠돌이 풍류객’이라고, 비 온 뒤 생긴 물웅덩이를 ‘길의 눈동자’라고, 연못을 ‘눈꺼풀이 없는 눈동자’라고, 풀을 ‘대지의 이마에 돋는 푸른 뿔’이라고 노래한다. 좋은 시는 은유의 보석 상자라고 할 만하다.
은유는 약동하는 세계에서 온다. 종달새, 버드나무, 비비추의 싹들, 토마토, 흐린 날, 빗소리, 뱀, 날도래, 반딧불이, 별, 바람, 모란과 작약, 여자의 미소, 모든 죽어 가는 것들로부터, 은유는 피의 자연스러운 분출, 명랑한 울음, 생명의 약동이다.
은유는 대상의 삼킴이다. 대상을 삼켜서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은유를 빚는 힘은 무의식과 피 그리고 망각이다.
은유는 더디게 나온다. 은유는 한 줌의 영감(靈感)이 아니라 오직 땀과 노고, 내 안에 차오르는 고독과 시간에 의해 빚어지기 때문이다. < 《좋은 생각(2019년 3월호)》 ‘나의 글쓰기(장석주·시인)’에서 옮겨 적음. (2019.03.07. 화룡이) >
첫댓글 "은유는 한 줌의 영감(靈感)이 아니라 오직 땀과 노고, 내 안에 차오르는 고독과 시간에 의해 빚어지기 때문이다" 장석주의 시쓰기나 나태주의 시쓰기나 결국은 구양수의 삼다에 귀결됩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난 후 백자나 청자처럼 태어나는 시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