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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파랑새 이야기를 보면, 가난한 나무꾼의 두 아이들이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곳곳으로 다녔습니다. 그들은, 추억의 나라, 매력의 나라, 미래의 나라와 먼 나라까지 찾아갔지만, 어디에도 파랑새는 없었습니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두 아이는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 속에 있었습니다. 이 동화가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행복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감사하는 삶을 살며 행복을 누리지만, 작은 것에도 불평하며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살기에,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많은 전제 조건들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러한 행복에 대해, “우리는 닫힌 문 만을 오랫동안 바라봄으로써 이미 우리에게 열려진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라고 했으며, 미국의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은, “어리석은 사람은 행복을 먼 데서 찾는다. 현명한 사람은 행복을 자신의 발밑에서 키운다”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환경과 조건에도 어떤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행복이 물질이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된 우리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광야 1세대는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하나님을 원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일주일이면 들어갈 가나안을 40년이 지난 후 들어갔고, 그 동안 광야를 옮겨 다니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전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본문 29절을 보시면,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이를 쉬운 성경역으로 보시면, “이스라엘아, 너희는 복을 받았다. 너희와 같은 백성은 없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구해 주신 백성이며, 여호와께서 너희의 방패시고 너희의 돕는 분이며 너희의 영광스런 칼이시다. 너희의 원수들이 너희에게 패하겠고, 너희는 그들의 높은 신전을 짓밟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광야에서 유랑하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말처럼 행복한 사람들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심으로 이스라엘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된 우리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행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6절을 보시면,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가 행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돕고,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심을 언급합니다. 그러기에,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천지의 주재가 되심을 나타내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은, 세상의 모든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유일한 민족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한 몸에 받은 다윗이, 사울의 끈질긴 추격에도 불구하고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보호자가 되셨고, 그가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근본이요, 이스라엘의 축복이요, 이스라엘의 기업이요, 이스라엘의 상급이요,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모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돌보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한 모세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과 능력을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보호하시는 백성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스라엘이여 너야말로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며, 이스라엘을 향해 외칩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이스라엘에게 있었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바보와도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그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본문을 다시 보시면,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이를 새번역으로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아, 너희의 하나님과 같은 신은 달리 없다. 하나님이 너희를 도우시려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시고 위엄 있게 오신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고자 하늘에서 오시는 데, 구름을 타고 위엄있게 오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열심으로 이스라엘을 돕는데, 그 누가 감히 이스라엘을 대적하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이러한 도우심은, 본문의 이스라엘 뿐 아니라, 성도된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또, 성도된 우리는 연약하기에 항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시며, 그들은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러 모로 도와 주셨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은 행복한 것입니다. 시 50: 15을 보시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삶의 진자리에서나 마른자리에서나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만을 찾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세상에서 만나는 수 많은 일들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보호하시기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수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길 힘과 믿음과 지혜를 주심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7 - 28절을 보시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가 행복한 것은, 우리의 만족이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7절 전반부를 보시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된 우리의 처소이며, 이 처소는 성도된 우리의 “안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방패가 되십니다. 시 90: 1을 보시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팔이 성도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서 안전할 수 있습니다. 이어, 본문 27절 후반부를 보시면,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심으로, 그들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이스라엘이 영원히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팔이 어디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본문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의 현실적 풍요를 말합니다. 보시면,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야곱의 샘”은,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물처럼 자손이 번영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는 것은, 그들의 양식이 풍부하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수가 많아지고, 먹을 것이 풍족함으로, 그들이 이 땅에서 아무 걱정 없이 누리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공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만족을 누리며, 세상의 어떤 나라보다 더 행복하게 될 것임을 선포하는 겁니다. 행복과 만족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인 지위 등과 비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 15: 4을 보시면,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농부의 관심은 과실을 내는 것이기에, 포도나무의 줄기에서 떨어진 가지들은, 모두 모아서 불쏘시개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행복은 우리의 내부나 외부 어느 한 곳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결합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할 때,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갈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처소로 다시 들어가려고 애써야 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팔 아래 놓여 있으려고 하나님의 팔을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처소를 떠나는 순간, 팔의 보호하심은 사라지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빼앗기고 다 잃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사람들은 영원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당장 보이는 재물과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합니다. 이에 대해, 본문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합니다. 우리의 처소가 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거하심으로,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9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가 행복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전반부에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며, 이스라엘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이스라엘은 최고의 복을 받았고,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는, 성도된 우리에게서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본문 중반부에서,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라고 합니다. 여기를 보시면, “방패”와 “칼”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방패는 적의 창과 칼과 화살을 막아주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어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게 거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칼이 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다는 겁니다. 시 121: 5 - 8을 보시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지켜주는 사람, 하나님께서 도와주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본문 후반부에서,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대적들을 다 정복하고 그 땅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삼상 17: 47을 보시면,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된 우리를 대적하는 대적이 아무리 많고 강할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정복하고 승리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곧 복을 누린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의 최후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구원 때문에 행복하고, 도우심 때문에 행복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을 누리심으로, 행복한 성도로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