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國家)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宰相)이 생각나고,
가정(家庭)이 어려우면 현명(賢明)한 아내(婦人)가 필요(必要)하다고 했습니다.
중국 천안문 남쪽에 모택동 기념관이 있는데 모택동과 같이 중국의 건국을 위해 일하며 가장 오랫동안 총리 자리를 지킨 사람 중에 “주은래(周恩來, 1898 ~ 1976, 저우언라이,총리)가 있습니다.
중국(中國)에서 존경(尊敬)받는 정치가(政治家)인, 주은래(周恩來,)는 프랑스 유학생 출신의 정치가 였으며, 평생(平生)을 단 한 벌의 인민복(人民服,)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주은래(周恩來,)의 부인 등영초(登潁超, 1904 ~ 1992, 덩잉차오)도 주은래(周恩來,) 만큼이나
청렴(淸廉)하고 결백(潔白)했는데 그녀가 죽음(死)에 임박(臨迫)하여 두 차례나 그녀의 유언(遺言)을 다듬고 손질(动手)했던 것으로 유명(有名)합니다.
그녀의 유언(遺言) 내용이 우리네 가슴(胸)을 짠하게 만듭니다.
그녀도 주은래(周恩來,)처럼 깁고 또 기운 단 한 벌의 의복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임종(臨終)에 앞서 간호원(看護員)에게 내가 죽으면 즐겨 입던 검은 옷으로 수의(壽衣)를 해줄 것을 당부(當付)하였습니다.
그녀의 단 한 벌이었던 옷은 해지고 닳고 닳아서 속을 세겹이나 기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지(裤子)는 웃옷보다 기운 자국이 더 많아서 간호원(看護員)은 그녀의 검은 옷을 수의(壽衣)로 만들기 위해 마지막( 最后) 바느질(针线活)을 하면서 눈물(眼泪)을 흘렸다고 합니다.
주은래(周恩來,) 부인인 등영초(登潁超,)의 유언(遺言) 속에는 그녀의 청렴(淸廉)과 생활신조(生活信條)가, 살아생전(生前)과 하등(何等) 다름없이 담겨있습니다.
“나의 인체(人體)는
해부용(解剖用)으로 바치겠다.
장례(葬禮)나 추도회(追悼會)는
일체(一切) 치르지 말라,
살고 있는 집(家)은 국유재산(國有財産)이니
기념관(記念館)이나
주은래(周恩來,)가 살던 집(家)이라
이름 하여 보존(保存)하지 말라.“
여성 정치가요, 주은래(周恩來,)의 부인이었던 등영초(登潁超,)는 1992년 7월 11일 일생을 마쳤는데, 그녀도 주은래(周恩來,) 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열성적(熱誠的)이었습니다.
주은래(周恩來,)와 등영초(登潁超,) 사이에 아이가 없어 등영초(登潁超,)는 주은래(周恩來,)에게 씨받이 자식(子息)을 갖자고 권하면서, 총리가 자식이 없으면 되겠느냐고 주장했지만, 주은래(周恩來,)는 그녀의 간청(懇請)을 거절(拒絶)했습니다,
“고아(孤兒)를 기르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고아(孤兒)들도 모두가 인민(人民)의 자식(子息)이라고 했습니다.
이붕(李鵬, 1928 ~ 2019, 리펑) 전 총리가 그렇게 해서 기른 주은래(周恩來,) 부부의 양아들이었는데, 이붕(李鵬,) 전 총리는 주은래(周恩來,)의 혁명동지(革命同志)의 아들이었습니다.
먼저 간 혁명동지(革命同志)의 아들을 양아들(養子)로 맞아들인 주은래(周恩來,)의 관계학(關係學), 또한 절품(絶品)이었다는 생각입니다.
2024. 11. 25
월남촌 사랑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