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해파랑길
#산티아고원정대
★ 해파랑길 1차 探訪 ★
기간 : 2019년 12월 15일 ~ 12월 17일 (2박 3일)
@ 3 일차 (12월 17일) ➪ 5코스 (18.14km)
1. 어둠의 부둣가
“ 듣고 있나요? 나의 이 모든 얘기를
그댈 향한 내 깊은 진심을 ... ...”
가수 [거미]의 애절한 노래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어젯밤에는 고질적인 근육 뭉침 현상이 있었다.
깨자마자 레그레이즈 10회 3세트.
다행히 다리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동안 메지 않았던 배낭의 어깨끈이
오른쪽 어깨에 계속 자극을 주었는지
어깨에 멍이 들었다.
배낭무게 15kg.
레그레이즈를 마치고 비 예보가 있어서
창문을 열고 팔을 뻗어본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서 흐렸는지 개였는지
구별이 되질 않고 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확인. 다행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
흩어진 신발을 살살 주물러서
모양을 잡아준다.
양말과 신발의 부조화 때문에 몇 번의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양말과 신발 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터득.
05시 52분 진하해변
어둠이 내려앉은 부둣가
그제도 어제도 보였던 달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달이 뜨지 않았다.
불빛도 보이지 않는 작은 부둣가.
허름한 술집 몇 군데.
국밥집 몇 군데.
바다로 흐르는 작은 강.
다리 건너 흐르는 안개.
어둠에 이리저리 표류하는 안개를
바람이 길 안내하는 양 일정한 속도로
불고 있고 그 바람을 따라
속도를 내어 본다.
인도와 차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길을 걷다가 오른쪽을 보니 강이 흐른다.
2. 일출
회야강을 따라 걷다가 보니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다리 하나를 들고 부리는 날개 속에 묻은 채
늦은 잠을 청하고 있는 왜가리 한 마리.
순간 주위의 공기가 청정해진다.
기온이 조금 내려간다.
이틀 째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지만
사방을 둘러 봐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동쪽엔 이름 모를 산이 떡 하니 서 있다.
현재 6.0km/h 속도.
잠깐 숨 고르기 위해 생수 한 모금.
영양갱 하나를 먹는다.
하늘이 잠깐 붉어졌다가 이내 잿빛 구름에
모습을 숨긴다.
어제도 그제도 해가 떴다.
오늘은 어제나 그제처럼 해는 뜨지 않았다.
뜨지 않은 게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해가 뜨지 않은 일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준비한 보온병에 담긴 따듯한 물 한 잔.
호호 불며 음미.
매일 의무처럼 주어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의 시간을 일상적이지 않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을
갖기 위해 길 위에 서서 선문답하듯 걷는 시간.
어느 날부턴가 웃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더러 웃기라도 하는 날엔 공허감이 밀려 왔고
내 보통의 날들은 늘 내 입꼬리가
내려간 무표정이거나 미간이 부푼 울 읍한 상태였다.
내가 다시 걷기 시작한 때가 이런 현상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면서부터다.
그렇다고 걷고 나면 아니 걷는 순간에도 이런 현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손 놓고 있던 글쓰기를 다시 하고 있고
비록 중언부언 떠드는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뭔가 집중하고 있고 걸으면서 話頭를 찾고 있고
구성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3. 울산 그리고 그리움 하나
해파랑길 부산 구간이 4코스에서 끝나고 5코스는
울산 구간 시작이다.
울산 구간에 들어오면서 해파랑길 안내 표식이
좀 더 명확해진다.
기본 해파랑길에 대한 리본이나 표식은 유지하지만
지자체마다 각 지자체를 알릴 수 있는 특유의
문양이나 모양이 추가되나 보다.
회야강이 끝나면서 마을을 어귀.
마침 문을 연 식당이 있어서
식사하려고 들어갔더니
아직 밥이 준비되지 않아 ...
30분을 기다리란다.
30분이면 3km를 걷는데...
참 예쁘게 정원을 꾸며 놓은 식당이였다.
식당을 나서서 큰 차도로 들어서니
우측으로 철로가 보인다.
이 철로 역시 KTX가 지나면서 없어진
서울 부전간 철로이다.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기장까지 가노라면
울산역을 출발한 기차는 기장까지 몇 개의 길고 짧은 터널을
지나고 몇 개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을 지나간다.
가끔 부산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이 철로를
자주 이용했다.
외선이라 마주 오는 기차라도 있으면 역에서 대기했다가
그 열차가 지나가면 출발하는 그나마 약간의 시골스러운 정이
느껴지는 그래서 자주 이용했던 것 같다.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본 철로는 녹슬어 있었다.
옛 영광을 뒤로한 채.
4. 공업탑
울산은 시 자체가 공업단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대기업들이 있고
그 대기업과 상호연관 관계가 있는 중소 공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통도사를 가려면
이 공업탑을 지나가야 한다.
이 공업탑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도로 위에 걸려 있는 이정표에
공업탑이 보이면서 울산이 점점 가까워짐을 알려 준다.
울산공업센터 건립을 기념해 세워진 이 탑은
이정표에서 이름을 보는 순간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5. 덕하역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고
오르막을 오르면서 내리막길로 들어서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
마치 어디서 많이 본듯한 광경이다.
오래된 한의원 하나.
빙글빙글 돌다가 그 힘에 퇴색된 미장원을
알리는 경광등(?), 미닫이문이 독특한 국밥집.
페인트로 쓴 간판을 단 씨앗 파는 가게
농기구는 덤인지 봄을 기다리는 중이고
골목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천막
그 아래 과일이며 채소며 군것질거리며
생필품이며 소소하게 진열해 놓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좌판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상인들은 물건 팔
준비로 바쁘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듯 심술궂어 보이고.
보여야 할 덕하역 역사는 안 보이고
역 앞에 亂場이 펼쳐지고 하마터면 지나칠 뻔한
엉뚱한 곳에
덕하역이 덩그러이 서 있다.
오전 10:00시
6. 태화강역
태화강역까지 기차로 이동 후 미리 예매해 놓은
안산행 버스를 타야 한다.
기차표를 사고
역 근처 순댓국밥집에 들어간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길을 나서며
들었던 왜?에 대한 답을 생각한다.
삶의 답답함 생각의 어지러움
혼란 이럴 때마다 나는 펜을 들었다.
아마도 고1 때부터인가?
쇼펜하우어를 읽고 혼란스러울 때
니체를 읽고 칸트를 읽고
고흐의 지화상을 들여다보며
짤린 귀는 어디다 버렸을까?
수많은 습작의 흔적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독서량을 늘리고 많은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점점 쇠퇴해지는
기억 속에 아직도 부여잡고 있는
그때의 기억.
나는 글을 쓰고 있을 때
책을 읽고 있을 때 제일 좋았다는
그 느낌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지금은 가질 수 없는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느낌을 글로 옮길 방법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 중
두 번째 걷기를 하고 그 느낌을
오롯이 옮기는 작업을 하는 것.
예전엔 울산역이었던
이곳에서 역 광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다리를 지나 강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내리막이 끝나고 거기서 바라보면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7. 斷想
단절되었던 기억을 연결하고
비루해져 있던 현재 나의 모든 것을
내 치는 것.
비로소 나는 길 위에서 자유로워졌다.
누적거리 91km
첫댓글 닉이 왜 시우 이신지...
글을 읽다 궁금 해 졌네요...
君子之所以敎者五이니 有如時雨化之者하며 有成德者하며 有達財者하며 有答問者 有私淑艾者此五者 君子之所以敎也(孟子 盡心上 40章)
“군자가 세상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時雨와 같이 목이 말라 죽어가는 만물에게 단비라는 자양분을 내려 스스로 새 생명을 찾아가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각자의 덕성을 길러 사랑의 길을 가게 하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의 재질을 계발하여 세상에 도움을 주게 하는 방법도 있고 물음에 답하여 부분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방법도 있고, 간접적인
私淑의 방법으로 가르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時雨 => 한문공부하다가 같이 공부 하던 분이
질문을 해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뜻이 좋아서 닉을 바꾸었습니다.
원래 닉은 "생각의너울"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