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13일 불어난 자산 거품이 SVB 파탄을 신호탄으로 사라져가고 있다며 대상승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SVB 고객의 예금 전액 보장 등 유례를 찾기 힘든 카드를 빠르게 꺼낸 덕분에 인출 파동 확산은 막았지만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전날 블랙먼데이 공포를 이겨낸 아시아 증시는 14일 하락세로 돌아섰다. 코스피가 2.56% 하락했을 뿐 아니라 닛케이평균 홍콩 항셍지수 등 아시아 주요 지수는 모두 2% 이상 떨어졌다. 고금리가 불러온 금융시장 충격이 SVB와 실버게이트은행, 시그니처은행의 파탄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면서다.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금융주를 팔기 시작하면서 미국 장기 국채를 대량 보유한 일본계 은행의 경영 악화 가능성도 제기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금융주가지수에 포함된 세계 금융주식 시가총액은 SVB 파산 이후 4650억달러(약 62조엔) 감소했다. 이는 우리 돈으로 약 609조원에 달해 우리 정부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 불과 2영업일 만에 증발했다.
미국에서는 SVB와 같은 규모의 중소 지방은행이 연쇄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무디스는 퍼스트리퍼블릭을 비롯해 자이언스밴코퍼레이션, 웨스턴얼라이언스방코프, 코메리카, UMB파이낸셜, 인트러스트파이낸셜 등 6개 지방은행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소은 KB증권 연구원은 "입출금 파동 확산의 고비는 일단 넘겼다고 판단된다" 면서도 "고금리 부담이 경제 곳곳에 쌓여 있어 앞으로 다른 형태로 문제가 발현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에 지방은행 연쇄 도산 리스크 불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1980년대 말 터진 미국 저축대부조합 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과거 두 차례 벌어진 미국 은행 연쇄 도산 위기에서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고금리다. 시중에 쏟아지는 자금 때문에 물가가 갑자기 오르자 금리 인상 처방이 나왔고, 수면 아래 숨어 있던 은행 부실이 나왔다.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를 잡겠다며 현재 정책금리를 상단 기준으로 연 4.75%까지 올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SVB 파탄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 금융당국이 SVB 등 파탄은행의 고객예금 전액 보장, 은행유동성지원기금 신설 등 속전속결로 대응한 것도 이런 과거 트라우마 때문이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금융시스템 구조상 조기 진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CNN)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미 당국이 발등의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다음이다. 몇 시간 만에 대규모로 예금이 유출될 위험성이 확인된 만큼 유동성지원기금을 통한 연쇄파탄 예방, SVB와 같은 파탄은행의 조기 매각 등으로 위기 전염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 사태가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경제 전체가 붕괴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아직 우세하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형은행 구조가 중소은행만큼 약하지 않아 당국의 적극적인 구제 의지가 확인된 만큼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SVB 파탄 여파가 이어지면서 한국 정부의 경계감도 높아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고물가)을 아직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불안 요인까지 겹쳐 앞으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관계기관 합동점검체계를 24시간 가동해 국내외 시장상황을 실시간으로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금융시스템 전반의 취약요인을 지속 점검·보완하는 한편 필요시 관계기관 공조로 신속하게 시장안정조치를 시행하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