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3,1-8; 마르 7,31-37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입니다. 두 분은 형제신데요, 그리스 출신이시면서도 슬라브 인들의 선교사, 스승, 수호성인이 되셨습니다. 두 성인께서는 슬라브어의 알파벳을 만드는데 기여하셨는데, 오늘날 러시아어 등 많은 슬라브인 국가들이 쓰는 문자를 ‘키릴 문자’라 부르는 것은 바로 성 치릴로의 이름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두 성인께서는 복음과 시편, 바오로 서간, 전례서 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셨고 슬라브 전례를 만드셨습니다.
두 분은 자신들의 활동을 오해한 사람들에 의해 박해도 받으셨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셨습니다. 치릴로 성인은 869년 2월 14일에 선종하셨고, 메토디오 성인은 885년 4월 6일 성목요일에 선종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85년에 두 성인을, 성 베네딕도와 함께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인류의 첫 번째 범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뱀은 … 가장 간교하였다’라고 시작되는데요, ‘간교하다’는 히브리어로 ‘아룸’이고 ‘알몸’은 ‘아롬’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어제 독서는 끝이 났는데요,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후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가리게 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피해 숨게 됩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과 상관없이 인간이 선과 악을 결정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뱀의 유혹에 빠져 하와가 나무 열매를 바라보니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습니다. 참 역설적인 말인데요, 인간은 하느님 뜻을 따를 때 가장 슬기롭습니다. 그런데 ‘저것이 슬기롭게 해 줄 것 같다’고 여기면서 하느님 명령을 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고 하느님의 영역에 도전한 것이 인류의 첫 번째 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잘못을 깨닫고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이 죄를 반복하고 있는지 성찰합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는, 사실 인간이 ‘모든 것은 다 우리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나 해도 된다’라고 착각하며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비롯되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어리석음의 시작입니다.
오늘날 ‘내가 돈을 주고 샀으면, 그것은 내 것이다’라는 생각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착각입니다. 에덴동산이, 동산의 나무 열매들이 하느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더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잠시 점유하고 있는 물건이나 자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우리가 진정 슬기로워질 것입니다.
어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본격적으로 이방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혀에 손을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곧바로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 그는 제대로 말을 하게 됩니다.
이 기적은 이사야서 35장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예언합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5-6)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되었던 ‘광야에서의 귀환’이라는 구원이, 이제 이방인에게도 확대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기적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를 막아 귀가 멀고, 하느님 말씀을, 진리와 진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우리 사회를 주님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슬라브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주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한평생 헌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감사하게도 우리의 언어로 주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주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의 말씀에 더 귀 기울이고 있는지, 아니면 유혹에 더 귀 기울이고 있는지,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는 진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 내 것이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착각에 마음을 내주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출처: Cyril and Methodi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