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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 시63:1-11, 눅22;39-46
장래가 촉망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그만 과로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가서 내려가지를 않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가 결국 두 눈이 모두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눈이 멀어지니, 자연히 인생길도 막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때 마침 가까운 친지 한 분이 이럴 때 교회에 나가는 겁니다. 의학적으로 못 고치고 절망 가운에 있을 때 하나님을 찾아야지요.라고 전도해서 그는 자기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그 친지와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 앉아 있자니 젊은 나이에 실명이 돼서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도 기가 막혔습니다. 교만했던 자신을 생각하며 절망과 슬픔으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교회에 나가기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 동안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을 흘리니까 어느 날인가는 눈앞에 뭔가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오른쪽 눈의 시력이 회복되고, 곧 왼쪽 눈의 시력도 회복되었습니다. 두 눈이 모두 정상이 되었습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울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겸손한 마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은혜 받을 사람은 기도해도, 찬송해도, 말씀을 들어도 눈물이 나게 돼 있습니다. 애통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셔야 눈물도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의 배경은 다윗 왕의 아들인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자,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다 광야로 피신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 비유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한 내용입니다.
신약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드린 간절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는,
1.습관을 좇아 드린 기도였습니다.
본문 눅22:39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감람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누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습관을 따라’갔다고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주 가셔서 기도하신 것이 습관이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주님을 판 후 주님을 잡으려는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이 장소를 찾아 올 수 있었던 것도 습관적으로 이곳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를 복되게 하고 나쁜 습관은 우리를 해롭게 합니다. 여러 습관 가운데 인생 최고의 위대하고 복된 습관은 기도 하는 습관입니다. 기도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만나는 놀라운 교제이며, 지극히 무기력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삶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기도를 습관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승리와 형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다 사람으로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의 위대한 기도습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모함하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잡혀가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고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붙잡혀 사자 굴에 던져지는 시련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셨고 오히려 그를 높이 세워주셨습니다. 그 후 다니엘이 살아 있는 동안 왕들이 바뀌고 나라도 바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변함없이 높여주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니 예수님은 기도습관이 있었지만 제자들에게는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슬픔과 피곤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소에는 조금씩 기도하다가도 슬프고 고통스럽고 피곤하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마음으로는 그럴 때야말로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실제로 기도를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습관의 위대함이 이럴 때에 발휘됩니다. 기도하는 것이 몸에 철저히 습관화 된 성도는 이럴 때에도 기도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도 기도하고, 속이 상해도 기도를 하고, 몸이 아파도 기도를 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도 기도를 하고, 피곤해도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기도가 그의 몸과 마음에 깊숙이 습관으로 자리 잡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도의 습관을 만드는 성도가 됩시다. 기도습관이 삶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몸에 배인 기도습관이 우리의 삶을 능력 있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잠시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운전을 하기 전에 안전을 위한 기도의 습관을 가지시고, 사람을 만나기 전에 좋은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 잠에서 깬 후, 식사하기 전 기도의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두 번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오순절 이후 기도습관을 가지고 기도 하다가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도 습관적으로 기도하다가 천사의 방문을 받기도 하고, 베드로를 초청하여 집에 모인 무리들이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가 습관이 되는 은총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간절한 갈망이 있는 믿음의 간구였습니다.
본문 눅22: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간절히 기도 하셨는지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절박함과 간절함이 담긴 기도를 하실 때 천사가 와서 도왔습니다.
구약 본문 시63:1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했습니다. 다윗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전능하신 분이요, 무소부재하신 분이요,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으로, 바로 그분이 다윗의 하나님이요, 나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6절에 보면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했는데, 다윗은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 생각하며 갈망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갈급한 마음으로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나님,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힘을 주시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높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어도 간절한 열망이 없는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되거나, 중언부언하는 하나 마나한 믿음 없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즈 (H. G. Wells)가 쓴 단편 가운데 ‘대주교의 죽음’이란 단편이 있습니다. 믿음이 뛰어난 대주교허버트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경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묵상으로 기도하고 종일 기도를 반복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어느 날 저녁, 대주교는 늘 하던 대로 교회에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주교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주교는 평생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기도를 듣고 계시고,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식은 있었으나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응답이 있자 놀라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입니다.
대주교는 본래 그런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었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기도하면서 간절함과 갈망이 사라지고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믿음 없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에 놀라 죽게 된 것입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되 간절한 열망이 있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3.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눅22:42에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하셨습니다. 여기 ‘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 기도에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가 절절이 배어 있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를 피할 길이 없음을 아시는 주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시며 잔을 감당할 용기를 구하고자 하는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기도는 자신의 원함이나 뜻을 이루려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예수님은 모범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는 내 원이나 뜻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과 뜻을 이루는 도구여야 합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많은 경우 온통 ‘내 원과 뜻’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소원이 강력해서 아버지의 원과 뜻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누구의 원과 뜻인지를 구별하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그것이 내게 유익한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처럼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을 과감히, 그리고 기쁨으로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 참 믿음이고 진정한 기도요, 진정한 복입니다.
구약 본문 시63:8에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했는데, 여기의 ‘가까이 따르니’는 원어로 ‘아하레카 타메카’인데 ‘찰싹 달라붙다, 바짝 뒤따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새끼들이 어미 새에게 바짝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보호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따르고 싶어 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때로는 내게 유익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갈망하며 따르게 되면 그 결과 주님의 오른손으로 자신을 붙드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다윗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가까이 따르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혹독한 말씀에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고, 바울처럼 철저히 자기를 처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되면 때로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고, 많은 손해와 희생이 따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의 반대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로 활동하던 의료선교사 메이슨(Francis Mason)은 호전적인 부족 사이에서 사역할 버마의 원주민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뱃사공이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메이슨은 뱃사공에게 그 부족에게 가서 선교의 일을 도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매달 4루피의 월급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뱃사공은 15루피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기도한 후 뱃사공이 선교사를 찾아왔습니다. 메이슨이 급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결정했는가? 한 달에 4루피를 받고 가겠는가?” 뱃사공이 대답합니다. “선교사님, 저는 한 달에 4루피를 위하여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겠습니다.” 믿음은 물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참 기도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는,
◎.습관을 좇아 드린 기도였습니다.
◎.간절한 갈망이 있는 믿음의 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였습니다. 아멘.
<2023. 03. 22.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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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