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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감사해야 할 이유
데살로니가 전서 5:18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다음 주에는 올해의 모든 것을 감사로 결산하는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무조건 감사를 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림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소중함을 다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범사란, 우리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생기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파스, πᾶς’란 단어를 사용하여 ‘어떤 것이든지 모든’ 이라는 ‘any and every’를 사용하였습니다. 즉, 우리는 평안할 때나 시련의 때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좋은 일이 생기고 건강하며 행복할 때 감사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병들고 가난해지고 천대(賤待)를 당할 때도 감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명령으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예수 안이라는 뜻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악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와 그의 가족, 모두 여덟 사람이 구원의 방주에 들어간 것처럼,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구원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이란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풍랑이 몰아치더라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고, 예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평안과 환난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땅에 속한 피조물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기에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오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닫힌 문은 열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뀌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감동적인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실직하고 돈이 다 떨어져 며칠을 굶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허름한 국숫집에 들려 곱빼기를 시켜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주인 할머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뜨거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한 그릇을 주면서 “돈은 안 받을 테니 천천히 드시우”그러더랍니다.
젊은이는 두 그릇의 국수를 정신없이 먹고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식값을 지급하지 않은 채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뒤에서 주인 할머니가 “젊은이! 뛰지 말아요! 그러다 몸 다쳐 그리고 언제든 배고프면 다시 와요” 이 말은 들은 젊은이는 눈물이 핑 돌면서 결단을 했답니다. 반드시 성공해서 이 빚을 갚겠다고 말입니다. 그는 남미로 떠나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을 해서 국숫값을 갚으러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動力)이 있었다면 사랑에 대한 감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마음에 감사가 흐르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감사로 인하여 열린 문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이들을 뒤따라오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니, 그를 통해 큰 돈벌이를 하던 그 여종의 주인들이 돈벌이가 끊긴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고발합니다. 이로 인하여 관원들에게 붙잡혀 심하게 매를 맞고 차꼬에 채여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얼마나 억울할 노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였고, 귀신에게 사로잡힌 여종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온 것은 매를 맞는 것과 감옥에 갇히는 수모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하였습니다. 죄수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찬양과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상황에서 원망과 불만을 터트렸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원망과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마귀는 어둠의 환경에 빠트려 거기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을 잊게 만들고 하나님을 거부하게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마귀의 계략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힘있게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주께 나온 것입니다. 감사는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있은 원동력이 됩니다. 어떤 답답한 상황이 오더라도 거기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닫혔던 문이 열리고 절망의 환경이 희망의 환경으로 전환해 주십니다.
감사는 적은 것을 가지고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우리가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네 개의 볶음서 모두에 기록되어있을 만큼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수많은 무리가 광야에서 굶주렸을 때, 한 소년이 점심용으로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기적의 사건입니다. 여기서 떡은 보리 반죽을 구운 것을 말하며 물고기는 정어리같이 작은 물고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을 말합니다. 이 떡과 함께 짭짤한 마른고기와 함께 먹는 것입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더욱이 5천여 명의 사람들이 먹기에는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있으나 마나 한 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축사’란 ‘율로게오εὐλογέω’라고 하는데 이것은 ‘칭찬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라는 뜻입니다.
유대 가정에서 가장은 식사 기도를 미쉬나에 있는 고대 유대의 식탁 기도문을 따라 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빵 하나를 손에 집어 들고 “복 되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 세상의 왕이시여, 하나님은 땅으로부터 떡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라는 고백과 더불어 감사의 기도를 한 후 빵을 찢어서 나눠 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축사하다’에 해당하는 ‘율로게오’는 보통 무엇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즉 감사드리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이 말은 음식에 대한 보통의 감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공급해 주신 것을 노래하는 찬양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적은 양으로도 능히 수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으신 하나님을 믿기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져온 떡과 물고기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손에 들려져서 나눠 줄 때 떡과 물고기가 줄어들지 않고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을 때까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플라나리아라는 물속에 사는 작은 생물이 있습니다. 1~2cm 정도입니다. 아주 맑은 물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생물은 스스로 번식을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반으로 잘라도 일주일이면 각기 잘린 반 토막이 각각의 하나로 성장해서 두 마리로 됩니다. 이처럼 떡과 물고기를 나눠 줄 때 또다시 생기고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둑이라고 설명하는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도둑질’이란 내 생명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라 나라고 부추겨 내 안에서 예수님을 몰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풍성히’라는 단어는 원문에서는 ‘페릿소스 περισσός’란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필요 이상의, 뛰어난’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영어로는 ‘to the full’ 또는 ‘abundantly’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천국의 것으로 채워 전혀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풍성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내게 있는 것을 나눠 주므로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초라하고 부족하더라도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아브라함의 복이 내게 흐르고 나는 이 세상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복 있는 자로 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조건 감사해야 할 이유는 예수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그렇습니다.
대전에 사는 한 부자는 기이한 취미가 있는데 한밤중에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플래시 하나만을 들고 지하실에 은밀하게 숨겨진 금고를 열고 통장과 귀금속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척 행복하고 뿌듯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박국은 주님 오시기 610년 전쯤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그 당시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벨론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유다를 침공하려고 합니다.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면 유다가 망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이렇게 점차 국가의 안위가 심각하게 변화되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합니다. 무화과나무보다 포도나무가 더 중요하고 감람나무보다 밭의 식물이 더 중요하고 양보다 외양간의 소가 더 중요합니다. 처음에 없는 것보다 나중에 없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양과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별다른 소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소유하고 있으면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그리스도인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로 저와 여러분을 값 주고 사셨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신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님을 하나님 본체이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 영원히 계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예배하도록 하십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땅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자로 변했습니다. 땅의 기업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남쪽과 규슈 서쪽 사이의 해역의 대륙붕을 제7광구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석유 매장량이 미국 내 매장량의 4.5배, 천연가스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 매장량의 10배가량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추산이 맞는다면 7광구 석유 매장량의 가치는 현재 유가(배럴당 70~80달러) 기준으로 9,000조 원에 달한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액수는 우리나나 2024년 예산액 원 656.6조원의 13배에 이르는 어마머마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세계 경제 순위는 크게 상승될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도 이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였을 정도고 국민들의 관심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생명이신 성령 안에서 장차 얻게 될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비하면 이것은 그리 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어진 구원을 감사하고 장차 얻게 될 그 나라를 위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증으로 성령을 받았고 장차 얻을 영광의 풍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한순간도 잃지 않으시고 표현하셨습니다. 사랑은 표현에 있습니다. 시인 하만스타인은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며,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셨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풍성한 축복은 반드시 감사로 표현할 때 가치가 있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구원에 대한 감사를 말로만 하지 말고 감사에 대해 표현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 중에 최고의 것으로 드림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추수감사절 예배에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므로 더욱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