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찌르릉 찌르릉 이 자전거는
울아버지 장에 갔다 돌아오실 제
오불랑 꼬불랑 고개를 넘어
비탈길을 스스륵 타고 온다오
찌르릉 찌르릉 이 자전거는
울아버지 사오신 자전거라오
머나먼 시골길 돌아오실 제
간들간들 타고 오는 자전거라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불러 봤던 친숙한 동요 <자전거>의 가사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고 신나게 달리며 이 노래를 불러본 아이들이나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던 어른들에게도 추억이 깃든 곡이며, 운동회에서도 개사하여 응원가로 즐겨 부르는 이 동요의 작사가는 바로 목일신이다.
이 곡은 아동문학가 목일신 씨가 1926년 13세 되던 때, 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노랫말로 1931년 5월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에 발표되었다. 1년 후쯤엔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대현 씨가 이 가사에 곡을 붙여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애창 동요가 되었다.
1920년대의 자전거 경적소리와 지금의 경적소리가 달라진 점도 있지만, 이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찌르릉 찌르릉’이 ‘따르릉 따르릉’으로, ‘저기 가는 저 영감’이 ‘저기 가는 저 사람’ 등으로 노랫말의 일부가 수정되었다.
자전거가 귀하던 시절 아버지가 일을 쉬시는 날이면 아버지의 자전거를 어린 목일신에게 양보해 줬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목일신은 어느날 집으로 돌아와 동시 <자전거>를 썼다고 전해진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느꼈던 것을 꾸밈없이 써 내려간 이 시는 화려한 수식이나 은유 없이 어린이들의 정서를 잘 담고 있다.
1920년대 우리나라는 우리말과 글 사용이 금지된 일제강점기였다. 목일신 씨도 1930년 전주 신흥학교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하다가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어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많은 작품들이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노래했던 반면 목일신 씨는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항일운동가로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서도 작품에서는 순수한 동심이 담겨 있는 글을 다수 지어 그의 작품이 더욱 소중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자전거〉 이외에도 〈자장가〉, 〈비누방울〉, 〈아롱다롱 나비야〉, 〈산비둘기〉, 〈참새〉,
<시냇물〉, 〈물결은 출렁출렁〉등 400여 편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많은 동시가 실려있으며, <누가 누가 잠자나> 등의 동요도 많은 이들에게 불리고 있다.
또한, 천부교 찬송가 353장 “성신의 이슬로써 이뤄진 마을” 도 목일신 씨가 지은 것으로 <제1,2,3 신앙촌 송가>라는 제목으로 『목일신 전집』에 실려있다.
소년 시절부터 시작한 그의 글쓰기는 교사가 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반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그는 1960년 이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범박리(지금의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신앙촌에 거주하면서 주로 수필을 썼고 이 무렵 <범박동가>를 짓기도 했다.
1986년 72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한국아동문학가협의회 부회장과 한국음악저작권협의회 이사 등을 지낸 목일신 씨는 평생 동요를 통해 아이들의 동심을 일깨워주고, 꿈을 심어주고자 했다.
이러한 업적을 기리고자 2019년까지 그의 이름을 딴 목일신 동요제와 동시대회가 열렸으며, 현재는 따르릉 문화예술제와 목일신아동문학상 등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https://theweekly.co.kr/?p=7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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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어릴때 자주 부른 동요~
잘 봤습니다..
잘보고가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