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위조하다 외 1편
유혜자
앞을 똑바로 보세요
똑바로 보세요, 똑~~바로
똑바로 보는 나에게
자꾸 똑바로 보라는 사진사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보세요
다시 왼쪽으로 조금만
고개 들고
자연스럽게 살짝 미소
사진 찍으며 알았네
내가 세상을
삐딱하게 살고 있었다는 걸
똑바로 해라, 큰소리친 내가
실은 불량했다는 걸
빳빳이 힘주고 걸어간 그 길이
삐딱한 길이란 걸
흠 있는 길이란 걸
모르는 척, 무심한 척
사진사 바로 세워주네
살만한 세상 아니냐는 듯
웃어 보라네
좋은 세월 살아온 듯
더 젊어진 듯
위조된 생이
면허증에 거리낌 없이 환하네
언젠가 생이 한없이 비틀거릴 때
나는 다시 사진관에 가겠네
부딪치고 채인 흔적들 모두 꺼내 놓겠네
너른 품 곧은 눈의 사진사에게서
말끔해진 생으로
다시 한번 곧게 걸어 보겠네
환한 햇빛 속을 걸어가겠네
순장(殉葬)
대청마루에 식구들이 모였다
고운 옷을 입고
큰오빠 혼례에 모인 식구들
자, 찍어요!
펑!
큰어머닌 놀란 토끼 눈이 되고
그만 눈을 감아버린 오촌 당숙
긴 세월 대청에서
새벽 대문 소리에 기지개 켜고
드나드는 식구를 다정히 배웅하고 맞이하던,
깊은 밤 빗장이 걸리면
봉당에 다복다복한 신발을
지그시 굽어보던 액자 속 식구들
신도시 건설이 시작되고
불도저가 몰려왔다
삼십여 년 늘 그 자리인 액자를 까맣게 잊고
분주히 떠난 식구들
대문만 바라보던 큰어머니 눈은 더 동그래지고
질겁해 더욱 눈 꼭 감은 오촌 당숙
누하주가 밀리고
대들보 중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식목일 기념 마당 가 감나무는
이태 만에 물관이 잘렸고
사방 폭삭 소리에 절규는 파묻혔다
과거와 뿌리가
송두리째 콘크리트 아래 순장됐다
누가 나를 불렀을까
까마득한 시간을 흘러와
불현듯 떠오른 액자 속 식구들
돋은 이 빠지듯
하나하나 다시 볼 수 없게 된 그리운 이들
돌아보는 순간
찰칵
내가 찍힌다
사라질 시간이다
유혜자
1960년 충남 보령 출생,
2024년 <문학과사람 시선 공모>에 당선되어
첫 시집 생을 위조하다를 내고 작품활동 시작.
카페 게시글
Poem&Poetry
생을 위조하다 외 1편 / 유혜자
문학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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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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