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 이 말을 듣고 꾸짖었다.
"앞으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지난번에 내가 들으니 '유(儒)는 유(諛)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 나쁜 이름을 모두 모아서 망령되게도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낯간지럽게 아첨하는 구나.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겠느냐?
대개 천하의 이치가 한 가지이니, 범의 성품이 악하다면 사람의 성품도 악할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선하다면 범의 성품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 오상(五常)을 떠나지 않고,
경계하여 권명하는 것이 언제나 사강(四綱)에 있긴 하지만,
서울이나 고들에서 코 베이고 발 잘리며,
얼굴에 죄인이라는 글자를 먹으로 새긴 채 돌아다니는 자들이
모두 오륜에 순종치 않은 사람들이란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줄이며 먹바늘이며 도끼며
톱 따위의 형벌 도구들을 날마다 공급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그 나쁜 짓을 막을 길이 없어.
그런데 범의 집에는 이러한 형벌이 없으니,
이로써 본다면 범의 성품이 사람보다 어질지 아니하냐?
☆☆☆
범은 나무와 풀을 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강술처럼 좋지 못한 것을 즐기지 않고, 젖이나 알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은 차마 먹지 못한다.
산에 들어가면 노루와 사슴을 사냥하고 들판에 나가면 말이 소를 사냥하되,
아직 구복(口腹)의 누를 끼치거나 음식 때문에 송사(訟事)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범의 도(道)야 말로 어찌 광명 정대하지 않으랴.
범이 노루나 사슴을 먹으면 너희들이 범을 미워하지 않다가도,
범이 말이 소를 먹으면 '원수'라고 떠들어대더구나.
아마도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지 않지만,
말이나 소는 너희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도 너희들은 말이나 소가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도 다 저버리고,
사랑하고 충성하는 생각까지 다 잊어버리며,
날마다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그 뿔과 갈기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더구나.
게다가 우리들의 노루와 사슴까지도 토색질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서 먹을 것이 없고 들에서 끼니를 굶게 하였었다.
그러니 하늘로 하여금 공평하게 처리하도록 한다면,
너를 먹어야 하겠느냐? 아니면 놓아주어야 하겠느냐?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자를 도(盜)라 하고,
남을 못살게 굴다가 목숨까지 빼앗는 자를 적(賊)이라고 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쏘다니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며 남의 것을 착취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더구나.
심지어는 돈더러 형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죽이는 일까지도 있었으니,
이러고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겠느냐?
그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그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으며, 벌을 막질러 꿀을 긁어먹고,
심한 경우에는 개미의 알을 젓 담아서 그 조상께 제사하니,
너희보다 더 잔인하고 박덕한 자가 있겠느냐?
☆☆☆
너희들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하면서 걸핏하면 '하늘'을 일컫지만,
하늘이 명한 바로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 다 한가지 동물이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인(仁)으로써 논하더라도
범과 메뚜기, 누에, 벌, 개미와 사람이 모두 함께 길러졌으므로, 서로 거스를 수가 없다.
또 그 선악(善惡)으로써 따지더라도
뻔뻔스럽게 벌과 개미의 집을 노략질하고
긁어 가는 놈이야말로 천지의 거도(巨盜)가 아니겠으며,
함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 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의 대적이 아니겠느냐?
범이 아직도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까닭은 차마 제 겨레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범이 노루가 사슴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고,
범이 말이나 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말이나 소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며,
범이 사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었을 때에 백성들끼리 서로 잡아먹은 자가 몇만 명이고,
그 앞서 산동(山東)에 큰물이 났을 때,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자도 또한 몇 만 명이었다.
그러나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는
어찌 저 춘추시대(春秋時代) 같은 적이 있었겠느냐?
춘추시대에는 은덕을 세운다는 싸움이 열 일곱 번이요,
원수를 갚는다는 싸움이 서른 번이었다.
그들의 피가 천리에 흘렀고,
엎어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범의 잡 앞에선 큰물과 가뭄 걱정을 모르므로 하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원수와 은혜를 모두 잊고 살므로 다른 생물들에게 미움을 입지 않는다.
천명을 알고 순종하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교한 술수에 미혹되지 않고,
타고난 바탕을 그대로 지녀서 천명을 다하므로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범이 착하고도 성스러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