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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감각적인 것의 분배’란 무엇인가?
감각: 단순한 오감의 자극 인지가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역할, 사고, 행동의 배분을 포함.
감각적 분배: 사람마다 사회적 자리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배치하는 상징질서의 구조.
예: 학생,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마땅한’ 사고와 위치.
치안(police): 기존의 감각적 분배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질서.
정치(politics): 기존의 분배에 저항하고 새로운 분배를 만들어내는 행위.
2. 감각을 왜 ‘감각’이라고 부르는가? (미학과 연결)
Aesthetic(미학): 감각 수용 능력의 학, 감각이 지식‧사고‧행동을 어떻게 만드는지 다룸.
랑시에르는 예술을 다른 영역과 분리된 자율적 활동으로 보지 않음.
감성적 예술체제:
예술은 허구이되 현실에 영향을 미쳐 삶을 잠식하고 변화시킴.
제한된 자율성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교란하고 새로운 분배를 시도함.
3. 예술과 정치의 관계
예술은 새로운 감각의 분배를 시도함으로써 정치적이 됨.
그러나 단순한 형식 실험 ≠ 자동적 정치성.
정치적 예술의 조건: 감각적 경험의 질서에 실질적인 균열을 내는가.
4. 자율성과 감성적 특이성의 구분
예술의 자율성: 작품 형식의 독창성(예: 폴록).
감성적 특이성: 새로운 감각 질서의 창출 여부(예: 말레비치).
예술이 정치적이 되려면 형식이 삶의 실천과 조우해야 함.
5. 정치성 ≠ 참여예술
참여예술은 기존 정치세력 구조 안에 재현되는 경우가 많음.
특정 계급에 대한 재현이 아닌, 감각 질서에의 개입과 변형이 정치성의 핵심.
6. 랑시에르의 사례: 19세기 노동자 시인
정치성의 핵심: “노동자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존재 자체가 정치적.
시의 내용이 아닌, 시 자체가 금지된 감각적 능력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의미.
7. 창조적 실천의 자유와 구속
예술은 기존 정치와의 일치를 추구할 필요 없음(자유).
하지만 감각 질서의 변화를 위한 고민과 실천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음(구속).
8. 핵심 키워드 정리
정치성의 본질: 기존 담론 체계 파열 + 새로운 감각적 삶의 형식 창출
허구의 잠식성: 예술은 단순 허구에 머물지 않고 삶에 실현되어 영향 미침
정치적 예술의 조건: 타 실천영역과의 상호작용 + 감각 체계의 변형
재현의 문제: 단순 묘사 ≠ 정치성, 감각적 ‘몫’을 새롭게 배분해야 함
예술과 정치의 이종적 결합: 상상력과 실천의 다층적 방식 필요
https://m.blog.naver.com/profyongik/120192454636
감각적인 것의 분배
미술인 영농단은 “감각의 분배‘란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하기로 했다. “감성의 분할(작크 랑시에르 저, 오윤성 옮김, 도서출판b)”이란 책이 도저히 “어려워서” 읽기 어렵다는 단원 중의 한사람 얘기가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책은 읽기가 거의 불가능 할 정도였다. 그래서 “감성의 분할”을 “감각적인 것의 분배”로 해석하는 진은영의 글(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이라고 하는데 어느 잡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을 먼저 읽기로 했다. 그것도 쉽지는 않다. .
감각적인 것의 분배란 무엇인가? (진은영의 같은 제목의 글 요약 및 보충 설명...)
“감각”의 사전적 정의 : 신체 기관을 통하여 안팎의 자극을 느끼거나 알아차림, 신체 기관을 통해 느끼거나 알아차리는 것.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등 오감을 통하여 외부의 자극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
그러나 이 글(진은영의 글)에서의 감각이란 말은 위의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쓰인다. 예컨대 “감각적 분배”는 “업무의 분배”. “행동과 제작방식의 분배”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말해 감각적 분배란 공동체의 상징질서 공간에 각 사람의 자리, 업무, 역할, 행동, 사고등을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학생이라면, 혹은 노동자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고, 마땅히 생각해야할 사고가 있다는 식이다. 즉 이런 식으로 인간을 상징질서 공간에 배치 시켜놓는 것을 감각(적인 것)의 분배, 혹은 감성적인 것의 분배라고 말한다. (원 책에서는 감성이 분할을 자리들과 형태들이 속해있는 지각 양식들을 우선적으로 정립함으로써 공통세계에의 참여에 대한 자리들과 형태들을 나누는 감각질서를 지배하는 잠재적 원칙을 나타낸다. 감성의 분할은 따라서 말해질 수 있는것, 사유될 수 있는것만들어질 수 잇는 것 ,또는 행해질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볼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있는 것의 규정된 범위들과 양상들에 근거한 지각에 대한 자명한 사실들의 체계를 산출한다라고 쓰고있다. 그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발문을 보면 각각의 부분이 제자리를 갖는 구조화된 사회체-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치안이고, 즉 기존의 감각의 분배이고, 이러한 질서를 어지럽히는 ‘비부분’이 지기목소리를 내고 대화상대로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 즉, 감각의 재분배의 요구가 정치라고 쓰고있다. 어쨌든 왜 “감각" 이란 말을 쓰는 것인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중,... )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기존의 감각적 분배를 파괴하고 다른 종류의 분배로 변환시키는 것, 감성적인 것을 새롭게 분배하는 활동. 즉 감성적 혁명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감각, 감성이란 말을 굳이 쓰는가?
미학으로 번역되는 asthetic은 넓은 의미에서 “감각의 수용능력을 다루는 학”이다. (감각이 어떻게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우리의 지식과 행동 사고를 이루는가를 다루는 학 이란 얘기?) 그러나 우리는 이 asthetic을 좀 좁게 받아들여 주로 미적 판단과 미적 감수성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예술을 독자적 성찰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 활동으로 이해한다. 여기에는 예술을 다른 인간활동에서 분리시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수반된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문학을 비롯해 예술 전반을 다른 인간활동에서 분리시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으로 상정하는 것을 지난 두세기 동안에만 존재했던 근대적 현상으로 본다. 이러한 예술의 자율성과 구별하여 랑시에르는 “감성적 예술체제”를 주장하는데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랑시에르는 그것이 현실에서 분리된 언어의 자기목적주의(자율성)를 신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감성적 체제는 예술 작품에 고유한 감각적 존재양태를 요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 고유한 허구적 구성은 “상황을 철저하게 뒤집는다.” 다시말해 허구적 구성은 허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현됨으로써 삶을 잠식한다.
예술은 제한된 감성적 새 장(자율성이라는 닫힌 공간) 활동의 최대치를 갖는 자율성을 벗어나 “생산과 재생산 및 복종의 자연적 주기들에 순응하는 몸짓들과 리듬들의 기능성을 손상시킴으로써 감각적인 것의 지도를 바꿔놓는다.는 의미에서 현실로부터 자율적이지만 현실을 변형하는 허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랑시에르가 말하는 예술의 특이성, 다시말해 감성적 자율성(예술의 자율성이 아닌)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계의 낡은 감각적 분배를 파괴하고 다른 종류의 분배로 변환시킴으로써 삶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명한다. 이런 의미에서 랑시에르는 감성적 체제에서 예술로 식별되는 활동을 정치와 조우시킨다. 그에게 정치란 감성적인 것을 새롭게 분배하는 활동 즉 감성적 혁명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성적 분배에 참여함으로써 낡은 분배형태와 불일치하고 그와 맞서 싸우는 한에서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어떤 작품이 전통과 결별하여 모험적인 실험을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감성적 분배에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말해 감성적 체제에서는 시도되는 모든 새로운 실험들이 감성적 특이성을 지니 것이 아니다. 예술의 정치적 잠재성은 예술의 자율성이 아니라 감각(성)적 경험의 자율성에 의해 규정된다. 말레비치와 폴락은 그 비교가 된다. 말레비치는 새로운 분배법칙을 꿈꾸었고 오히려 폴락은 30년대 미국에서 사회적 실천 안에서 예술의 개입의 종말이었다. 즉 사회적 실천과 예술의 분리를 목표로 했다. 폴록은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미국 미술계는 냉전체제하에서 소련의 이데올로기나 맑스주의와 경쟁하기 윟서 폴록의 추상주의를 자유로운 체제하의 자율적으로 자유로운 예술로서 주목하고 그의 작품을 띄우기 위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의 작품 값이 엄청난 것은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성이란 기존의 지배적 담론체계에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거나 공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지배적 담론체계를 파열시켜 새로운 종류의 감성적 분배를 가져올 삶의 형식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것이 곧바로 정치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새로운 실험의 정치성이란 다른 삶의 실천 영역들과 상호 관계속에서 감각체계의 변화를 가져오느냐 여부에 따라 식별 될 수 있다.
동시에 예술의 정치성은 정치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예술과 동일시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는 자신의 미학이 있고 미학은 자신의 정치가 있다. 그래서 예술의 정치성은 특정 변혁주체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사회적 부정의를 고발하는 작품들에 국한되지않는다.
랑시에르는 19세기 루이 필립이 통치하던 시절 노동자 시인들의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오히려 열쇠는 -그리고 거기서 기존질서의 위기가 시작되는데- 인민의 삶을 ”감성화(esthetiser)“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시는 그것이 묘사하는 내용이나 요구하는 바 때문에 사회적인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런 시가 존재한다는 순수한 사실, 그 시가 구두수선공이나 소목장에게는 권리상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뮤즈에게 호소하는 순수한 도취 때문에 사회적으로 된다.이 시가 말하는 것은 비참도 아니요 노동자의 투쟁도 아닌, 오히려 인민이 가진 감성적 능력이다.”
예술작품의 감성적 재분배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객관적 정치현장에 대한 재현의 직접성이 아니다. 랑시에르는 참여예술이 갖는 문젯점을 지적하며 이를 분명히 한다. 참여예술은 이미 특정한 방식을 분배되어있는 정치세력의 장 안에서 하나의 세력을 재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글로 씌여질 수 있는 가능성의 장 안에 기입된 주체들의 관계를 재현하는데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어떤 주장을 피력하고자 글을 쓴다거나 귀족, 부르조아들이 아니라 노동자 혹은 서민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불충분하다.(새로운 감성의 변형을 이루어내는 작업을 해야한다. 말레비치의 수프레마티즘이 그런 것일까?) 물론 노동자에 대해 말 함으로써 글 쓰기의 장에 부재했던 자리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감성적 몫을 새롭게 분배했던 시기가 우리 문학사에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라는 특정주체를 재현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낡은 감성적 장에 불일치하는 문학적 사건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정치성에 대한 완고한 비평적 기준을 전제 함으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감성적 불일치를 구성하는 창조적 실천을 위축시켜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미학적 실험은 예술과 정치라는 서로 이종적인 것들을 결합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상상이다. 이런 점에서 랑시에르의 견해는 예술가를(소위 정치적인 예술이라는 구속으로부터)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새로운 구속을 부과하는 듯 보인다. 예술가는 기존의 방식으로 예술과 정치의 일치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정치로부터 해방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학적- 감성적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해 예술작품에 사회적 감성적 지도에 변화를 가져올 방식들을 상상하고 고민해야할 임무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은 정치적인 것에 구속된다.
키워드 :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성이란 기존의 지배적 담론체계에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거나 공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지배적 담론체계를 파열시켜 새로운 종류의 감성적 분배를 가져올 삶의 형식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예술작품은 허구적 구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 실현됨으로써 삶을 잠식한다.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실험의 정치성이란 다른 삶의 실천 영역들과 상호관계속에서 새로운 감각체계의 변화(기존의 감각의 분배를 파괴하고 새로운 분배)를 가져오(려고 시도하)느냐 여부에 따라 식별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의 감성적 재분배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객관적 정치현장에 대한 재현의 직접성이 아니다. 특정 계급에게 허락되어있지 않은 감각의 (재)분배(예컨대 노동자들이 가지고있으나 사회적으로 허럭되지않았던 감성적 능력을 돌려주는것)를 스스로 쟁취하도록하는 능력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미학적 실험은 예술과 정치라는 서로 이종적인 것들을 결합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상상이다.
여기까지 정리해서 올려보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