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마을에서 주민 전체가 제로웨이스트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20여 년의 꾸준한 실천으로, 기후 위기 속에서 전 세계에 큰 본보기가 되고 있다. 과연 마을 전체가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생활은 어떤지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가츠초의 생생한 현장으로 걸음을 향했다. 글과 사진 신시내 기자
제로웨이스트 마을에 가다 (상)
미국의 환경운동가 비 존슨이 1년간 생활하면서 모은 쓰레기가 고작 500㎖ 유리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와 같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삶의 방식을 ‘제로웨이스트(Zerowaste)’라고 부른다.
장을 볼 때 장바구니와 다회용기를 지참하고, 필요한 물품은 중고로 구하거나 포장이 생략된 것으로 구매하는 식으로 삶을 꾸려가는것이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가 지역사회 단위에서 이와 같은 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으론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지만,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보란 듯이 이를 현실화하고 있다. 주민 전체가 쓰레기 줄이기에 동참하는 마을이라니,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인구 1300명 마을의 도전]
‘제로웨이스트 마을’로 불리는 가미가츠초(上勝町)는 일본의 도쿠시마현 가쓰우라시에 위치한다. 면적109.63㎢에 인구 1347명, 714세대가 넓게 흩어져 살고 있다. 이곳은 면적의 88%가 삼림으로, 주로 ‘이로도리’라고 하는 채엽 사업과 목가공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제로웨이스트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관광객들의 방문도 꾸준하다.가미가츠초의 제로웨이스트생활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마을을 대표하는 고미 스테이션(ゴミステーション, 쓰레기 취합장)과 함께 있는 ‘호텔 와이’에 숙박하기로 했다. 이곳에 머물면 호텔·고미 스테이션 미니 투어와 로컬푸드 조식, 분리수거 체험 등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다카마쓰 공항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깊은 산속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크고 개성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물음표 모양의 건물을 보자 오늘의 일정을 향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이곳의 명물, 와인병 샹들리에가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십 개의 와인병을 엮어서 만든 조명이 이곳이 ‘제로웨이스트’ 호텔임을 실감케 한다.
체크인 과정에서 직원이 작은 덩어리가 얹어진 커터를 건넨다.
“호텔에 머물면서 사용할 비누예요. 쓸 만큼만 직접 잘라 가져가세요.”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자른 비누는 신문지로 곱게 싸고, 커피와 차도 마실 양을 물은 뒤 전용 용기에 담아주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면 내가 얼마만큼 물건을쓰고 음식을 먹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어깨가 무거워졌다.
[야외 소각에서 제로웨이스트 선언까지]
오후 4시가 되자 ‘스터디 와이’라고 하는 30분짜리 호텔 견학을 겸한 마을 소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날 호텔 숙박객은 총 2팀. 일본 가루이자와에서 온 한 가족이 더 있었다. 이들은 “제로웨이스트 호텔이 있다는 말에 궁금해서 와봤다”고 소개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만큼 친환경 교육이 방문 목적이었다.
투어는 마을의 쓰레기 처리 역사와 제로웨이스트 선언, 실천 과정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시골 마을 가미가츠초는 왜 제로웨이스트를 선택했을까. 이들의 선택에는 지역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이었던 가미가츠초는 부족한 예산, 열악한 자연환경 탓에 쓰레기 수거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1974년부터 공터에 큰 구멍을 파고 무작정 쓰레기를 쌓아 태우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일명노야끼(野焼き), 불법 야외 소각이었다.
갈수록 가전, 자동차 같이 태울 수 없는 대형 쓰레기가 쌓이고, 무분별하게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에서 악취도 나는 등 문제는 심각해졌지만,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20년 넘게 방치하다가 이윽고 1998년 야외 소각장을 폐쇄하고 소형 소각로 2대를 설치하게 됐다. 그러나 이 소각로는 3년도 사용하지 못한 채 ‘다이옥신파동’으로 인해 폐기되면서 결국 쓰레기 처리의 갈림길에 섰다.
이때 제시된 선택지는 2가지. 연간 3000만 엔(한화약 3억 원)을 들여 대도시 업체를 통해 쓰레기 수거를 진행하거나 마을에서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고, 가능한 것은 자원화해 처리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다.
이때 마을의 선택은 후자였다. 번거로운 방식이었지만 마을의 예산을 고려했을 때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 결국 과도기를 거쳐 2001년에 처음 35가지 분류로 분리수거를 시작하고, 2003년에는 일본 최초로 마을의 쓰레기 배출량 0을 목표로 하는 ‘2020년 제로웨이스트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반발도 많았고, 주민 간의 갈등도 깊어졌지만 미래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제로웨이스트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지구를 보호하는 인재를 키운다.
② 쓰레기 재활용, 재자원화를 통해 2020년까지 소각, 매립하는 쓰레기 줄이기에 최선을 다한다.
③ 지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 세계에 동료를 늘린다.
[43종의 분류, 자원화가 포인트]
지금은 마을의 쓰레기를 총 43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까지 45종이었으나 2023년 전 세계적인 친환경 열풍으로 인해 기업의 소재 사용 문제가 개선된 결과 자원 분류를 2가지 줄일 수 있게 됐다.
이제 설명을 마치고 고미 스테이션을 둘러볼 차례.
호텔의 물음표 모양을 따라 꾸려진 고미 스테이션에는 종이, 비닐, 플라스틱, 병 등의 쓰레기를 색상, 오염, 금속 유무 등의 기준에 맞춰 배출할 수 있게 항목 안내판과 바구니가 진열되어 있었다. 안내판에는 입·출(入·出)이라는 한자와 금액이 각각 쓰여 있는데, 쓰레기가 자원화 가능하면 ‘입’으로, 매립이나소각 등의 처리비용이 소요되면 ‘출’로 구분하고 있다고 직원이 설명했다.
종이, 금속 등은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어 꼭 정확한 분류를 해야 한다고. 직원은 “사실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집에서는 큰 분류로 가져와서 이곳에서 물어보며 분류해버린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은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적으면 2~3주에 한 번 고미 스테이션을 방문해 쓰레기를 버린다.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고령의 주민들을 위해 처리장에 연락하면 방문 수거도 진행한다.
종이 쓰레기는종류를 불문하고 자원화할 수 있어 별도의 포인트제도를 운영해 배출을 독려하고 있다.이렇게 꼼꼼한 관리로 마을이 한 해 동안 쓰레기 자원화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180만 엔(한화 약 1800만원). 쓰레기 처리비용으로는 750만 엔(한화 약 7500만 원)이 소모된다. 이를 계산하면 570만 엔(한화 약5700만 원) 정도를 실제 쓰레기 처리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초기 예측했던 수거 업체 이용 금액인 3000만 엔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쓰레기 배출량도 일본 평균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본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쓰레기는 약 918g, 가미가츠초는 한 사람이 약 550g을 배출하고 있어 단순히 쓰레기를 잘 분류해 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쓰레기 배출 감소에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