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은 머리맡에 남아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지난 3월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유언장 내용의 일부다. 40년 전 법정 스님에게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배달했던 소년 강모군은 어느덧 마흔아홉의 중년이 됐다. 3월 31일 강씨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덕진 스님으로부터 법정 스님이 남긴 ‘머리맡의 책’ 6권을 받았다. ‘머리맡의 책’이란 법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법정의 영혼을 위로한 책이란 뜻이다. 그 책은 ‘월든’(헨리 소로), ‘선시’(석지현 옮김), ‘선학의 황금시대’(오경웅), ‘벽암록(碧巖錄)’(안동림 역주), ‘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의 위대한 모색’(르네 젤러), ‘
예언자’(칼릴 지브란)이다. 책 표지사진은 법정 스님이 남긴 실제 책이다.
월든(Walden) | 물질문명 폐해에 대한 강력한 경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1817~1862)의 대표작. ‘월든’은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로는 미국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뒤 형과 함께 사설 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작가이자 사상가인 랄프 W 에머슨(Ralph W
Emerson)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틈틈이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소로는 1845년 3월부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해 같은 해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그곳에서 홀로 지냈다. 월든 호숫가에서 2년을 지내며 기록한 것이 ‘월든’이다. ‘숲속의 생활(Life in the Woods)’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특히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얽매임 없는 자유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고급 가구, 맛있는 요리, 아니면 그리스식이나 고딕식 집 따위를 얻는 일에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그렇다.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게 하지 말라. 간소화하라, 간소화하라.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으라. 백 가지 요리는 다섯 가지로 줄이라. 이런 비율로 다른 일도 줄이라.’
선시(禪詩) | 이별·회고 등 종류별 총 255편 작품 소개
언어를 거부하는 ‘선’과 언어를 전제로 하는 ‘시’를 통해 완성된 선시를 감상하는 법을 수록한 책. 석지현 스님이 우리말로 옮겼다. 선미시, 산정시, 이별시, 운수시, 회고시, 선지시, 심전시, 격외시, 공안시, 오도시, 임종시의 형태로 선시를 분류해서 총 255편의 작품과 감상을 실었다.
오솔길은(失題其二) (추사 김정희)오솔길은 깊고 먼 곳으로 나 있고/칡덩굴 처마에 안개구름 쌓이네/산사람 저 홀로 대작할 적에/꽃잎이 날아가다 술잔과 마주치네
선학의 황금시대 | 대만 최고 지성 오경웅이 쓴 선종 이야기
대만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받는 오경웅(吳經熊)이 1967년에 영어로 쓴 책이다. 오경웅의 영어 이름은 John Wu, 원제는 The Golden Age of Zen. 서구의 지성들은 이 책을 읽고 선불교에 눈을 떴다고 한다. 1978년에
서돈각의 번역으로 한국어 초판이 나왔다. 법정 스님은 1978년판 ‘선학의 황금시대’를 읽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젊은 시인들이 이 책을 읽고 1980년대 말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시를 쓰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책은 선종의 기원과 발전을 초조대사 달마에서부터 6조 혜능까지는 간단히 지나가고 구체적으로 혜능 때부터 시작된 선종에 대해 학파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위앙종, 조동종, 임제종, 운문종, 법안종의 개조와 그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불교 특히 선종 자체가 그렇지만 노자, 장자의 사상 자체에 격의된 부분이 많아 설명에 도덕경과 장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알기 쉽게 도표로 계보도를 그려 놓아 이해하기 쉽다. 선시도 간간이 추가해서 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벽암록(碧巖錄) | 중국 전통 선(禪)의 세계로
중국 전통 선(禪)의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책. 안동림이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과 풍부한 문학적 상징을 통해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벽암록’은 부처의 경지는 문자나 말로 전해질 수 없다는 불립문자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언어에 대한 철저한 불신에서 출발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 일체의 지견이 끊어진 은산철벽(銀山鐵壁)에서 이토록 언어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역설, 이것이 바로 불교, 선종, 그리고 ‘벽암록’의 세계이다. 선의 종조(宗祖)인 달마대사와 양나라 무제(武帝)의 문답을 제1칙(則)으로 100칙까지의 내용을 소개했다. 무(無)의 궁극적 표상과 도(道)의 완성을 보여주는 선사(禪師)들의 행적과 문답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의 위대한 모색 | 르네 젤러가 쓴 평전으로 오래전 절판
르네 젤러가 쓴 생텍쥐페리의 평전이다. 안응렬이 우리말로 번역해 1980년에 홍성사에서 나왔다. 절판된 지 오래되어 중고서점에서도 구하기 어렵다. 작가 소개와 작가 연보를 비롯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실었다. ‘남방우편기’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전시 조종사’ ‘성채’ ‘
어린 왕자’에 대한 젤러의 해설과 감상을 엿볼 수 있다.
예언자 | 레바논 태생 칼릴 지브란, 진리를 말하다 저자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1883~1931)은 레바논 태생의 시인·소설가·화가. 열두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이슬람의 정신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칼릴 지브란은 열다섯 살에 ‘예언자(The Prophet)’를 처음 썼다. 그는 초고를 20여년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수없이 다듬고 고쳤다. 모국어인 아랍어로도 수없이 고쳤고 영어로도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1923년, 미국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나서도 4년 동안 다섯 번이나 고쳐 쓴 뒤에야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칼릴 지브란이 이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언자’는 주인공 알무스타파(Almustafa)라는 예언자를 통해 오팔리즈(오르팰리스, 오르팔레세)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진리를 전파한다. 이는 비록 알무스타파라는 주인공의 입을 통하는 것이지만, 기실은 칼릴 지브란 자신의 사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하여 (류시화 번역, 열림원)그러자 가슴에 아이를 안은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활 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첫댓글 좋은 책과 자료가 너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