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사람들이 묻는다. 어디서 사느냐고? 도심 가운데 8층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대개 놀랜다. 그것은 내가 입고 있는 생활 한복과 촌사람 같은 이미지 때문에 짐짓 교외의 한옥이나 별장 같은 그런 곳에서 한가하게 살리라고 넘겨짚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아파트 예찬론자다. 그것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그 시간까지 그러할 것이다. 왜냐? 아파트는 설명이 더 이상 필요 없이 완벽한 섬이기 때문이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초인종을 눌러도 가만히 침묵한 채 있으면 사람이 없는 것으로 여겨 돌아가고 전화마저 안 받으면 집에 사람이 없을 것이라 단정하고 전화를 끊기 때문이다.
“내 집은 진정 숨어 살기 좋아라. 안팎 두루두루 세상 티 끝 멀리 했네. 풀밭 거닐다가 길이 절로 되었구나. 구름을 바라보다 이웃으로 삼았나니 노래 소리 돕기에는 새가 있는데, 법의 뜻을 들으려니 사람이 없네. 어이, 오늘의 이 ‘사바’ 세계여. 너는 몇 해를 한 봄으로 삼으려나.“
굴원의 한산시 4에 나오는 것처럼 숨어 살기 좋은 곳이자 너무 이른 나이인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글 활자중독증’에 걸려서 ‘문자조립공’으로 살아가기에 완벽한 우주인 ‘아파트‘ 그 아파트에 대한 의견은 각양각색인데 내게는 아직 유효한 곳이 바로 아파트이다. 나는 오늘도 이 아파트 8층에서 불이 다 꺼진 앞 동 아파트 너머 마음속으로만 보이는 모악산을 넘어 펼쳐진 조선의 산천을 떠올리며 온갖 상념에 잠 못 들고 있다.
“내 마음은 가을달인가. 내 마음은 맑은 물인가.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나니 어떻게 내게 말하라 하는가?“
누군가의 시 구절과 같은 내게 고마운 사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가 한글에 흠뻑 빠져 활자중독증에 걸려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