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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흔적 중에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이 고인돌이 아닐까 싶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상에 드러난 커다란 바위 때문에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해서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아래 초를 놓고 기원을 올리는 곳도 있을 정도이다. 오늘은 고인돌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필자는 전공이 청동기시대라 고인돌과 관련된 논문을 몇 편 발표를 했다. 그런데, 연구를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게 바로 고인돌이다.
우리가 발굴 현장에서 조사하는 유구(옛날 사람들이 남긴 흔적 중 사람이 들고 움직일 수 없는 것. 예를 들어 주거지나 무덤 등)의 이름은 그것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과 모양을 표현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덩이, 돌무지 등 모양을 나타내는 용어는 사실 성격을 명확하게 알 수 없을 때 불가피하게 사용한다.
고인돌은 한자어로 지석묘(支石墓)라고 한다. 지석(支石)은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을 받치는 돌, 괸돌이다. 즉 고인돌은 덮개돌을 괸돌로 받치고 있는 유구를 말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자가 고인돌을 한자어로 지석묘라고 하면서 돌을 받친 무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고인돌이 무덤과 관련된 시설이 맞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덤방이 없는 경우도 많아 모두 포함하여 통용되기는 어렵다. 아무튼 고인돌은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지석묘는 성격을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고인돌의 구조는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지하에 죽은 자의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이 있고, 그 위에 괸돌(지석)이 커다란 상석을 받치는 구조이다. 강화도에 많이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지하에 무덤방이 있지 않고 납작한 괸돌을 세워 지상에 사각형으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올린 구조이다. 탁자식 고인돌은 괸돌로 둘러싸인 공간 자체가 무덤방이 되는 것이다. 탁자식이 북한 지역에 많아 예전에는 북방식 고인돌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 반대되는 개념이 바둑판식 고인돌인데 탁자식의 덮개돌이 납작한 반면 바둑판식은 괸돌이 작고 모양이 둥글며 그 위의 덮개돌이 두텁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사가 증가하면서 바둑판식 고인돌의 덮개돌을 들어내고 지하를 파 보면 무덤방이 없는 사례가 많이 확인된다. 형태는 고인돌이지만 묘(墓)는 무덤을 뜻하기 때문에 지석묘는 아닌 것이된다. 이때의 고인돌은 이 일대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인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안내판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우리나라 전국의 논밭이나 산의 아래쪽에 이렇게 고인돌과 같이 생긴 돌이 있다. 울산에는 곳곳에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그 중 11곳의 고인돌이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특히 언양읍에 있는 서부리지석묘는 길이가 8.5m, 너비가 5.3m인데, 영남지역에서 규모로만 본다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종종 고인돌이라고 신고가 들어와 관련 문화재과 공무원과 필자도 현장을 나가서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다. 신고한 분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중요한 유적을 찾았고, 고인돌이 잘 보존될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니 매우 의미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라도 눈으로 하는 관찰만으로는 진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축조한 고인돌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돌이 이동된 것이 명확하게 나타나 고인돌이 아닌 것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100% 고인돌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 돌을 들어 올려 지하에 무덤방이 있는지 또, 고인돌이 안내판과 같은 기능으로 놓여있다면 그 주변 지역의 땅 밑을 모두 조사해 봐야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땅을 파 보는 건 불법이며, 고인돌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한 조사는 발굴허가 조차도 받을 수 없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신고한 분에게 그렇게 사실 그대로, 때로는 고인돌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tv 모 프로그램에서 평생을 구석기 채집에 애쓴 분의 수집품을 구석기 전공자가 직접 관찰한 후 구석기가 아니라 일반 돌이라고 하여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고인돌이라고 신고한 분의 표정에 오버랩된다. 하지만 일반인의 우연한 신고로 엄청난 유적이 발견되는 사례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사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필자와 같은 입장에서는 고마운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고인돌인지 잘 알 수 없더라도 고인돌이라고 생각하고 보존·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지하에 무덤방이 없더라도 화장한 인골을 고인돌 주변에 뿌렸다면 역시 무덤의 역할을 한 것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집터에 비해 무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데 최근에는 화장과 같은 장법이 많이 유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산성토양이 강해 뼈가 잘 남아있지 않아 성격을 밝히기가 더 어렵다.
무릇 발굴조사는 안 하는 게 원칙이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발굴조사는 개발에 전제된 구제조사이다. 즉 도로를 깔거나 공단을 조성할 때 확인되는 유적을 불가피하게 조사하고 그 자리에 예정대로 공사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발굴 자체가 파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발굴조사는 지금보다 훨씬 후대에 더 좋은 인력,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기술로 행해져야 한다.
고인돌이 맞다 아니다 논쟁 보다 최근에 돌이 이동한 흔적이 없다면 고인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보호하자. 2~3천년 전 우리 조상의 손길로 다듬고 옮겼던 돌이라고 생각하면서 만져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