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불가리아 유적답사 여행에서 가장 큰 성과는 불가리아 초대 왕인 구부라트 왕의 유물을 접한 것이다. 구부라트 왕은 610년부터 613년까지의 기간동안 2개의 주요 불가르아인의 씨족인 쿠트릴구르(Kutrigur) 와 우티구르(Utigur)를 통일하여 온오구르를 만든 왕이다.
구리 구르 그르 소리가 나면 골(짜기)의 다른 발음이고 마을 이름일 때는 고을이고 국가 이름일 때는 高麗로 음차한다. 이것을 알면 고구려 마을 경기도 구리가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몽골은 몽구리이고 일본인들은 모쿠리라고 불렀다. 터키인들은 한국은 뵈쿠리 몽골은 모쿠리라 했는데 사실 같은 말이다. 몽은 몽조리의 몽으로 주몽(中몽~다 명중)의 高씨 쿠리 후손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 쿠리가 위로, 조금 서쪽으로 간 것이 위구르이고 이 구리 족이 카프카스까지 가서 둘로 갈라졌는데 윗말의 웃 쿠리(Utigur)와 제사권을 이어 받아 굿 드리는 쿠리(Kutrigur)일 것이다. 최대한 간단히 썼지만 이 언어학적 견해는 비교언어학자라면 수긍이 가게 고증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구부라트 왕이 통일한 온오고르는 우리가 온 누리 할 때 온과 구리가 결합한 말이다. 현대 한자말로 하면 전 고려(전체 고구려)이다. 구부라트 칸의 아들이 지금의 불가리아로 이주 했다.
여기에 구부라트칸의 유물로 그가 고구려나 부여인인 근거를 댄다.
구부라트 칸의 유물집이다. 이들은 칸을 한으로 발음한다. 왕의 환두대도를 보라. 이런 보검을 접해보지 않은 서양의 학자들은 비잔티움(로마) 선물인 줄 안다.
왕의 무덤에서 나온 동경이다. 이게 무령왕능이 아닌가 정신이 아득하다. 삼종신기의 하나이며 천부인의 하나이다. 왕의 상징이다.
황금보검도 나왔다. 신라 황금보검과 무늬만 다르다.
좌~발해 삼채 호리병. 우~칸의 굽 높은 삼채 접시.
목걸이도 우의 발해 것과 비슷하다.
허리띠도 발해의 것과 비슷하다. 아래 발해 것이 조금 더 발전해 있다.
칸의 태극 귀고리.
일본은 몽고군이 가미카제로 상륙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큐슈 곳곳에 상륙 흔적을 보전하며 치를 떤다. 모쿠리와 고쿠리의 만행이라 제목이 붙어 있다.
박물관에서 발견한 삼족오의 변형이다. 삼족오는 새의 상징인데 꼬리로 해를 감싸고 있다. 원래 중족이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불가리아 초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인골을 복원한 것이다. 한국인의 얼굴이다. 이들이 노예로 부렸던 슬라브 종족과 혼합된 불가리아인들이 싫어해 눈에 띠지 않는 구석에 있었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 된 보야나 성당이다. 보야는 왕이나 귀족에 붙이는 칭호이다. 이 성당은 보야들을 위한 성당이다. 보야는 부여의 왕의 성인 부여씨가 변한 말이다.
보야나 성당을 세운 왕이다. 동양인이다.
첫댓글 귀한 자료 잘 봅니다. 유물 유적도 반갑고, 특히 구리 구르 그르의 어원이
같다는 것은 간과하기 쉬운데 우리 역사가 미친 강역을 짐작하기에 소중한
언어입니다. 상고시대 구리국(신시개천)과도 연관이 있어보입니다. 반도에
갖혀 우리 관련 역사를 지금이라도 접하게 되니 다행이 아닐수 없습니다.
마고 삼성조의 역사가 유라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공임을 유물 유적
문장 등이 우리 역사코드로 귀결이 되니 우리 상고사의 진위여부는 사족에
불과하네요. 순한님 덕분에 동유럽 역사의 뿌리를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
답사하시면서 알짜베기만 찾아서 가져 오셨네요,
역시 깊은 안목을 가지고 가야 보이는 군요,
저는 금으로 장식된 유물에 주목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특히 경상도 지방에서 나온 금관과 금제품들에 새겨진 깨알 같은 금방울 장식,
위 불가리아의 방식과 완벽할 만큼 같군요.
이른바 누금방식이라고 하잖아요,
저것은 같은 정신문화를 갖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봐요...
정말 수수께기 입니다.
서기6백년대이면 백제가 아직 건재한 때인데...
그리고 황금보검도...분포도를 보면 경상도->중앙아시아->불가리아 로 이어지는데...
이것도 수수께기입니다...
박물관에 모셔진 우리 선조얼굴의 동양인 흉상,
충격중의 충격입니다...
결국 어떠한 모습으로 든지 불가리아와 그 동쪽 끝 우리와 같은 역사를 이어갔다는 것인데요...
바다로 교류했는지, 아니면 초원으로 개척해서 정착한 것인지...
머리속이 쥐가 날 지경입니다...
유물도 같고, 사람모습도 같다...
예전부터 전 서울대 교수 신용하 선생등이 불가리아와 우리와의 친연성을 꾸준히 제기했는데요,
그 분은 특히 부여족이 가서 건설한 나라가 불가리아라고 하잖아요...
어쨌든 유물과 인물이 이것을 명증하고 있네요...
불가리아 역사책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궁금하군요...
나중에 이 자료를 책쓸때 활용해도 되겠는지요? ^^
@짚신할미 자료로 쓰세요.
흉노족 일파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세웠던 나라가 훈가리 불가리
귀한 자료 감사히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