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표현을 바꿔야겠다. 데뷔 초기란 표현이 선배나 팬들이 보기엔 우스울 것이다. 이제 햇병아리 주제에, 아직도 데뷔 초년병인 주제에 벌써 옛날 일처럼 말하니….
방송사 공채 직후 1년여의 전속 기간으로 고쳐야겠다. 공채 탤런트가 된 뒤엔 모두 큰 꿈을 갖는다. 마치 곧 스타가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데는 절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곧바로, 그것도 사정없이 깨져버린다.
일단 할 일이 없다. 무슨 역이건 맡겨만 주면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역이 없다. 기껏 찾아오는 배역이라고 해 봐야 ‘시체의 발’ 같은 것이다. 행인 역도 엑스트라 몫인 때문인지 주어지지 않는다. 놀고먹는 날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꿈은 반비례로 급속도로 사라진다.
답답한 생활과 함께 흔히 특채 탤런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불만이 아니다. 시샘이다. 낙담한 시선으로 보면 이상하게 특채 탤런트들만 중용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자기 방송사 출신의 공채 탤런트들은 홀대하며 특채에겐 많은 기회를 주는 듯한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다.
‘어디로 옮겨 볼까’라는 궁리를 해봐도 소용없다. 채용 뒤 1년동안 전속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그때 결코 좌절하지 않는, 오기 짱짱한 사람들이 품는 생각이 있다. “전속 기간만 끝나봐라. 다른 곳에 가서 보란듯이 성공할테니까.”
KBS 제3기 슈퍼탤런트 동기생들이 오랜 기간 동안 마땅한 역을 맡지 못해 좌절한데 반해 내겐 많은 행운이 따랐다.
나는 햇병아리 시절에 벌써 <킬리만자로의 표범> <살다보면> 등의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역을 맡아 출연했다. 당장 최수종 선배와 같은 스타덤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결코 불만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겐 더 큰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98년 가을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어수선 감독님(이름과 달리 절대 어수선한 분이 아니시다)이 나를 찾았다. 하느님과 동격인 드라마 PD께서 부르자 나는 당장 제작국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때는 <대추나무 사랑걸렸네>가 출연진을 대거 교체하던 시기였기에 ‘혹시 내게도 행운이?’라는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역시 오디션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일반적인 오디션이라면 ‘대본을 주며 대사를 읽어보라’는 등 이것저것 주문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 감독님께선 아무런 주문도 하지 않은 채 얼굴만 한 차례 쓰윽 보고 말았다. 그리곤 “됐어!”라는 딱 한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크게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싱겁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X인가. 나는 과연 연기자로서 자격미달인가.
그런데 며칠 있다가 다시 연락이 왔다. “제작국으로 잠깐 와라.” 이번엔 또 뭐야. 사무실에 갔더니 감독님께서 곧장 작가 선생님(양근승씨)에게 데려갔다. 그리곤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해서 나는 주요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고정 배역을 맡게 됐다. 박인환 선생님의 아들 배역이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고정 출연을 전후해서 나는 많은 드라마에 오디션을 봤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탈락.
모두 내 실력 부족 탓이겠지만 사람이 어디 그러나. 주변 탓을 하게 되지…. 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든든한 매니저가 없어서 그러나’라는 등의 이유를 떠올렸다. 그래서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하기 위해선 매니저 계약을 맺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때 바로 한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다. 송윤아 선배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황경수란 분이었다. 나는 한번 만나보고서 바로 결정을 내렸다. 역시 인연이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해 늦가을 황매니저로부터 “MBC에 한번 가보자”는 연락이 왔다. 바로 달려갔다. KBS 공채 출신이지만 타 방송사로 활동영역을 넓혀 보고 싶다는 욕심을 줄곧 갖고 있던 터에 MBC를 노크해보자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MBC에서 만난 분은 신호균 PD였다. 그때 새주말극 <남의 속도 모르고> 연출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남자 새얼굴을 찾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황매니저가 신 PD님께 나를 소개시키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잠깐 경위 설명을 듣고 신 PD님을 만난 나는 잔뜩 긴장했다. 송윤아 선배의 상대라는, 매우 큰 배역이었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남의 식구 그것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를 타 방송사에서 중용할 이유가 없다고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다.
신 감독님의 반응도 예상했던 대로였다. 대본을 읽어보자,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자는 둥의 일반적인 오디션 과정을 치러보자는 제안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하는데 의미를 두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MBC TV의 <남의 속도 모르고>는 주말 연속극이었기 때문에 꼭 출연하고 싶었던 드라마였다. 타 방송사에 처음 출연하는 드라마가 주말 연속극이라면 그보다 나은 행운이 또 있을까. 그때까지 내가 주요 배역으로 고정 출연했던 드라마는 주말 단막극 <대추나무 사랑걸렸네>가 유일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큰 기대를 안고 <남의 속도 모르고>의 신호균 PD를 만났는데 반응이 ‘썰렁’ 그 자체였다.
낙담한 채 귀가했다. 며칠 뒤 깜짝 놀랄 소식이 매니저로부터 왔다. “<남의 속도 모르고>에서 송윤아의 상대역으로 확정됐다”는 연락이었다. 거의 기절할 뻘 했다. KBS 탤런트 시험에 합격한 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감격적인’ 뉴스였다.
케이블 TV의 쇼핑 호스트인 송윤아 선배와 사랑의 곡절을 나누는 트럭 운전사 겸 대학생 역이 내게 맡겨진 역이었다. 흥분 속에서 작품 준비를 한 지 2주일도 채 안돼 촬영이 시작됐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캐릭터 분석을 했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론 자신감이 있었다.
첫 촬영은 경부고속도로 마음의 광장 휴게실과 그 인근에서 펼쳐졌다. 송윤아 선배를 우연히 만나 사랑의 계기를 만드는 중요한 신이었다. 트럭 운전사이기 때문에 가죽 점퍼를 입고, 하지만 방송사 쇼핑 호스트처럼 세련된 여자가 한 눈에 빠질 만한 매력을 풍기는 분위기(물론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에 불과했지만)를 물씬 풍기며 현장에 나타났다.
‘으악’ 그 다음부턴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의 첫 촬영은 경부고속도로 마음의 광장 휴게실 근처에서 진행됐다. 결과부터 말하면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이유는 터프함의 종류 때문이었다.
송윤아 선배를 처음 만나 터프한 매력을 물씬 풍겨 마음을 사로잡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촬영 전부터 캐릭터 연구를 거듭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실. 캔 커피를 송윤아 선배에게 내주는 장면에서부터 난리가 났다. ‘터프하게’ 캔 커피를 건네주는데 신호균 PD 에겐 영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몇번 NG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너 최민수 알지! 민수처럼 하란 말이야!”라는 호통이 떨어졌다. ‘그래! 민수형처럼 하자’라며 어깨와 눈에 힘을 잔뜩 넣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곤 카메라 앞에서 씩씩하게 “자! 커피!”
다시 호통이 떨어졌다. “그게 최민수냐? 얼치기 양아치이지” 이젠 아예 신PD께서 “잠시 휴식”을 외치며 카메라를 철수시켰다.
이때 옆에 있던 매니저가 한 술 더 떴다. 담배 한대를 권하며 어깨를 다독이더니 “정철아! 감독님이 하라는대로 할 필요없다. 언제적 최민수인데 지금 최민수처럼 연기하냐. 그러면 팬들이 싫어하니 터프하더라도 점잖게 터프해야 된다. 알았지!”라고 충고했다.
점잖게 터프하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최민수식 터프, 양아치식 터프, 점잖은 터프 등등 터프함의 종류가 왜 이렇게 많아.
머리까지 복잡해지니 연기가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는가. 1시간도 안 걸릴 촬영을 무려 6시간 만에 마쳤다.
그때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연기의 험난함을. 첫 촬영에서 이 모양이니 앞으로 50회, 6개월을 어떻게 버티지?
<남의 속도 모르고> 덕택에 나는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달 말 촬영이 없는 짬을 내 서울 시내 롯데백화점을 찾았다. 구두를 하나 사기 위해서였다. 그때의 동행은 코디누나였다. 캐주얼화를 고르다 결국 마음에 드는 게 없어 1시간만에 귀가했다.
그 다음에 일이 생겼다. 매니저로부터 급한 연락이 온 것이다. “PC통신에 네가 시내 백화점에서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내용이 떠 난리났다. 어떻게 된 일이냐. 벌써 스캔들 생긴 것 아니냐”는 질문 겸 질책이었다. 불과 몇 시간도 안돼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난 연말에는 심야에 동대문 두산타워를 찾았다. 여러 스태프와 동행했는데 몇몇 가게에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T셔츠를 공짜로 쥐어주는게 아닌가. 저마다 “TV에서 잘 보고 있다”는 따뜻한 인사말과 함께 T셔츠를 주는 모습에 나는 감동했다.
그리고 최근엔 내 팬클럽까지 생겼다. 드라마 방송 초반부터 PC통신에 나에 대한 좋은 의견을 꾸준히 올리던 분들이 모여 마침내 팬클럽까지 만든 것이다. 말로만 듣던 팬클럽이 생기자 ‘이제 이런저런 팬들과 함께 가야 되는구나’라는 등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 MBC TV의 유명 오락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도 출연하게 됐는데 공연한 사람들이 조성모 최진영 터보 등이었다. 이들과 함께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다니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