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韓江이 한강漢江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내가 한국의 10대 강 첫 번째 강 금강보도 답사에 나선 것은 2000년 9월이었다.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금강의 발원지인 신무산의 뜸봉샘에서부터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 신탄진, 세종시(그 다시 연기군), 공주, 부여, 논산, 익산을 지나 서천과 군산 사이를 가로지른 금강의 하구둑까지 천 리 길을 열 나흘간에 걸쳐 걸었다. 그다음, 섬진강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에서 광양 망덕포구까지 아흐레에 걸쳐 걷고, 우리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태백의 검용소에서 김포의 보구곶리까지 열엿새에 걸쳐 걸었다. 태백의 천의봉 너덜샘에서 부산의 낙동강 하구둑까지 낙동강 천 삼백리를 열엿새에 걸쳐 걷고, 영산강을 담양 용소에서 목포 영산강 하구둑까지 닷새에 걸쳐 걸은 뒤 각각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오천년 역사상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따라 걸었고, 강에 대한 책을 쓴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지금은 사라진 출판사 생각의 나무와 민음사, 가람기획, 창해 출판사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때 우리 강 따라 걷기 <금강 401KM>에 김지하 선생님이 발문을 써 주셨다.
금강 발문
발과 글 / 김지하
신정일 형의 글을 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의 산과 들, 강과 바다, 시간적 과거들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소망들을 책상물림이나 머리로 쥐어짜는 억지글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책상물림이나 짱구들의 글은 들뢰즈의 표현대로 하면 철저하게 나무 모양이다. 그래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모양이거나 엔타시스(배흘림) 모양이다. 인류는 동서를 막론하고 이런 나무 모양의 글을 써왔고, 또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문화사의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들뢰즈가 제시하는 새로운 글과 문화, 생각의 모양은 ‘리졸’이고 ‘뿌리 모양’이다. 발은 사람의 리졸, 뿌리이기 때문이다. 발은 오장육부와 모든 기능의 압축이면서도 천대받을 정도로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그럼에도 상상도, 건강도 발로부터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정일 형의 글이 실제로 리졸이라는 것이다. 글 전편이 분산, 해체적이고 감각 중심의 글임에도 그 각각의 부분들 속에 어떤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그 책만의 주제와 중심에 대한 탈중심적인 집중이 미묘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온몸이나 뇌기능 등에 대한 발의 관계와 비슷하다. 어쩌면 우연성, 기습, 통계적이거나 비유클리드적인 카오스적 성질이 글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바로 그것이다.
생각해보니 그와의 만남 자체가 그랬다. 10년 전이던가 그 이후던가, 바람 부는 날 서울의 양천구 목동에 있는 파리공원이었다. 벤치에 앉아있는데 웬 젊은이가 앞에 와 인사한다. 누구냐니까 황토현문화연구회의 신 아무개라고 한다. 동학과 전라도를 앞세우는데 서먹서먹할 까닭이 없었다. 그날 우리는 김개남, 손화중, 전봉준에 관하여 혁명과 봉기의 관계나, 이념이나, 수양이나, 조직이 혁명에서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전라도의 동백사업이 왜 문제투성이인지에 대해서 격의 없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 주고받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발언이나 주장이 그때 이후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그 토막토막이 모두 다 항구적인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애당초부터 그가 발로 탐구하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불변성이다 변화무쌍하게 각종 토막정보, 단절적, 분산적인 첩보들로 가득 찬〈발글〉임에도 그렇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의 이번 책도 그러한 발글의 특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철저히 리졸, 뿌리 모양으로 이루어진 그의 글은 그가 수많은 민족민중사상가들이 유령이 돼버린 지금, 가장 현장적이고 집요한 민족민중사상가로서 현존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렇다. 나는 그를 ‘발로 쓰는 민족민중사상가’라고 부른다.
그의 발, 그의 리졸은 그의 뇌수의 총화인 글 속에서 도리어 최고의 영역으로 모셔져 있다. 그리고 이 점이 그의 해체분산적 탈중심의 글속에 이상하게 움직이는 산 중심을 형성하는 이유인 것 같다.
“모셔가세, 모셔가세, 지하장군 모셔가세.”
그의 인용 속의 지하장군처럼 그는 그와 똑같이 발로 말하고, 발로 대지 위에 민중의 내면성의 소망의 삶을 글로 쓴 대중처럼 ‘모셔짐’ ‘모심’을 쓰고 있다.
잘 읽어보면 그는 자기의 발이 도달한 산천 도처에서, 금강의 여러 구비에서 울고 웃는다. 그 웃음과 울음이 이미 그와 그 산천의 신령들과 그 산천을 걸어간 민중의 모신 바 신령들을 똑같이 모시고 있음을 증거한다.
이 모심이 발로 이루어지고 발글로서 표현되고 있는 동안에 신정일 형은 그의 소망인 모악산母岳山 꼭대기에 혈을 박은 쇠붙이를 뽑아내고, 정여립의 제비산 대동大同정신을 역사 속에 실현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주라는 아름답고 풍요한 고향을 가진 그가 유목민으로서 삼남 일대의 남조선을 걸어다니는 민중사상가로서의 실천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한, 우리가 지향하는 고조선의 원시반본原始返本, 즉 ‘정착적 노마디즘’을 반드시 실현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아니, 바로 그러한 그의 삶 전체가 새로운 민중의 완전통일사회와 대중의 새문명에 대한 발이요, 리졸임을 확신한다.
단기 4334․서기 2001년
3월 25일
김지하 모심
4대 강 사업 이후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갔던 대한민국의 5대강이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새로운 형태로 주목 받고 있다. 한강漢江의 기적이 새로운 한강의 기적으로, 특히 영산강 부근에서 나고 자란 한강이 한강으로 옮겨 살면서 이룩한 삶의 기록이 노벨상 수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말과 한강이라는 소설가가 서서히 서서히 알려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적을 일구었으니, 이 또한 한강의 기적이 아닌가?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강들이 더 널리 알려지고 산티아고나 실크로드만 걷지 말고 우리나라 강 길을 걷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싶다.
한강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나라 역사의 강을 천천히 걸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놀고 싶지 않은가?
2024년 10월 11일,
첫댓글 글쿠만요 오늘 옥인동 사는 친구 따라 한강의 작은 서점을 봤는데 불이 꺼져 있는 그 책방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보고도 사진 찍겠냐는 친구에게 고개 흔들고 돌아왔네요. 시류라니 참~!
남들이 다 하는짖 따라 하고프지는 않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