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월요일(마태10,34-11,1)
성령의 칼
칼은 좋은 것입니까? 해로운 것입니까? 칼은 꼭 필요한 것이기에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에 쓰지 않고 엉뚱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좋은 것이지만 잘못 쓰임을 받으면 좋지 않은 것이 되고 맙니다. 칼은 칼로 존재하는데,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고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고 하니 정말 귀가 막힐 일입니다. 어찌 구원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나요? 사랑 자체 이신 분이 이리 무서운 말씀을 하시나요?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옵니다. 죄악을 거부하는 내면의 칼을 써야 합니다. 매 순간 선을 선택하는 결단의 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은 분명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원하시지만, 칼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은 상대방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는 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칼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6,17).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 받아들여 참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는 사람과 그릇된 욕망을 가진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것인가? 이에 대한 태도는 집안 식구가 다 각 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견해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정도가 같지 않기 때문에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해야 합니다. 갈라진 마음이나 어정쩡한 결단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상하고 적대감을 지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악이 기승을 부릴 때는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간, 부부간처럼 가까운 사이여서 도저히 악이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은 관계 곳곳에 끼어듭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어려움에 타협하지 말고 말씀 안에 꿋꿋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인간적인 것이 끊임없이 대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칼을 선택한다면 그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열매 맺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죄악을 거부하는 내면의 칼을 써야 합니다.
아멘
아멘
신부님 고맙습니다
죄악을 거부하는 내면의 칼을 써야 합니다.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