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10,080시간 후 - 이제 진정한 부부가 되어볼까..?
***************
"저기...다왔는데요?"
"빨리 일어나세요. 진작 도착했어요."
누가 감히 나의 소중한 단잠을 방해하는가!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는데 그 순간 나를 깨우던 나의 남편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빨리 일어나세요. 진작 도착했어요."
아까 키스할때와는 다르게 별로 동요하지는 않는다.
"그...그래.."
차에서 내리니 깔끔한 디잔인의 아담한 이층집이 나의 눈에 보였다.
그렇다...우리는 신혼여행은 과감히 생략하였다.
물론...우리의 의견이 없었지만...
남편이 회사에 가야한다고 신혼여행은 사라졌다.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그를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니깐...
그냥 나는 그의 옆에서 행복하다는듯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그럼 된다.
일순간 심장이 찢어질듯 아파왔다.
겨우 이딴 결혼을 시킬거면서 도대체 나와 그 아이의 결혼은 어째서 그렇게 반대하였던 것일까...
아니야!! 그 아이는 이제 생각하지 말자.
생각한다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니깐.
"뭐하세요? 안 들어오시고."
"미안."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정말 심플 그 자체였다.
화이트 색상에 벽지 때문인지 더욱 그랬다.
검은색 가죽 소파와 유리 탁자, 티비를 지나면 주방하나가 있었다.
주방은 핑크색이 다 차지하고 있었는데 뭐..나름 귀여웠다.
1층에는 방 두개가 있었는데 둘다 손님방으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침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층으로 나무로 된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방이 드레스룸, 그 다음 연보라색 방은 나의 서재, 그 다음 연하늘색으로 되어있는 방은 남편 서재.
마지막 방은 정열적인 붉은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침대 시트도 심지어 붉은색...
침실만 빼면 전체적으로 파스텔 톤이 강한 곳이었다.
특히 나는 나의 서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서재에 들어가면 온통 방안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보라색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깐!
나의 서재에는 중앙에 유리로 되어있는 책상과 연보라색 나의 노트북이 올라가져 있었고 왼쪽 벽면은 피아노 한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른쪽 벽면은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이었다.
나의 서재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데 마침 남편도 구경을 다 마쳤는지 딱 마주쳤다.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야?"
"여다진이요. 누나는요?"
"한시은! 그나저나 반말 써. 불편하잖아. 한두해 마주 볼것도 아닌데."
"그래. 그런데 누나 한가지 말해둘게 있는데요."
"뭔데?"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여다진..
"저 누나..."
"왜..???"
"아..아니야. 밥이나 먹을까? 내가 밥할게."
"그래..그럼 좋지."
무언가 중요한 말할게 있는듯 하였는데..
하지만 딱히 더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것이 나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물어볼걸...그때 물어보았으면 나의 인생이 아마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그의 연기에도 속아나지 않았겠지..
"내려와서 먹어!"
맛있는 냄새가 난다했더니 음식이 다 되었나 보다.
내려가서 보니 식탁 위에 놓아져 있는 노란 카레..?
"카레네..?"
"응."
"왜 하필 카레야?"
"만들어 줬으면 그냥 고맙다고 먹는거야. 그냥 먹어."
'황당'
정말 어이가 없네.
내가 기분 나쁘게 말했나?
딱히 그런것 같지도 않은데..
뭐지 저 싸가지를 안드로메다로 날린 것 같은 말투는...
그리고 그 뒤로 그 아이는 싸가지가 일도 들어있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아마..그것이 본 모습이겠지.
계속 존댓말 쓰라 할걸..
그런 후회를 하며 카레를 다 먹고 설거지를 한 후 나는 나의 서재에 여다진은 자기 서재에 들어갔다.
그 뒤로 일주일동안 나는 여다진과 각방을 쓰고 각자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는 동안 간간히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일주일 동안 그 아이의 싸가지 제로의 말투에 적응해 버렸다.
아..인간은 왜 적응의 동물인가.
그리고 여다진과 나의 결혼생활에 전환점이 되어버린 그 사건이 일어났다.
아마...결혼 일주일 후 그 사건만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나는 울고 있지 않았겠지...그렇겠지..
아마 우리는 신혼부부같지 않은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로 남인척 계속 살수 있었겠지.
지금 나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
그래.>!!!
여다진과 결혼 일주일 후 여다진이 술만 마시지 않고 들어왔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두근될 일도 여다진의 친구가 나를 볼 일도 아마 전혀...없었을 것이다.
'띵동'
이 집에 살며 이 집의 초인종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본다.
"누구세요?"
"형수님! 죄송한데 다진이 이녀석이 술을 좀 많이 마셔서요."
"네..잠시만요!"
서둘러 문을 열고는 비틀대며 걸어오는 여다진과 그런 그를 부축하고 있는 여다진 친구를 맞았다.
"침실이 어디죠?"
"이층인데...그냥 이 쪽 방에 눕히세요."
계단을 오르는 것은 영 사고가 생길것 같아 그냥 손님방에 눕혔다.
도대체..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저렇게 뻗은거야.
"수고하셨어요."
오렌지 주스 한잔을 컵에 담아 여다진 친구에게 건네며 말을 했다.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여다진이 자기 아내 이야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는데.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랬나 보내요."
"하하하...별말씀을..시간도 늦었는데 주무시고 가실래요?"
"아니에요. 신혼부부한테 민폐를 끼칠수야 없죠. 다음번에 놀러올게요. 그럼.."
아...저 봐라...얼마나 인성이 바르니...여다진도 저기에 반의 반만 닮았어도...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
"꺅!!!"
"뭐야..소리를 왜 질러."
뒤를 돌았는데 바로 뒤에 여다진이 있다.
아..심장 순간이동 할뻔 했네..
"너..너..손님방에 있었잖아."
"으흠..몰라...시은아.."
시..시은..???
"너 혹시 어디 아프니?"
"헤..나 걱정해 주는거야."
술마시면 원래 귀욤열매를 주어 먹나..
하...귀엽다.
"아니..그런 건 아닌데.."
"에이! 거짓말 하면 뽀뽀해 버릴거야."
솔직히 나는 그때 당시에는 얘가 드디어 살짝 미쳤다고 생각했다.
사실 반쯤 미쳐있는건 맞으니깐.
"헛 소리 그만하고 들어가서 자. 너 너무 취했어."
"시은아..나는 니가 너무 너무 좋은데...왜 그렇게 차갑게 행동해."
뭐..뭐라?
"뭐..???"
"일주일 동안 말도 안해주고."
하긴 우리가 일주일 동안 나눈 짤막한 대화 모두 여다진이 주도한 것이니.
"미..미안.."
"우리 신혼 맞는거지?"
"맞기는 하지."
"우리 이제 정말 부부처럼 살자."
"으..읍.."
그 말을 끝으로 여다진이 나의 입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와의 두번째 키스는 쌉싸름한 술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