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
남편과 나는 1994년 성당에서 만났다.
그는 수녀가 되려던 나에게
삭발까지 하고 구애를 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그를 우리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는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봄, 우리는 결혼했고,
곧 영훈이를 낳았다.
이어 둘째 규빈이도 생겼다.
임신 3개월째,
가장 행복해야 할 때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다.
첫 번째 발병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유산을 권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고생할 막내딸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고집을 부려 규빈이를 낳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이 완쾌 판정을 받은 것이다.
왼쪽 대장을 상당 부분 잘라내고
그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견디며 남편은 완치되었다.
남편에게 가족은 힘이었고,
버티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암은 또다시 남편을 찾아왔다.
이미 복부 림프절까지 전이되었지만 차마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암은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었다.
CT 촬영을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힘내, 응? 힘내.”
그러나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할 수 있을까.
“아빠! 왜 목소리가 작아?”
“병실이라 그렇지.”
“아빠?”
“응, 왜?”
“아파요?”
“아니.”
“거짓말, 아프면서…”
남편이 다시 입원한 후 아이들도 뭔가를 느끼는지
부쩍 아빠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자꾸 우는 규빈이와 나는 약속을 해야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
지금까지 나는 남편에게 나아질 것이라고만 말했다.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태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시동생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갑자기 남편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밖엔 너무 춥다고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생각해보니 입원 후 남편은 한 번도 외출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지상에서 만나는
마지막 바람, 햇살…
남편은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남편은 더 늦기 전 아이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캠코더를 장만했다.
결혼 9년 만에 장만한 캠코더로
그의 마지막 인사를 찍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성껏 남편을 단장해줬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내 남편.
“고마워.”
남편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뭐가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남편은 씩 웃으며 내 얼굴을 처음
본 사람처럼 만진다.
“화장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렇게 봐도 예쁘고,
저렇게 봐도 예쁘고.
.
.
미안하다.
너에게 행복을 못 줘서 미안하고, 너에게 짐만 가득 주고 가서 미안하다.
나중에 아이들하고 너무 힘들면,
.
.
재혼해.”
12월 21일 오전,
남편에게 극심한 호흡 곤란이 왔다.
“조금만 힘내.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응?
애들 데리고 올 거야.
눈 떠봐. 응?”
남편의 숨소리가 거칠다.
여전히 따뜻한 그의 손.
나는 아직 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학교에 있던 아이들을 막내 삼촌이 데려왔다.
아이들이 서럽게 운다.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그는 들었을까?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후 2시 55분.
남편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만나고 사랑하고 부부가 된 지 9년 8개월 만이었다.
남편이 떠난 후 우리의 생활은 여전하다.
아이들은 점점 슬픔을 벗고 명랑해졌다.
나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그가
보냈던 문자를 본다.
생전 그와 나누었던 평범한
메시지가 이렇게 소중한 선물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때론 그의 무덤에 찾아간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무덤
앞에 가면 그만 눈물이 쏟아진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도 이 곳 뿐이다.
난 아직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 앞으로도 내내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또 이 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그를 떠올리면 그는 언제나
함께 있다.
바람이 불면 그가 내 머리를 쓸며
내 곁에 와 있는 듯하다.
눈을 감고 그에게 말한다.
안녕, 여보.
안녕, 영훈 아빠.
– MBC 휴먼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안녕, 아빠' 내용의 일부 –
-지인이 보내준 톡에서-
사랑은 늘 도망가 /임영웅
https://www.youtube.com/watch?v=Jr_2uyCJVUc
반상 위 기싸움
단 한판의 승부
아차차 한번 실수
끝나 버렸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인 줄 알고 일어나 컴을 켰더니
어? 이제 새벽 두시
이런이라니
컴을 켜버려 일기 마무리
이제 3시밖에 안되었다
다시 한숨 더 자고 일어나야겠다며 침대로
깜빡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4시 30분
다시 한번 일기를 읽어 보며 틀린 글자를 고쳤다
아직도 맞춤법이 많이 틀린다
더듬더듬 치는 독수리 타법이라 더 틀리는 것같다
톡을 보내고 가볍게 체조하며 몸을 깨웠다
식은밥에 누릉지를 넣어 끓였다
밥 끓는 사이 동물들 챙겨주기
닭장의 닭들이 알을 낳지 않는다
모이도 줄 만큼 주는데 원인이 무엇일까?
알지 못하니 답답
병아리장 중닭들은 모이를 남겼다
내가 넘 많이 주었나?
오늘은 양을 줄였다
집사람이 나와 들깨와 들깨대를 널잔다
수돗가 옆 양지쪽에 널어 두었다
어제 토란대를 벗기다 남은 게 있다
토란대를 알맞게 잘라 큰 고무통에 담아 가지고 방으로
집사람과 둘이서 토란대 껍질을 벗겼다
모두 벗겨 건조기에 넣었다
건조기에서 말린 애호박과 가지는 잘 말라 있어 큰 비닐봉지에 담아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토란을 심어본게 처음
토란국도 맛있지만 토란대는 나물이나 탕을 끓일 때 넣으면 맛있다
토란은 알칼리식품이라 건강에도 좋다
앞으론 토란을 계속 심어야겠다
끓인 밥 한술
누룽지를 넣어 끓였더니 더 맛있는 것같다
두그릇을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끓인 밥이니 바로 소화되겠지
이것저것 하다보니 아홉시가 넘었다
오늘은 고창군수배 바둑 대회
장성바둑 협회에서 단체전 두팀을 만들어 출전하는데 나도 참가한다
김사범님과 전총무도 참여하길래 같이 가자며 바둑 휴게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집사람은 오늘 북이면민 축제 날이니 오전에 나가 구경하고 파크볼이나 치고 오겠단다
그도 괜찮겠다
시간 되어 바둑휴게실로
시장 앞 광장이 면민 축제장
교통을 통제하여 차를 목욕장 앞에 세워 놓고 바둑휴게실로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김사범님께 전화하니 먼저 고창으로 갔다고
전총무에게 전화하니 행사장에 있다며 바로 오겠단다
전총무가 오길래 김사범님은 먼저 가셨으니 우리끼리 가자고
전총무 차로 고창 실내 체육관으로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일찍들 오셨나보다
장성에서 온 동호인들도 속속 도착
10시 30분되니 개회식
먼저 내빈소개
군수님 도위원님 도바둑협회장 군 체육회장등 많은 분들이 격려차 왔다
군수님의 배려로 고창엔 바둑경기장이 생긴다고 한다
와 대단하다
군단위에 바둑 경기장이 있는 곳은 이세돌 국수 신안뿐으로 알고 있는데 고창도 생긴다니 축하할 일이다
모두들 군수님께 우뢰같은 박수
우린 바둑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 쫓겨 다니는데 부럽다
오늘은 5명이 한팀으로 모두 4판을 두는데 스위스리그 방식으로 순위를 정한단다
난 5장으로 출전했다
조 추첨을 하여 1회전은 고창 b팀
내 상대와 급수가 같아 호선으로
이분과 수인사를 했는데 술냄새가 풀풀 풍긴다
이분이 물병을 보여주며 이게 술이란다
물병에다 소주를 담아 가지고 와서 틈만나면 홀짝인다고
자긴 술중독인 것같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답답하고 재미 없단다
와 그래도 그렇지
아침부터 술에 쩔어 있다니 참
돌 갈라 내가 백
술마신 분이라 가볍게 이길 줄 알았는데
어 그게 아니다
바둑수를 보는게 정확하다
중반 전 들며 형세가 비등
내가 승부수로 던진 돌 꼬리가 끊기며 잡혀 버렸다
그로 인해 흑이 덤을 내버린 것같다
참말 못둔다
끊기는 걸 보지 못하다니...
그나저나 취한 상태에서 어쩜 그리 수를 볼 수 있을까?
대단한 정신력이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나보다 한수 위일 것같다
흑이 반면으로 20여집을 남겨 크게 져버렸다
난 술마시면 개판 되는데 이 분은 참 대단하다
난 졌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겨 우리팀 승
1회전 경기 끝나고 점심 먹으러
태흥갈비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김가네 김치찌개만 못하다
밥을 한그릇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술을 끊은 후론 밥 한그릇을 다 먹지 못할 때가 많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밥맛이 더 좋아야할건데 밥맛은 떨어지고 군입은 늘었다
왜 그럴까?
오후 1시부터 2회전 시작
2회전은 김제 에이팀과 두었다
내 상대는 나에게 정선
몇수 두어보니 두는게 엉터리
중후반 들어가며 대마를 크게 잡아 승세를 굳혔는가 했더니 들여다 본 수를 잘못받아
오히려 내돌이 잡히며 전세 역전
이런이라니...
판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보니 패가 나는 곳이 있다
패를 이기면 백승
패를 걸어가니 흑이 팻감을 엉터리로 써 받질 않고 해소해 버렸다
그로 인해 흑돌이 다시 죽으며 더 이상 해볼데가 없다며 투석
넘 아쉬워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2회전도 우리팀 승
3회전은 김제 비팀과 두었다
이분도 나에게 정선
이분은 앞에 분보다 더 못두는 것같다
중반에 곤마를 몰아 부쳐 잡아 버리니 투석
3회전도 우리팀 승
연 4승을 하면 우승
마지막 결승전은 정읍팀과 두었다
내가 두점을 놓고 둔다
두점을 놓으면 웬만함 지지 않는다고 생각
잘 어우러지다가 그만 끝내기에서 선수 여섯집을 헌납하고 보니 비세
이럴줄 알았으면 승부수를 던지는 것인데...
계가해보니 3집을 져 버렸다
결승전은 우리팀 에이스들이 모두 져버렸다
내가 이겼더라면 우승했을 건데....
3승 1패로 우리팀이 준우승
장성에서 나간 다른팀은 3위를 했다
시니어 개인전에 이회장이 4강에 들었다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준우승 팀에겐 10키로 쌀한포와 냉동 식품 한상자
상금으로 개별 5만원을 준다
상금은 참가비로 대용
오늘로서 금년 바둑대회는 끝
이젠 내년도를 기다리자고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매달 참가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그런데 올 각종 대회가 모두 끝났다니 아쉽다
올해 내 성적은 전남 바둑 대회에선 병조 개인 8강
다른 대회엔 팀으로 나갔다
함양 노사초배에서 준우승 나머지 대회에선 8강의 문턱을 넘어서질 못했다
그래도 모르는 분들과 어울려 바둑을 둔다는게 재미 있었다
대회에 자주 참가하다보니 떨리는 마음도 진정이 되고 판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내년엔 더 즐길 뿐 아니라 성적도 내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겨울 동안 바둑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실력이 늘어 연습용 바둑이 아니라 대회용 바둑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총무 차로 사거리에 오니 아직 축제가 안끝났다
집사람도 볼치고 축제장으로 온다기에 기다렸다
김사범님과 함께 조사장을 만나 술한잔
난 마시지 않아 음료수로 대신
안주가 좋으니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참아야겠지
집사람을 만났다
아산형님이 집에 가시지 않고 축제장에 있다
그만 집에 가자며 아산형님을 모시고 왔다
상품으로 받은 냉동식품을 보니 갈비탕과 닭볶음탕이 들어 있다
간편하게 요리해 먹기 좋겠다
집사람은 큰애 오면 주자고
그도 좋겠다
저녁은 식빵 한조각으로 때웠다
이도 한끼 식사가 된다
오늘은 바둑만 두었는데 피곤
눈이 자꾸 감긴다
일곱시 넘어 잠자리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가로등만 깜빡인다
님이여!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
고운 단풍 찾아 나서 보심도 힐링
오늘도 님의 하루가 풍요로운 가을처럼 풍성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