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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BwKLP1aX2U?si=ypd28E3lLStN3T2_
(Dame Joan Sutherland; Luciano Pavarotti; P. Cappuccilli; N. Ghiaurov; "I PURITANI; Vincenzo Bellini)
청교도 (I Puritani)
공연역사:
3막으로 된 오페라이다. 세계 초연은 1835년 1월 25일프랑스 파리의 Theatre des Italiens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배역을 보면 Grisi가 Elvira역을, Rubini가 Arturo역을, Tamburini가 Riccardo역을, Lablanche가 Giorgio역을 각각 맡았다. 1949년에 Fenice공연에서 Callas가 출연하였고 지휘는 Serafin이 맡았다. 1960년의 Glynde bourne공연에서는 Sutherland가 출연하였고 지휘는 Gui가 맡았다. 1964년의 Covent Garden 공연에서는 Sutherland가 출연하였다.
원작 :프랑소 크사비에 생틴 공작의 희곡 "의회당파와 왕당파" 및 월터 스코트의 소설 "올드 모털리티"
대본 : 카를로 페폴리
작곡 : 1835년
장소: 잉글랜드의 Plymouth근처
때: 영국의 내란(1650년경)
공연시간: 2시간 45분
초연 : 1835년 1월 25일, 파리 이탈리아극장
등장인물
괄티에로 발톤 경 (성주)
엘비라 (성주의 딸)
조르조 (엘비라의 숙부)
리카르도 포르트 (청교도 기사)
부르노 로베르톤 (청교도 사관)
아르투로 탈보 (왕당파 기사)
엔리케타( 카를로 1세의 미망인)
줄거리
이 오페라는 해피엔딩으로 되어 있지만 벨리니의 오페라에서는 흔하지 않게 슬픈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비극적인 요소들을 다루는 벨리니의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오페라이다.
주요 아리아
(1막,3장) A te, o cara (당신에게, 오 사랑하는 이여):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성에 도착하여 엘비라를 만난 자리에서 부르는 아르투로(ten.)의 아리아이다.
(2막) Qui la voce sua soave.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부르네): 유명한 Mad Scene에서 실성한 엘비라(sop.)가 부르는 아리아이다.
제 1막 (1장)
청교도 기사들의 새벽을 알리는 합창이 계속되고 멀리서 엘비라 등이 아침기도를 올리는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리카르도는 홀로 엘비라의 아버지 발톤 경이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자기에게 딸, 엘비라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전쟁에서 돌아오자 갑자기 마음이 변했음을 한탄한다. 아리아 <아아 영원히 너를 잃었다 Ah! Per sempre io ti perdei>.페터 루카스 그라프, 오레 니콜레, 볼프강 슐츠, 등과 함께 현존하는 플루트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막상스 라뤼는 이들 가운데 가장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 이 무지치, 장 피에르 랑팔 등이 라뤼와 함께 음반 녹음을 했으며, 뮌헨, 콜로뉴, 콘테카를로, 프라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음반을 녹음 발매했다. 뿐만 아니라 에라토, 필립스, 데카, EMI, 데논, 카시오페 등 다양한 레이블에서 녹음한 음반의 종류만도 70여장에 이른다. 그 덕택에 프랑스는 수많은 거장들을 배출해 낼 수 있었으며 또 그들 중 대다수는 대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해낸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명성은 Art & Letteres와 아울러 국가공로훈장의 수훈자라는 칭호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제 1막 (2장)
엘비라가 있는 곳에 숙부 조르조가 찾아와서 엘비라의 희망대로 아버지가 정해준 리카르도가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아르투로와 결혼하도록 발톤 경을 설득하고 왔다고 알린다. 연인 아르투로가 왕당파이기 때문에 결혼이 허용되지 않아 번민해오던 그녀는 이 통보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불타있다.
제1막 (3장)
아르투르와 엘비라의 결혼식을 모두 축하해 주고 있다. 아르투로는 엘비라를 찬양하여 노래를 부른다. <사랑스런 아가씨여 그대에게 사랑을 A te, ocara, amor talora > 거기에 엔레케타가 브루노를 따라 들어온다. 그녀는 오랜 동안 성안에 잡혀 있는 귀부인인데 발톤 경과 남편이었던 사람 이외에는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한다. 경은 그녀에게 런던의 의회가 그녀를 소환한다고 알린다. 미심쩍게 생각한 아르투로는 조르조에게서 그녀가 스투아르디 가의 고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낸다.
모두 나간 후,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자신이 왕당파임을 밝히고 무언가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다면서 그녀의 신분을 묻는다. 엔리케타는 카를로 1세의 비였음을 알린다. 왕비가 런던 의회에 출두하면 처형될 것은 뻔한 일이므로 왕당파인 그는 왕비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왕비는 신부의 일을 염려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생각해 보라면서 체념한다.
그때 신부 차림을 한 엘비라의 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여운 처녀 Son vergin vezzosa>. 엘비라는 엔리케타에게로 다가가서 베일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고 숙부에게 이끌려서 다음 방으로 간다. 아르투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왕비에게 신부의 베일을 씌워 도망치게 하려 한다.
거기에 리카르도가 나타나서 그를 밀어붙이면서 결투를 신청한다. 왕비는 두 사람을 말리려고 스스로 베일을 벗는다. 아르투로와 함께 도망치려던 상대가 엘비라가 아님을 안 리카르도는 일부러 말없이 두 사람을 도망치게 놔둔다. 그때 돌아온 엘비라는 갑자기 남편될 사람이 다른 사람과 도망친 것을 알게 되자 실신해 버린다.
제2막
발광한 엘비라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조르조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요즘의 그녀의 동태를 말해준다. 로만차 <화관을 달아요 Cinta di fiori>. 리카르도가 나타나서 도망중인 아르투로는 의회로부터 사형이 선고되었다고 알린다. 거기에 멍청한 눈으로 엘비라가 나타나 노래를 부른다. 광란의 아리아 <그리운 목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다 Qui la voce soave>.
여기 있었지 달콤한 그의 목소리 나를 불렀지... 그리고는 사라져버렸어. 여기서 그는 맹세하였지 성실할 것을, 그것을 그는 맹세했어, 그리고는 잔인하게도, 내게서 도망쳤어! 아, 더이상 이제는 함께 하지 못하네 기쁨의 탄식 안에서. 아, 돌아오라 내게 희망이여,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게 해다오. 돌아오라, 내사랑, 하늘에 달이 떳어요! 모든 것이 조용하오 주변에; 하늘에서 날이 샐 때까지는, 와서, 내가슴에 안겨요! 서둘러요! 오 나의 아르투로 돌아와요, 내사랑, 당신의 엘비라에게: 그녀는 울고 한숨짓는다오 당신 때문에, 와요, 오 님이여, 사랑에게로... | Qui la voce sua soave mi chiamava...e poi sparì. Qui giurava esser fedele, qui il giurava, E poi crudele, mi fuggì! Ah, mai più qui assorti insieme nella gioia dei sospir. Ah, rendetemi la speme, o lasciate, lasciatemi morir. Vien, diletto, è in ciel la luna! Tutto tace intorno intorno; finchè spunti in cielo il giorno, vien, ti posa sul mio cor! Deh!, t'affretta, o Arturo mio, riedi, o caro, alla tua Elvira: essa piange e ti sospira, vien, o caro, all'amore, ecc. |
그녀는 숙부도 리카르도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따금 아르투로의 이름을 부르며 슬프게 노래하고, "연인이여 돌아와 줘요"라고 소리칠 뿐이다.착란 상태에 빠진 그녀를 방으로 데려오자, 조르조는 리카르도에게 왕비를 도망치게 한 것은 아르투로 혼자만 한 짓이냐 고 ,말하고 엘비라의 가엾은 모습을 보고 아르투로에 대한 증오심을 버리라고 타이른다. 리카르도도 조르조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한다. 그러나 내일은 왕당파와 결전을 벌이는 날이다. 두 사람은 용감하게 싸우자고 맹세한다.
제3막
엔리케타를 도망치게 한 다음 이 곳까지 청교도군의 손을 피해 도망쳐온 아르투로가 서있다. 그가 적의 탐색을 피하여 조국으로 돌아온 것을 신에게 감사하고 있는데, 멀리서 엘비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옛날 그가 부르던 사랑의 노래였다. 그는 자기도 그 사랑의 노래를 불러 그녀를 숲 속으로 찾으러 가지만 적의 수색대 병사가 접근해오므로 몸을 감춘다.
병사들이 멀리 가 버린 후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엘비라를 찾고 있는데 엘비라가 숲 속에서 나타난다. 애인을 보자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그는 어찌하여 왕비와 도망쳤는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녀도 납득하여 두 사람은 재회를 기뻐한다. 거기에 마침 운이 나쁘게도 청교도군이 나타나 아르투로를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이것을 본 엘비라는 다시 착란 상태로 빠진다. 아르투로는 자기로 인해 엘비라가 고통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한다. 4중창 <그녀는 나에게 배반당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Credeasi, misera ! Da me tradita>.
그때 전령이 달려와서 스투아르디가는 멸망하고 아르투로는 방면되었다고 알린다. 엘비라도 다시 정신을 되찾아 일동의 축복 속에 막이 내린다.
Vincenzo Bellini (1801~1835)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난 벨리니는 오르간 연주자인 아버지가 입학시킨 나폴리 음악원에 재학중 첫번째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후 벨리니는 영향력있는 오페라 흥행주의 후원을 얻어 그의 의뢰로 나폴리 오페라를 위해 〈비안카와 페르난도 Bianca e Fernando〉를 작곡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다른 작품들을 의뢰받았는데 특히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극장을 위해 작곡한 〈해적 Il pirata〉(1827)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아울러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희극 작가인 펠리체 로마니를 대본작가로 쓰는 행운도 안았는데 이후 여섯 작품을 로마니와 공동으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을 개작한 〈카풀레티가와 몬테키 I Capuleti ed i Montecchi〉(1830)와 〈몽유병 여인 La sonnambula〉(1831)·〈노르마 Norma〉(1831)가 있다. '오페라 세미세리아'(심각한 내용이지만 행복하게 끝나는 오페라)에 속하는 〈몽유병 여인〉은 영국에서까지 큰 인기를 얻어 영어로 번역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고대의 갈리아 지방을 무대로 한 대표작 〈노르마〉는 초연이 실패했는데도 지속적인 성공을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1833년 런던에 잠시 머물렀던 벨리니는 파리로 가서 로시니의 영향을 받아 테아트르 이탈리엔 극장에서 오페라를 의뢰받고 〈청교도 I puritani di Scozia〉(1835)를 작곡했다. 이 작품은 부적절한 대본이 약점이긴 하지만 그의 작품 중 가장 야심적이고 아름다운 오페라이다. 벨리니의 명성은 전적으로 당대 명가수들의 벨칸토 창법에 의존한 것이었다. 개혁가가 아니었던 그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이상과 동일했고 명료성, 형식과 멜로디의 우아함, 가사와 음악의 밀착된 결합을 추구했으며 인내를 가지고 당시 오페라의 폐단을 고쳐나갔다. 관현악단의 반주보다 가수의 노래를 더 중시해 가수의 목소리를 극적 표현의 주된 수단으로 삼았으나, 그의 화성은 동시대인이었던 도니체티에 비한다면 매우 획기적이었으며 서주와 간주에서 관현악의 처리는 형식적인 겉치레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벨리니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성악 선율의 독자적인 매력과 우아함에 있다.
그러나 벨리니는 청도교의 초연이 끝난 8개월후 장 질환으로 34세로 짧은 생은 마친다. 오페라사상 벨리니의 요절로 베르디의 좋은 라이벌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을 잃게 되었다. 파치니나 메르카단테, 도니제티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던 벨리니는 1829년 롯시니의 은퇴부터 1842년의 베르디의 실질적인 데뷔에 이르기까지의 사이 동안 이탈리아 오페라계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귀족계급의 예술과 낭만파의 발흥 사이에서 그는 자기의 작품 속에서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운명에 우롱당하는 주인공(대개의 경우에는 여성)의 선양(宣揚)이라는 테마의 합치를 이룩하였다. 과거의 기법과 형식에 대한 벨리니의 애착은 1810년부터 1825년에 걸쳐서 작곡된 약 20개의 종교곡이나 청년기의 7개의 교향곡에도 나타나 있으며 한편, 피아노 연탄을 위한 몇 개의 폴로네즈(오보에 협주곡의 폴로네즈도 마찬가지)는 그가 이미 베버의 예술에 감응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풍스런 오페라 세리아를 지지하고 있던 칭가렐리에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벨리니는 롯시니의 새로운 개혁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또 나폴리는 프랑스와 독일의 음악에 대해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벨리니는 하이든, 그리고 특히 모짜르트의 작품을 연구했었기 때문에 새로운 조류에 민감했으며, 또한 쇼팽과 정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완전한 일체감을 갖게 된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바로 여기에 표현력이 풍부한 선율로 일관했고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벨리니 특유의 마음 설레이게 하는 매력의 원천이 있는 것이다. 그의 선율은 몬테베르디의 리듬적 자유로움(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을 되살렸으며 또한 고음부에서의 역동감을 억제한 벨칸토의 초절기교법도 의연히 이어받고는 있으나 그 인성에 의한 표현은 보다 장려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자유분방하다(노르마에서의 청아한 여신이여 Casta diva의 기도 장면).
또한 벨리니는 어떤 때는 독립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진 고전적 구성을 도입하고 또 어떤 때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거대한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후자의 예인 청교도에서 몇 개의 장면은 구분되지 않고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것만큼 마음을 감동시키는 벨리니의 초고(初稿) 노트에 의해 분명해지는 그의 뛰어난 선율은 오랜 노고 끝에 생겨난 것이다. 드라마의 감정적 내용을 보다 잘 인성(人聲)에 배분하기 위하여 벨리니는 화성과 오케스트레이션을 부단히 순화시켜 군더더기를 일체 제거하였다는 것을 지적해 두겠다. 이것이 그가 20세기 초, 즉 바그너나 드뷔시적 화성이 유행하던 시기에 낮게 평가되지 않았던 이유이다. 쇼팽과 매우 비슷한 음의 세계를 구축한 이 작곡가는 현대에 이르러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https://youtu.be/o19-WXsYWyU?si=4Cl3TOkwnG4yUynR
MARIA CALLAS Bellini I PURITANI Studio 1953
글출처: 하늘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