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1. 수요일}
■북한 무장공비 서울 침입■
1968년 1월 21일 일요일 밤 9시 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 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 들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겅복고등학교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하여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만났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라며 군경을 따돌리려 했다.
군경이 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군대의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이라 뒤에서 이들을 쫓고 있었다.
공비들은 커브를 한 번만 더 돌면 청와대 정문이 보이는 지점에서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으로 착각하고 작전에 돌입했다.
"드르륵, 드르륵."
아랫쪽에서 올라오던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가슴에 세 발의 총을 맞고 즉사했다. 첫 희생자였다
이어진 총격전에서 고갯길을 내려오던 시내버스에 공비가 수류탄 세 발을 던졌고 경복고등학교 후문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공비들은 세 갈래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고 한 김신조가 생포된것은 이튿날 새벽 1시 30분쯤 인왕산 기슭이었다.
우리 군의 공비소탕작전은 1월 31일까지 계속돼 27 명을 사살했으나 나머지 3명의 생사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측의 피해도 커서 민간인을 포함해 32명이 전사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1. 21 사태후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군사도로인 인왕. 북악 스카이웨이를 건설해 대비책을 마련했으나 최근에는 스카이웨이에 설치했던 철조망 대신 펜스로 교체했다.
심지어 김신조 침투로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겪고도 북한과 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김신조 일당 때문에 군생활을 5달쯤 더해서 35개월간 복무했다.
우리나라에게 북한 문제는 당면한 정치문제 앞순서에 있다.
부디 정치 지도자들이 친북 운운하며 헷갈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 H.T.Kim 金炯泰 ]
PS:그당시 사망한 종로서장님 흉상과 물품등은 지금도 종로서에 전시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