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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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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스크랩 지장보살의 기도도량 선운사 상 도솔암(2/2)
현림 추천 0 조회 1,021 18.09.18 19:1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지장보살의 기도도량 선운사 상 도솔암(2/2)


@도솔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산 내 암자로

본래는 상·, ···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북 세 도솔암만이 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선운사 도솔암이라 하면 1부에서 기술된 하 도솔암(下兜率庵)을 말하며,

() 도솔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을 상 도솔암(上兜率庵)이라 부른다.




@() 도솔암 내원궁은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5호 지정되어 있으며,

 20m가 넘는 천인암(千因巖)이라는 절벽 서쪽 암벽 위에 있으며

내원궁 법당 안에는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밑의 절벽에는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으로 명명된

보물 제1200호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다.










도솔암 내원궁

@도솔암 내원궁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단이 없는 원형 초석에 장초석(長礎石)이 함께 사용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포식 팔작지붕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벽선에 아자형(亞字形) 이분합문(二分閤門)을 달았다.

천장의 구조는 우물천장이다.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겹처마에 팔작지붕이 올려 있어 화려하고 안정된 느낌이다.


 

@선운사에는 삼장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선운사 승보박물관에 모셔진 금동지장보살(보물제279)을 지()지장보살이라 하고,

산내 암자인 참당암에 모셔진 옥으로 조성된 지장보살좌상(전북유형문화재33)을 인()지장보살,

도솔암에 모셔진 금동지장보살(보물제280)을 천()지장보살이라 칭한다.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에 봉안된 금동지장보살좌상(金銅地藏菩薩坐像)

보물 제28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립 시기는 고려 시대, 크기는 96.9

청동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으로 고려 후기의 불상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 보살상은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다.

두건을 쓰고 오른발을 위로 올려 결가부좌한 길상좌의 자세로 앉아

 두 손은 아미타 구 품인 중 하품중생인을 결한 채 왼손에 법륜을 가볍게 쥐고 있다.



머리에 쓴 두건은 귀 뒤로 넘겨져 어깨까지 덮어 내려오며 그 끝부분에 영락 장식이 매달려 있다.

영락(瓔珞)을 장엄하게, 법륜을 정교하게 치장한 것은

 가슴의 화려한 목걸이나 손목의 팔찌 등과 함께

고려 후기의 귀족적인 호사한 취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옷으로는 대의(大衣) 모양의 천의(天衣)를 일정한 두께로 입고 있다.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초승달 같은 눈썹, 가는 눈, 오뚝한 코,

작고 예쁜 입 등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아담한 여성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또한, 신체와 얼굴의 단아한 형태는 서로 잘 조화되어 있다.

목은 짧고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가슴에는 3줄의 장식이 늘어진 목걸이가 있다.

양 손목의 팔찌, 손에 든 법륜, 승각기 치레 장식의 연주무늬와 꽃무늬, 목걸이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신체표현은 알맞게 살이 찌고 균형이 잡혀 안정감을 주며, 오른쪽 어깨에 걸친 둥근 옷자락,

왼쪽 어깨 앞에 표현된 Ω형의 옷단 처리, 꽃무늬와

연주문(連珠文)이 정교하게 새겨진 승각기(僧却崎:가사 아래에 걸쳐 가슴 겨드랑이를 덮는 작은 옷) 치레와

승각기를 묶는 리본 모양의 네 갈래 진 띠 매듭 등은 이 당시 대부분의 불보살상에 묘사되는 특징이며,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이나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보물 제1572)과 같은 고려 후기(14세기) 불좌상의 착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보살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두건 쓴 머리와 손의 인상(印相)이다.

두건은 이마를 걸쳐 귀 뒤로 해서 어깨까지 천을 뒤집어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두건은

고려 시대의 지장보살화(地藏菩薩畵)에 흔히 보이는 지장보살상의 특이한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신체를 감싸는 옷 주름은 번잡스럽지 않고

 손이나 발도 부드러운 윤곽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이 보살상은 두건의 형태나 법륜을 든 손 모양 등

세부묘사가 고려 시대 지장보살도에서 보이는 상들과 흡사하다.



보살상에 표현된 선묘(線描)는 단순, 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즉 어깨나 소매·무릎 등에 몇 가닥의 간단한 주름만을 표현하여,

유려하게 휘어지는 맛도 나타나지만 간명하고 명쾌한 표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늘씬하면서도 단아한 양식적 특징은 당시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이 보살상은 장곡사·문수사의 불상과 더불어 당시를 대표할 만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조각상으로는 드물게 전해오는 고려 시대의 지장보살상으로,

지장 신앙의 유행과 함께 고려 미술의 귀족적이며 세련된 일면을 보여 주는 중요한 상이다.


도솔천 내원궁에는 미륵보살이 좌정해야 하는데,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에는 금동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곳에 계셔야 할 미륵보살이 중생구제를 위하여 하생하였으니 빈집을 지장보살이 지키고 있다.

도솔암 마애불은 미륵보살이 도솔천 내원궁에 좌정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곳이 곧 내원궁이라 할 수 있는데, 후대에 그 뒤쪽에 도솔천 내원궁을 짓고 금동지장보살을 모신 것이다.

1894년 이후 (동학)농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그곳에 내원궁을 짓고 금동보살을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장보살은 극락왕생을 서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간절하게 소망을 비는 곳이다.

사후에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는 미륵보살을 친견하여 설법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장보살은 극락왕생을 서원하는 사람들을 도솔천 내원궁까지 인도하는 보살이다.

그들은 미륵 하생을 꿈꾸는 자들이다.

567천만 년 뒤에나 올 미륵 하생을 기다리며, 미륵 상생의 꿈을 꾸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산신각, 내원궁 뒤편에 있다.


도솔암의 산신각은 다른 일반 사찰의 산신각과 많이 다르다.

대개 산신각은 산신 1분과 호랑이 그리고 때로는 동자가 묘사되지만

도솔암 내원궁 산신각에는 불당 쪽에 두분의 스님과 동자 두명,

그리고 중앙에 호랑이를 두고 있으며,좌측은 동자없이 두분의 스님과 호랑이가 묘사 되어 있다.

좌측의 탱화는 우측의 탱화를 다른 시각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분의 스님은 선운사 창건주로 알려진 금단 선사와 참당암을 창건한 의운스님이 아닐까 사료된다.




산신각에서 내려와 마애불로 향한다.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선운사도솔암마애불(高敞禪雲寺東佛庵址磨崖如來坐像)


@내원궁 아래 약 100m 지점에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높이 25m, 너비 10m의 암각(巖刻)에 부조된 마애미륵좌상이다.

마애불이 있는 이곳은 옛적에 동불암(東佛庵)이란 암자가 있었으나

조선 말기 폭풍으로 무너졌다고 한다.

이 동불암지는 1994년에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다.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으로 명명된 이 마애불은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보물 제12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마애불의 크기는

 불상 높이 15.6m, 8.4m로 국내 최대 마애불 중 하나로 꼽힌다.

(참고로 잘 알려진 덕주사 마애불은 높이 13m, 양산 천태사 마애불은 16m이다.)

 

조성 경위를 보면, 백제의 위덕왕이 선사 검단(黔丹)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불상은 낮은 부조(浮彫)로 된 장대한 크기의 마애상으로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자세로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뾰족한 육계(肉髻)가 표현된 머리는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불분명하다.

이마에 백호(白毫: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돋아 있는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다.

하지만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앞으로 쑥 내민 듯한 두툼한 입술 등으로 인하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두 귀는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이나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에서처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힘이 없다.

 목은 머리와 몸체가 거의 맞붙어 드러나지 않으나 가느다란 선으로 된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좁고 평평한 어깨에 걸쳐 입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옷 주름 선이

 선각(線刻)으로 지극히 형식화되어 있다.

입체감이 모자란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선명하면서도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아랫배에서 서로 맞대고 있는 큼직한 두 손은 사실성이 떨어져 있다.

손 아래에 드러나 있는 두 발 또한 손과 마찬가지로 크게 조각하였는데, 양감 없이 선각화되어 있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은 대좌의 상대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다.

하대는 매우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복련화문(覆蓮花文)을 표현하였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 위를 비롯한 이 불상의 주위에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패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이나

양산 천태산 천태사 마애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불상 앞에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목조전실(木造前室)의 가구(架構) 흔적으로서

마애석굴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양산 천태사의 무량수궁과 누각)


신체보다 머리와 손발이 커진 경향,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없이 육계가 뾰족한 점,

가슴 아래로 가로질러 새겨진 네 가닥의 군의의 띠 매듭

 그리고 탄력성이 줄어들고 세부묘사에 있어 정교함이 결여된 불상 양식 등에서

고려 시대 말기 조각의 전통적인 수법을 보이고 있다.




@도솔암 석불비결 설화

1940년 오지영(吳知泳)이 집필한 동학사(東學史)에 도솔암의 마애불에 대한 석불비결 설화가 실려 있는데,

 다음은 그 이야기의 일부이다.

  

임진년(壬辰年) 팔월간(八月間)의 일이다. 전라도 무장현 선운사 도솔암 남쪽에 층암절벽이 있고

전면에 큰 불상이 새겨져 있다. 전설에 의하며 그 석불은 삼천 년 전 검단선사의 진상이라고 하며,

그 석불의 배꼽 속에 신기한 비결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 비결이 나오는 날은 한양이 다된다는 말이 적적하다.

그 증거로 103년 전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서구(李書九)라는 이가 도임한 후

며칠 만에 망기(望氣)를 하고 남으로 내려가 무장 선운사에 이르러

도솔암에 있는 석불의 배꼽을 떼고 그 비결을 내어 보다가,

그때 마침 뇌성벽력이 일어나므로 그 비결책을 못다 보고 도로 봉해 두었다 한다.

그 비결의 첫머리에 쓰여 있는 전라감사 이서구 개탁(開坼)”이란 글자만 보았다.

그 후에도 어느 사람이 열어보고자 하였으나 벽력이 무서워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손화중(孫和中) 접중(接中)에서는 선운사 석불 비결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비결을 내어 보았으면 좋기는 하겠으나 벽력이 일어나면 걱정이라 하였다.

그 좌중에 오하영이 도인이 말하되 그 비결을 보아야 할 것 같으며

벽력(霹靂)이라고 하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다.

나는 들으니 그러한 중대한 것을 봉진할 때에는 벽력살(霹靂殺)이라는 것을 넣어 봉하면

후인이 함부로 열어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들었다.

 내 생각에는 지금 열어보아도 아무 일이 없으리라고 본다.

때가 되면 열어보게 되나니, 여러분은 그것을 염려 말고 다만 열어볼 준비만을 하는 것이 좋다.

 좌중에는 그 말이 가장 유리하다 하여 청죽 수천 개와 고색 수천 파를 구하여 부계를 만들어

 석불의 전면에 안진하고 석불의 배꼽을 도끼로 부수고 그 속에 있는 것을 꺼내었다.

 그것을 꺼내기 전에 그 사찰 중들의 방해를 막기 위해 미리 수십 명의 중을 결박해 두었는데,

그 일이 다 끝나자 중들은 뛰어나가 무장 관청에 고발하였다.

 어젯밤에 동학군들이 중들을 결박 짓고 석불을 깨뜨리어

그 속에 있는 것을 도적질하여 갔다고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초파일은 오색등을 달지만 백중 영가이기 때문에 백색등으로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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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9.18 20:16

    첫댓글 좋은글감사합니다 ()()()

  • 18.09.19 20:38

    감사합니다.나무남방화주유명교주대원본존지장보살지장보살지장보살지장보살지장보살지장보살나무지장보살마하살

  • 18.09.20 04:48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18.09.21 05:37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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