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떳을때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방을 둘러싼 거울이였다
2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에 침대, 식탁, 컴퓨터, 화장실...이것은 마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방이 거울이라는 점만 뺀다면...벽은 물론이고 바닥과 천장까지 전부 거울이였다.
게다가 나는 모든 옷을 벗고 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한없이 펼쳐진
거울에 반사되는 수많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평소하던 습관대로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는 새것이였다.
인터넷도 되었다. 접속을 해서 내가 평소즐겨하던 온라인게임을 다운로드 받고 급히 접속하였다.
곧 나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게임에 열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다.
' 이런 젠장!!! 곧 보스몹이 뜬단 말이야!!! '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화풀이 대상을 찾느라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우리집 같았으면 주변의 물건이라도 던졌으련만...이곳은 씩씩 거리며 성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이
무한히 보일뿐이였다. 잠시 내가 갑자기 이런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무렵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도 보스몹이나 생각하다니 정말 폐인이군요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고등학교 다닐때 교실에서 방송을 드는..그런 느낌이였다
' 누...누구지 ? 내가 왜 이런곳에 있는거야 ? '
과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목소리를 들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이런 놈은 분명 카메라까지 달고
나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순간 나는 내가 다 벗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황급히 침대로 가서
이불로 내 몸을 감쌌다.
' 폐인이라도 어느정도 사회적인 자각이 있나보군요. 하지만 애써 감추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전부터 보고 있었으니 새삼스러울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앞으로 옷은 지급되지
않을겁니다. 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이 방은 인간에게 가장 최적한 온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니까요. 옷은 필요없을 겁니다. 그리고 실내공기는 항상 쾌적하게 유지되지요.
또한 음식은 원하는대로 원하는만큼 지급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쓰레기가 발생한다면 침대옆 수거함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야
수거함이 열립니다. 복잡한것은 아니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요. 앞으로 당신은 죽을때까지
이 방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
그의 말이 끝날때까지 멍하게 듣고 있던 나는 정말 어이가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가두고 여기서 평생 생활하게 하겠다고 ? 이게 누굴 죄수취급하나...
쾅!
' 이게 누굴 죄수취급하는거야! 너 누구야! 당장 날 내보내지 않으면 네놈이 감옥에서 평생
썩게 될거야!!'
나는 발을 구르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분명 날 보고 있으니 이 목소리도 들리겠지
아니나 다를까
' 성질이 급하시군요. 이 방의 모든 거울은 강화거울입니다. 그러나 심한 충격을 주면 깨질 수 있지요.
방금처럼 발을 구르면 바닥의 거울깨져서 나중에 걸어다닐때 불편하실테니 조심하십시요.
그리고.........이곳은 감옥이 아닙니다. 낙원이지요 '
' 뭐야!!!!!!!!! ????? 낙원 너 이자식 어디서 개소릴 ''''''''''
' [[ 아 정말 귀찮아 죽겠네. 이제 돈도 다 떨어져 가는데 어디 평생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컴퓨터시켜
주는 곳 없나. 그러면 빨리 게임에서 1위가 되고 모든 아이템도 내것이 될텐데. 아. 밥해먹기도
귀찮다 ]]. '
아니.....어딘지 모를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그러고보니 분명...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평생 게임만 하고 살고 싶고 밥이나 잠자리는 누군가가 계속 해결해주는
그런 삶을..그렇다면 분명 이곳은 낙원이였다.
' 어떻습니까 당신 목소리가 맞지요 ? 당신의 꿈은 이루어진 것 같군요 '
' 어...저...그..그게.......'
정말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였다. 하지만 이놈이 무엇때문에 ?
' 그럼..네놈이 원하는건 뭐냐 ? 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난 가진거 하나 없는 놈인데 ? '
간혹 장기매매를 위해서 사람들을 납치하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놈도 그런놈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 당신의 생명활동의 기본적인것은 제가 모두 책임집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음식, 쾌적한 실내를
죽을때까지 제공합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십시요. 그러나 죽기전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혹 무언가를 주문하고 싶으시면 지금 처럼 그냥 허공에 외치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
이건 무슨 상황인가. 하지만 상황은 들은대로였다. 놈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컴퓨터의 전원이 다시 들어온 것을 보고 나는 이내 게임을 실행시켰다.
보스몹을 잡을 시간이다.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야말로 시계도 없었다.
간혹 게임내에서 대화를 통해서 시간을 알아보거나 접속자수가 줄었을때 파티맺은 사람이
자러가야 한다거나 저녁먹고 오겠다고 할때마다 시간을 짐작할 뿐이였다. 컴퓨터시계는
엉뚱한 숫자로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정말 내가 허공에 대고 피자를 외치면
피자가 나왔고 밥을 주문하면 간단한 정식이 나왔다. 폐인의 습성상 나는 시간에 따라 생활하지 않고
먹고 싶을때 먹고 자고 싶을때 잠깐 잤으며 나머지는 게임에 투자했다.
내가 먹는 음식들은 이중구조로 된 문을 통해서 전달이 되었다. 그래서 난 누가 주는지도 모르고
그 문으로 나갈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고 남으면 수거함에 넣었지만 도대체 이 미치광이의
괴상한 취미는 끝이 없는지 수거함을 열때마다 간단한 노래를 부르거나. 암산을 하거나.
화면에 나타난 글을 읽고 내용에 답하는 식의 상당히 황당한 조건을 요구했다. 그래야 수거함문이
열렸다. 처음에는 사방이 거울이고 실내가 깨끗하여 나도 그 황당한 조건을 들어주며 귀찮음을
참고 쓰레기를 버렸지만. 나중에는 역시나 폐인처럼 컵라면 그릇과 나무 젓가락. 식판. 숟가락
과자부스러기 등등이 사방으로 굴러다니게 되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하자. 어차피 걱정없었다.
그리고 사방이 거울이라 주위를 둘러보면 발가벗은 인간들이 컴퓨터에만 좌르르륵 앉아있는
거대한 PC 방에 온 듯한 착각도 들었다. 화장실 시설도 좋아서 처음에는 자주 씼었지만
나중에는 어차피 벗고 있는 몸에 때가 탈일이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귀찮아서 씼지도 않았다
생명활동에 필요한 최소한만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모두 게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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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인번호 2436번. 328일 13시간 20분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사인은 자살입니다 "
" 그렇구만. 이번 폐인은 좀 오래 버텼구만. "
" 워낙에 지독한 놈이였지 않습니까 회장님 "
회장이라 불린 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켰다. 그곳에는 폐인번호 2436번의 모습이 보였다.
폐인은 처음에는 아주 생활에 만족하는 듯 호기롭게 이것저것 주문을 해대며 먹고 자고 게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 폐인은 게임보다는 거울을
자주 보았다. 거울을 보다가도 게임을 했으나 게임을 하면서 거울을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나중에는 애써 거울을 외면하기 시작하였으나 사방이 거울이라 그 일이 쉽지 않았다.
폐인은 점차 거울을 피해 달아나려는 몸집을 하며 울부짖었고 마침내는 거울을 주먹에서 피가 나도록
부순 후 그 조각으로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
" 다른 폐인들보다 평균 100일이나 더 버틴겁니다. "
"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놈은 지독한 놈이였지. 게임에 미쳐서 폐인짓을 하느라
자기 부모가 피눈물을 흘리며 게임을 그만두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하는 협박에도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 말일세. 더 기가 막힌건 이놈은 자기가 컴퓨터 하는 방에서 어머니는 목을 매고
자살을 하였는데 그 시체는 치울 생각도 않고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아버지는 농약을 먹고
폐인 방에서 자살했지. 결국 나중에는 폐인이 버린 컵라면 그릇더미에 묻혀버렸지만 말일세.
부모들이 그럴진데 자기자신이 보는 자기의 기막힌 폐인모습을 견디기 어려웠겠지.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때가 있는 법이라네. "
여러분은 거울을 자주 보십니까 ?
첫댓글 흠 반성이 되네요.. 게임은 안좋아하지만.. 암튼, 잘읽었습니다
음.. 아무리 소설이라도.. 저런 폐인이 있긴 있을까요..? ;;
워낙 기상천외한 세상이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
있을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왠지...
있으면 절대 안되는 상황을 소설로 쓰셨네요.ㅋ 폐인들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ㅋ
뭐...TV에서 본 히키코모리 같은 경우.. 부모님께 "자살하는 방법"의 책을 구해달라고 말했을 정도라는데요 뭘...
내모습..안습ㄱ-..ㅎ.ㅎ근데진짜,저렇게게임에미칠수도있을까요;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