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어김없이 봄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행복하셔야합니다.
파릇파릇한 새순과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은 분명 ‘생명의 또 다른 시작’입니다. 매순간 순간을 창조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뚜렷한 표징인 3월의 자연 속에서 이러한 묵상을 해봅니다.
창조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뜨겁게 만나기 위해서는 아담과 하와처럼 우리를 감추어서는 아니 됩니다. 창세기에서는 주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창세 3, 9)하시며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는 우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개방으로 초대하십니다. 진정한 개방은 하느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그라든 저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마르 3, 3)하십니다.
하느님의 손길, 더 큰 생명의 기쁨을 가로막는 것은 언제나 우리 삶의 상처입니다. 라자로의 삶을 떠올려봅니다. 죽어서 냄새나고 썩어가는 그를 생명의 시작으로 초대하십니다. 주님은 그의 존재를 무덤에서 당신께로 향하도록 일깨우며 그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 43)애절히 부르십니다.
저는 ‘이리’ 라는 방향을 가리키는 단어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마음을 열고 나누어야 할 방향을 몰랐습니다. 라자로처럼 우리 삶의 지향점인 예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아픈 상처에서 치유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로 향한 열림이 필요합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화를 위한 열림입니다. 성경 곳곳에서는 진솔된 고백과 열림을 일깨워줍니다. 완고한 마음에서, 오그라든 마음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사명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아 진정한 자기를 만나게 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도록 이끄십니다.
라자로가 나와야 할 부분은 과거였을 것입니다. 과거라는 것은 선물임과 동시에 족쇄일 수 있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체험은 언제나 라자로처럼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예수님께 활짝 열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인정하고 주님과 함께 나누는 삶이 바로 봉헌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덤이 되었든, 야이로의 집(마르 5, 35참조)이든, 회당이든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늘 함께 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영혼이 활짝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조차 치장하고 과장하고 허세를 부립니다. 자연은 결코 자신을 숨기거나 다른 것으로 가리지 않습니다. 비가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온몸으로 흔들리며 자신의 뿌리를 깊게 넓게 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열린 삶이란 적응하는 것이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약간의 수분만 있어도 양파자루 망사이로 뿌리를 내리는 양파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의 역동은 언제나 순리이며 질서임을 만납니다.
예수님 또한 밥하고 빨래하고 땔감을 장만하는 성모님곁에서 일상 안에서 활짝 열려 하느님을 만나는 삶을 배웠을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합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잔잔한 삶의 흐름 그 기쁨을 훈련하였을 것입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작은아들처럼 사순 시기는 우리 삶의 본향을 향해 길을 떠나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셨던 성모님을 만납니다. 성모님 곁에 오래동안 머무르며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봅니다. "우리들에게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요?"
어머니는 모든 것을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 모든 여정 안에서 만나는 의미들이 생생이 하느님을 만나도록 삶을 이야기 해줍니다.
십자가 곁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 마음위로 또 다른 아들을 받아들여 살게 합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 26)하시며 당신의 품안에서 새싹을 돋게 합니다. 새싹을 품에 안는 당신은 분명 우리 삶의 열림을 일깨워 줍니다.
열림을 통해 저마다의 소중한 빛깔과 향기가 작은 찬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열림은 따뜻한 만남을 위한 나와 이웃에 대한 용서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이 용서를 향한 시발점은 언제나 열림입니다. 열림을 통한 세리의 기도가 가슴 속 깊이 메아리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9, 23)하며 가슴을 치며 하늘을 향해 열렸던 그에게 당신의 사랑을 일깨워주시며 꽃을 맺게 하십니다. 이 은총의 사순시기는 모두를 용서하고 용서받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의 새로운 시작으로 초대하시는 주님께 여러분들의 소중한 지향을 마음에 품고 봉헌합니다.
파릇파릇한 행복의 시작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우리들의 선택이며 결단입니다. 당신은 제게 제 삶을 가로막는 돌을 치우도록 초대합니다. "돌을 치워라."(요한 11, 39)
한 상우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