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정말 이 사람입니까?
1. 청년들의 1차적 관심사는 이성교제와 결혼일 것이다. 물론 직장과 진로라는 큰 산이 가로 막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것을 제외한다면 이성교제와 결혼에 대한 관심은 모든 것을 평정하는 최종 관심사로 통한다.
2.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과거에는 주로 10가지, 20가지, 30가지, 심지어는 100가지 목록을 만들어 기도한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을 만났다는 간증 아닌 간증이 나누어지면 모두가 기도 목록을 만들기 바빴다. 그 결과는 상실감이었다. 누구의 기도는 들어주시고 왜 나의 기도는 안 들어 주시는가? 하나님께서도 사람 차별하시는가?
4.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는 진실은 10가지, 20가지, 30가지 목록을 간증했었던 숱한 증인들이 더 이상 더 차원을 높여서 간증을 하기는커녕 삶의 풍랑 속에서 흔들리면서 침몰하거나 내가 잘못 말했었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5. 그러면 격분한다. 그 허다한 간증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목록에서 몇 개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숱한 형제자매들의 사랑고백을 다 거절해 버렸는데 너무 허무하지 아니한가?
6.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나 누굴 탓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내 안의 욕심이 나를 사로잡은 것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 없다.
7. 그렇다면 10개에서 100개에 이르는 목록을 적어놓고 기도하면서 퇴짜 리스트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바른 분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8. 첫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가를 살피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2 돕는 배필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기도목록 리스트보다 더 정확하고 확실하다. 이성교제와 결혼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만나면 만날수록 편안하게 느껴지거나 서로에게 끌리는가? 이성적으로 그 사람만의 매력을 느끼는가? 그 사람의 성품, 성향, 성격과 여러 방면의 삶의 숲과 나무들을 보게 되면서 비호감에서 점점 호감으로 변하는가?
9. 둘째,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사랑스러운가?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사랑스럽다고 느껴서 한마디 내뱉은 말은 이러하다.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주관적인 매력도 필요할 것이다. 매력은 객관적이기 보다 주관적이다. 사람마다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다르다. 광고에 속지 마라. 광고는 홀리기 위한 것이라면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모델들이나 그 남자 그 여자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기에 와 닿은 그 남자 그 여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매력은 있다. 그러니 모델이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생기지 않아도 그런 옷을 입지 않아도 절대 기죽을 필요 없다. 누구든 당당하게 살아갈수록 매력은 맛과 향이 난다. 필(Feel)을 다 믿지 마라. 필 받아서 사고치고 불행해진 이들이 있으니 필을 하나의 분별하는 법으로 받아들여야지 전부가 되면 안 될 것이다.
10. 셋째,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창2:24 청년은 독립적인 존재다. 더 이상 엄마 아빠의 뱃속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캥거루족이 아니다. 부모를 존경해야 하지만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마마보이나 파파걸은 삶을 피곤하게 할 것이다. 홀로서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아닌 누구인가를 의지하고 무엇인가를 의지하려고 한다. 하나님 앞에 홀로서기를 하는 사람은 자립, 자치, 자생하는 힘이 있다. 그들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자신의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이다.
11. 넷째, 더불어 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 연합이라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하는 훈련이 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다. 사람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도록 하셨다면 관계성이 중요하다. 결혼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가정의 만남이고 인생과 인생의 부딪침이다. 그러므로 더불어 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서로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힘을 키워야 행복으로 가는 길이 뻥 뚫릴 것이다. 결혼은 홀로가 아닌 연합의 과정이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함께 걸어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거든 더불어 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12. 다섯째, 부끄러워 아니하는 것이다. “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2:25 배우자란 장점도 있지만 약점도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는 육체적 연합을 의미한다. 성이란 하나님이 부부 관계를 통해서 주신 선물이기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부부관계가 아닌 관계의 성은 불륜이고 이것은 마땅히 부끄러워함이 마땅할 것이다. 불륜은 부부의 연합을 깨뜨리고 망가뜨린다. 서로를 불신하게 하는 치명적인 독소다. 특히 정서적 연합을 파괴하고 영적 하나됨을 가로막는다. 부끄러워 아니한다는 것은 돕는 배필로서 거룩한 성을 존중하고 아끼고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사용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좀 더 확대하여 해석한다면 약점과 단점마저도 부끄러워 아니하는 관계가 돕는 배필의 관계라고 생각 된다.
13. 다섯가지를 참고해서 분별하면서 결혼식이 아닌 결혼생활을 준비해 가라. 결혼식은 이벤트라면 결혼생활은 삶이다. 결혼식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주는 것이라면 결혼생활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노출시키는 보여지는 것이다. 결혼식은 비유컨데 화장한 얼굴이라면, 결혼은 민낯이고 쌩얼이다.
- 이상갑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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