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이규원
저건 무슨 새 둥지일까요?
말라가는 나무에 틀어놓은
작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둥지를 보면 파랑새의 둥지라고 생각합니다
저기 둥지가 보이나요?
어디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둥지처럼 뭉친 나의 공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짓고
짝짓기를 하고
어린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본 적 없나 봅니다
둥지 안에 알들이 있습니다
교미 없이 태어난
보드랍고 따뜻한 나의 알들
알 속엔 나의 무의식이 자라고 있습니다
심장과 발가락과 날개가 생기면
무의식은 알을 찢고 날아오를 것입니다
아직 덜 자란 무의식이 꿈속에서 나를 콕콕 쫍니다
둥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계절 내내 있는데 아직도 둥지가 안 보입니까?
사람들은 나의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상처가 하나도 없는 알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이제 그만 깨지려던 알이 다시 단단하게 문을 잠금니다
나의 무의식을 들키는 일이 점점 더 무뎌지고 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8월호 발표
이규원 시인
강원도 평창군 진부에서 출생 . 2015년 《열린시학》시 등단. 시집 『옥수수 밭 붉은 바람소리』 시조집 『가까이 앉으라는 말』 이 있음. 제11회 열린시학상 수상.제12회 가람시조 백일장 장원. 202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제9회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