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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3_ 또 다른 사건
“ 한형사! 정말로 대답을 안 할 거야? “
“ … “
의문스러운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반장님의 호통 탓에 잃을 뻔했던 정신도 다시 꽉 잡은 기분이다. 아무래도 의심이 가는 행동만 골라서 행동하는 나의 모습에 이반장님께서도 혼란스러우신지 애꿎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내 앞에 서셨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이 나와 반장님 사이에서 오갈 때 즈음 주위에 계시던 형사님들은 누군가를 보고서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굽혀 급히 인사를 했다. 그들의 행동에 의아했던 이반장님은 이내 뒤로 돌아 인사의 대상과 눈을 마주치자 허리 굽혀 인사했고 나 또한 누군지는 모르지만 얼떨결에 허리를 굽혀 그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 부담스럽게 왜 그리 열심히 인사를 하나. 허허, 다들 일어나 보게 “
“ 검찰총장님께서는 여기를 왜.. “
“ 이 일, 다들 봤듯이 평범한 사건은 아니란 것을 느꼈을 게야. 최대한 빨리 이 사건을 해결해주면 고맙겠네. “
총장님의 말씀이 끝난 뒤, 총장님은 형사들 한 분 한 분께 악수를 청했고 형사 무리 가운데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오묘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와 손을 건넸다. 나는 천천히 그의 신발부터 얼굴까지 스캔하듯 훑어보았고 나의 행동에 이반장님께서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나는 황급히 내게 건넨 그의 손을 잡고서 악수를 했다.
“ 그쪽이 한형사군. 말 많이 들었네. “
“그게 무슨..”
“ 실력도 좋다지? 이번 사건 재미있는 사건이니 잘 한번 풀어보게 “
어둡다. 나를 바라보며 사악한 웃음을 짓는 총장님의 눈동자가 차갑고 어둡다. 언뜻 보면 나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늘어놓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느꼈다. 점점 힘이 들어가는 그의 손을.
그와의 어려운 대화가 끝이 나고, 이반장님께서는 아까 끝내지 못한 얘기를 마저하자며 나를 사무실로 끌고 가셨고 그 덕분에 준우는 투덜대며 혼자 차를 이끌고 와야만 했다. 그렇게 마주 보며 앉은 우리는 한참을 침묵을 유지했고 다들 예상했듯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단둘이 이반장님과 있는 건 마치 지옥에 있는 것만 같았다.
“ 딴 건 묻지 않을게, 그 남자 누군지 아는 사람이야?”
“ 아니요. 그냥 마치 제가 알던 사람 같아서요. “
“ 북한에서 알던 사람 같단 끝인가? “
“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 … “
“ 정말, 정말 모르겠습니다.”
나의 마지막 대답과 함께 고개를 떨구자 한참을 생각하던 반장님께서는 열려있던 폴더를 신경질적으로 닫으시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잠잠히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천장으로 젖혔다. 마치 모두가 알아야 해야 한다는 선전포고처럼 일어난 살인사건, 그리고 검찰총장님까지 현장 올 만큼 복잡한 사건이라는 것이 마치 반장님 어깨에 짐을 올려두듯이 부담으로 다가갔고 착잡한 마음에 반장님께서는 마른 세수를 하시더니 이내 뒤로 돌아 차분히 내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여셨다.
“ 잘 들어, 이 살인 사건 알다시피 평범한 사건은 아니야 “
“ … “
“ 살인범은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북적이는 곳에 시체를 유기했고 그리고 .. “
“ ….. “
“ 갑자기 검찰총장님이 오신 것도 이상해.”
“ ….네 “
“ 이 사건, 한형사에게 맡겨도 되겠나? “
“ 네? “
반장님 또한 나와 같이 다른 사건들과 다르게 흘러가는 살인사건에 의심하였는지 다를 때보다 진지하게 내게 설명해주셨고 그 설명 끝에 온 것은 간절한 부탁이었다. 뉴스에서는 뭐만 하면 북한에서 핵 실험, 도발 이런 것들이 가득 찼지만 사실상 전쟁이란 것은 쉽게 일어날 것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불안하지 않았지만 요즘 정부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들 이 문제를 내게 맡기고 싶겠지 북한에 대해서 그리고 문신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을 사람은 나니까.
“ 네, 제가 맡겠습니다. “
나도 궁금합니다. 왜 북한은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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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3.29 함경북도 길주군 ( 40.9612º N, 129.3210 ºE )
익숙한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 베개를 질서 있게 정돈했다. 이내 리사령관 동지께서 우리 방으로 들어오셨고 그의 등장에 우리는 한껏 허리를 펴며 그의 불호령을 기다렸다. 여느 때와 같이 그는 우리에게 출처 모를 음식을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잔말 없이 그가 배식해주는 식량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1분 만에 끝이 난 식사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고 훈련장 문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 피비린내가 서서히 우리를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매일매일 똑같다. 다만 다른 것은 어제보다 인원이 줄었다는 것. 가족 같았던 동무들을 우리 손으로 죽이는 것, 처음에는 자괴감 그리고 자책감으로 다들 눈물로 차가운 시체를 적셨지만, 지금은 동무들을 죽이고 그들이 없이 생활하는 것은 매일 일어나는 그저 그런 일이 돼버린 지 오래다.
어느때와 같이 훈련장의 문은 열렸고 사령관님은 훈련장 가장자리에 발을 딛고서 항상 해오시던 말을 시작했다.
“동무들, 우리 김정은 동지의 뜻은 우리가 미국 같은 파렴치한 인간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인간 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거 알디 “
“ 예! 리사령관동지! “
“ 오늘 총 10명의 동무들이 있디. 오늘 살아남을 인원은 총 9명. “
“ ….. “
“ 김정은 동지! “
“ 존경합네다!! “
마지막 구호를 끝낸 뒤 항상 해오던 것처럼 알리는 소리를 기다렸고 이내 징 하면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주변에 있던 작은 단도를 챙긴 뒤 항상 침묵의 협상을 하는 동무들에게 다가갔다. 항상 똑같은 하루, 좀 있으면 누군가의 손을 피로 적셔지고 우리는 차가운 몸을 끌고 훈련장을 나서게 되겠지. 사람의 죽음에 관해 더는 아무런 감정이 느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가끔 놀라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미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생존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뜻이니 좋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잡생각은 머리 한구석에 박아놓고서 다시 98718321, 10678297 동무들과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다가가자마자 나는 느꼈다. 오늘은 뭔가가 달라지리라는 것을.
“ 아니, 다들 여기에서 뭐하는 겁네까? “
“ 조용히 하시라우, 빨리 이리 오시오 03141299 동무 “
약속한 장소로 가자 모든 인원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 갑작스러운 총집합에 놀라 뭐하냐고 묻자 그들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이끌고 사진 찍는 기구가 없는 쪽으로 날 데려갔다. 아무도 주위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이내 둥글게 앉아 자신의 옷 안쪽에서 숨겨놓은 약품, 돈, 음식, 그리고 무기들을 내려놓았다.
“ 우리는 더이상 여기에서 꼭두각시로 살지 않기로 했다네 동무 “
“ ㄱ, 그게 무슨. “
“ 이 남은 10명,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 난 잃고 싶지 안디”
“ 우리 탈북합시다 “
“ ….. “
“ 꼭 다같이 탈북합시다 “
98718321 동무의 말이 끝이 난 뒤 다른 동무들은 어디에서 난지도 모를 북한군 옷들을 품앗이에서 꺼내더니 이내 갈아입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서있던 나를 본 98718321 동무는 이내 내게 다가와 내게 경례를 하며 말했다.
“마지막일지 몰라 미리 경례하겠디. 03141299 동무. 동무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에서 나가게 할 것이디”
“ 동무, 내래… “
“ 거절하지 마시디요. 우린 북조선 최고의 용사 아닙네까 “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도 누굴 죽일까 고민하던 나에게 동무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안전하고 좋은 인생을 살까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주위를 둘러보자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같이 해왔던 그들이 내게 웃어 보였고 이내 나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라 기어코 볼을 타고 흘렀다. 이번에는 10678297 동무가 오더니 장난스레 웃으며 소매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고 나의 눈물에 다들 애써 눈물을 참으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 에, 03141299동무 이제 소녀됬나보디. 시집가야 것네 ‘
10678297 동무의 농에 하나둘씩 웃음을 되찾았고 나 또한 웃으며 닦이지 않은 눈물을 닦고 들고 있던 단도를 꽉 쥐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도 잠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북조선군들이 훈련소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다들 긴장하자 98718321 동무는 급히 우리에게 말했다.
“ 좀 있으면 북조선군들이 들어 올 기야. 그럼 10678297동무가 죽은 척을 할테고 우리는 그의 시체를 처리하러 가는 척 하면 된디. 그 후에 야외훈련을 위해 우리를 트럭에 태우면 그때 도망가면 된디 “
“ 10678297동무는 시체 처리장에 도착하자 마자 옷 갈아입고 출발하면 됩네다 “
“ 다들 꼭 남조선에 만났으면 좋겠습네다 “
“ 아...그리고 내래 9871312이라 부르지 말고 김성현이라 불러 주면 좋겠디, 동무들. “
그의 실명이 공개되자 놀란 우리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고 다들 결심한 듯 하나하나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남조선 사람들은 자기소개한 게 얼마나 중요하냐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인간 무기로써 훈련받은 우리에게는 이름을 말한다는 것은 북조선을 배신하고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산다는 뜻인 만큼 모두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넣었다.
“ …….. 내래 03141299가 아닌 “
“ ….. “
“ 한지은이라 불러주면 됩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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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6일 대한민국, 서울 (현재)
과거 기억을 되새겨 보지만 사실 그들의 얼굴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987...아니 김성현동무는 어렴풋이 얼굴이 기억나는 데 날 항상 웃게 해주었던 또 다른 존재, 10678297동무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탈북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쳤을 때 정신뿐만 아니라 기억들마저도 일부가 날아가 버렸나 보다.
그때 그 9명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북조선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지금 입고 있는 옷, 먹고 마시는 것, 자는 곳 감히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었을까.
“ 한형사님! “
“ …...ㅇ, 어. 왜? “
“ 에이, 뭐 그리 당황하세요. 다름아니라 또 다른 사건이 또 터졌다 그래서 바로 출동하시래요”
대한민국은 아무래도 안전한 나라가 아닌 것 같다. 사건 터진 지 몇 시간을 못 넘기고 또 다른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며 한참을 뭔가 생각하던 준우는 이내 밖으로 나가 재킷을 가져왔고 나는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 아니, 뭐 이렇게까지 입고 나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
“ 제가 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요. 형사님 피곤한 거 뻔히 다 보이는데 쉬지도 못하게 해서 슬프네요 “
“ 뭐, 그렇게까지야 “
“ 이번에 터진 사건 말이에요. “
“ 응? “
“ 노량진 한복판에서 발견된 2구의 사체인데.”
“....”
“
북한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
NEW CHARACTER
북한 실험 번호: 98718321
실명: 김성현
설명: 한지은 또는 한예지와 깉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훈련을 받았던 사이.
한예지가 굉장히 그리워하고 의지하는 상대.
생사여부: 미확인
첫댓글 즐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