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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비틀.
그의 걸음이 딱 이랬다. 백제원. 오늘 강제 전학 온 19세 여자.
술에 가득 취해 옥상을 걷고 있다. 비틀비틀. 비틀비틀거리면서.
높지 않은 난간 위에 오른 그는... 주저 없이 한 걸음 내딛었다.
허공에 몸이 걸리고, 하락하려는 순간.
탁!!!
“이게 미쳤나!!! 야! 정신차려!!!”
그의 팔을 낚아챈 남자가 있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중력과 싸우며, 남자는 그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술에 취해 뜨이지도 못 하던 백제원의 눈은 아주 커져있었다.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저를 구해준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린 그는 숨을 고르더니 지껄였다.
“야... 존나 고맙다...”
그러더니 일어선다. 저게 인사야...? 저게 감사 인사냐고...?
“아니 야!!! 서봐 너!”
자살할라 하다가, 존나 고맙댄다. 저러다 옆 건물 가서 또 뛰어내리는 거 아니야?!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반가온’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뜨린 남자가 말했지만, 그는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와 뒈질 뻔했네... 얼마 안 마신 거 같은데......”
“야!!!”
쾅!
남자, 아니 반가온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허...!”
그게 둘의 이상한, 아—주 이상한 첫 만남이었다...
*
젠장, 젠장. 난 가벼운 백팩을 앞으로 돌려 매고 안에서 칫솔과 치약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딴 치약을 듬뿍 짠 칫솔을 입에 쏙 넣어버렸다. 치약은 도로 뚜껑을 닫아서 가방에 넣었다.
술 냄새. 들키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누구에게? 우리 언니에게......
복도를 휘적휘적 걸으며 누가 쳐다보든 말든 꿋꿋이 양치를 하는데, 같이 술을 마셨던, 아니 같이 마신 것도 아니었지, 내가 몰래 뺏어 먹었었다. 들켜서 튀었지만...
아무튼, 내게 술을 뺏긴 전아라가 생각났다. 내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언니에게 이를지도 몰랐다.
즈엔장...... 망한 것이 분명했다.
분노의 양치를 하다 어느덧 교무실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전학 첫날이기에 제일 먼저 교무실에 들렀다.
드르륵—
주저 없이 문을 열자 나를 보고, 그리고 내가 입에 물고 있는 칫솔을 보고, 그 옆의 흰 거품도 보고. 인상을 쓰는 교사들이 보였다.
“백제원이요.”
칫솔을 입에 문 채 크게 말했다. 물론 발음이 뭉개졌다.
당황하는 교사들을 훑어보는데, 한 남교사가 내게 말했다.
“제원아! 여기로 와...”
안경잡이. 오케이, 별명이다. 동그란 김구 안경을 쓴 남교사였다. 내 담임이리라.
난 안경잡이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양치를 하며.
“왜 이렇게 늦었니? 그리고...”
말을 하다 말고 내가 쥐고 열심히 흔드는 중인 칫솔을 쳐다보는 안경잡이. 난 잠시 칫솔질을 멈추고 웅얼거리듯 말했다.
“양치를 안 해서요. 양해 좀.”
입을 다물지 못 하는 안경잡이에게 턱짓했다. 교실로 가자는 뜻인데, 알아들었으려나 몰라.
“제원아... 여기선 사고치면 안 된다...? 절대로... 알았지?”
“예, 그럼요.”
난 양치를 마치고, 교무실 구석 쪽에 있는 싱크대를 보며 말했다.
“쌤, 저 물 좀 써도 되죠?”
“응? 응, 그래 그래...”
난 싱크대로 가 거품을 뱉은 후 칫솔을 닦고, 손에 물을 받아서 입을 헹궜다.
교무실엔 내가 입을 헹구는 소리만이 울렸다.
마지막 물을 뱉어내고, 입가를 물로 축인 후 마이에 야무지게 비볐다.
그럼 양치 끝.
적어도 냄새로 들킬 일은 없을 거였다. 믿는다, 전아라......
“저기... 제원아? 이제 갈까?”
“아 네.”
난 젖은 칫솔을 말리기 위해 들고 다녔다. 그러한 꼴로 안경잡이와 도착한 교실.
‘3-2’
고개를 들어 표지판에 잠깐 시선을 두다, 안경잡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헐 백제원이다. 강전 간다더니 여기였어?!”
멸치 같이 생긴 남자애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쟨 뭐야... 난 미간을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야, 멸치. 너 나 알아?”
“뭐, 뭐?! 멸치?!”
아 씨... 시끄럽게... 난 아까보다 더 인상을 쓰며 다시 말했다.
“대답이나 하지?”
“그, 그래! 너 아주 잘 알지~ 집안 빽으로 태양고 갔다가 사고쳐서 강전 당한 백제원~!”
태양고, 그러니까 태양고등학교는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모여있는 사립고등학교였다.
그리고 난 거기 집안 빽으로 들어갔고... 다 맞다. 전부 맞는 말인데...
말투가 짜증나네...
“진짜로 잘 아네. 근데 너, 날 그렇게 잘 알면, 너 지금 입 조심해야 되는 것도 알 텐데?”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발끈한 멸치가 다시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라고?!”
“너희 그만 안 해?! 제원아, 넌 저기 빈 자리 가서 얼른 앉자.”
“네~”
빈 자리는 문가 맨 끝자리. 난 웃는 눈으로 멸치를 흘겨주며 내 자리로 걸어갔다.
다른 애들은 내 눈치를 보며 사리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닌데...
담임이 수업 준비 잘하라며 나가고, 난 칠판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고 1교시는 수학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참고로, 내게는 자는 시간이었다...
“야 백제원!!! 니가 그렇게 잘났어?!”
“뭐야, 그 삼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는?”
“이게 진짜...!!!”
멸치남이 분에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게로 쿵쾅대며 걸어왔다.
아 제발... 나 또 사고치면 안 되는데.
잠깐의 걱정이 무색하게, 난 치약이 든 내 검은색 백팩을 멸치에게 던져버렸고 백팩은 그 놈의 인중에 명—중했다.
“악!!! 너 싸우자 이거지?!!!!!”
“어~ 쳐봐 새끼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멸치가 주먹을 휘둘렀고, 난 아주 가볍게 피했다.
슬로우모션도 아니고, 삐쩍 마른 애가 왜 이리 굼 떠?
난 씩씩거리며 다가온 멸치의 배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명치를 맞았는지 바닥에 쓰러져서는 헉헉대는 멸치였다.
“나대지 말자, 멸치야? 응?”
눈동자만 가까스로 굴려 노려보는 것이, 아주 가엽구나...
난 막타로 누워있는 멸치남의 허리를 발로 까곤 바닥에 떨어져있는 백팩을 주워 내 자리에 앉았다.
아주 태연~하게.
언제 모인 건지, 애들이 창문과 문으로 머리를 빼꼼 내민 채 웅성거렸다.
소문 제대로 나겠다. 가령... 미친 전학생이라든가.
내 형편 없는 네이밍 센스에 헛웃음을 치며 턱을 괴는데... 갑자기 누가 소리쳤다. 어딘가 익숙한 음성이었다.
“쌤!!! 쟤예요 쟤!!! 구라 아니라니까요!!! 쟤가 자살하려고 했다고요!!!”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니...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교사에게 소리지르고 있는 남자애가 보였다.
아까 걔다, 나 구해준 애. 그리고 지금 날 꼰지르고 있다...
젠장, 술이 웬수지...! 언니에게 알려질 경우의 수가 하나 더 늘어났다...
슬며시 일어나 도망가려는 순간...
“백제원!!!!!!”
창문 밖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전아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썅...
우리반은 1층이기 때문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내달리고 있는 전아라가 보였다.
선생한테 심문 당하기냐, 아니면 쟤한테 혼나면서 같이 튀기냐... 아아, 머리 아파...
“쟤 전아라 아니야? 인산고 짱 전아라...!”
맞다. 쟤 엄청난 양아치다... 물론 친구인 나도 그렇다.
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창문으로 달려가 그대로 넘어버렸다.
“저, 저! 야!!! 너 거기 안 서?!!!!!”
꼰지르던 놈과 같이 있던 선생의 목소리였다. 난 아랑곳 않고 전아라에게로 달려가 무작정 소리쳤다.
“야!!! 튀어!!!!!!”
“뭐?!! 아 씨 뭔데!!!”
날 잡으러 온 전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선생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나와 함께 냅다 달렸다.
그런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운동장에 나타난 노란 페라리 한 대. 난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잽싸게 올라탔다.
보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맨날 이 차만 끌고 다니는 내 친구, 한여름. 참고로 지 언니 차 몰래 타고 다니는 거다.
“야! 니가 왜 여기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차에 올라탄 내가 하는 말이다...
“전아라가 연락 때렸지! 너 술 처먹었으니까 얼른 찾으라고!”
“그래!!! 새끼야, 니는 정신이 있냐, 없냐?! 지 주사가 뭔지 잘 아는 년이 그걸 또 처먹어!!!”
“그래... 미안, 미안......”
난 연신 사과를 하며 불쌍한 척을 했다. 이래야 잔소리가 조금이라도 줄어든다...
언니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차는 곧 출발했고, 고개를 돌리니 육중한 몸으로 힘겹게 창문을 넘고 있는 남선생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엔 놈이 있었다. 열린 차창 밖으로 눈이 마주쳤다. 시력이 엄청 좋은지라 놈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이... 우리의 두 번째 눈맞춤이었다.
/ 갑자기 인소가 쓰고 싶어져서 옛날 갬성으로 돌아가 끄적여봤습니다... 아 오글거려^^..
첫댓글 ㅎㅎㅎ 사고뭉치 여학생그룹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네요 호기심이
자꾸만 생깁니다
네 엄청난 사고뭉치들일 거예요 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 기대해주세요~
내용이 너무 궁금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