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며 안다
망가진 열아홉 정비사의 가방에 들어 있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열아홉 짜리 애물단지 매단 내 늘어진 가방 속 커피믹스 한 봉보다
얼마나 무겁고도 든든했을는지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부터 생각한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야근하며 휴일도 없이 일하다
부서진 열아홉 제빵 근로자의 하루하루가 쪽잠 속에 절그럭대는 놋쇠 사슬이어서
그 꿈은 새벽 공기를 타고 오를 듯 가벼웠으나 꿈을 위해 일어서야 할 몸은
꿈조차 휘발된 지 오래인 내 몸만큼이나 얼마나 푸석푸석했는지
밤에는 물에 불린 미역 줄기처럼 슬픔을 요에 휘휘 감아 문대지만
아침에는 잠 구름을 찢으며 들어온 햇살 창끝이 요에 뭉갠 슬픔을 버석거리게 한다
세상이라는 거대 설비공장에서 열아홉은
틈새를 끼워 맞춰야 하는 나사못이 된다
어느 틈에 낑낑 끼이거나 어느 틈으로 가물가물 굴러가버리기도 하는
- 『시로 여는 세상』2018년 여름호
Les jours tranquilles · André Gagnon
사진〈Pinterest〉
지구의 뚜껑
이 선 영
내가 이 저녁 아차하며 냄비 뚜껑을 망가뜨렸듯
나의 선조의 선조의 선조의 아득한 선조인 주부들이 대대로
어느 어수선한 저녁을 아차 하며 우그러뜨려 온 탓에
지구에는 변변한 뚜껑이 없나 뚜껑이 없어
해와 달과 별이 저렇게 훤히 보이나
아니 해와 달과 별이 지구를 번갈아 넘나드는 가
사람은 아차하고 뚜껑이 열리면 안 되나
우심실좌심방 혈관관절
위장대장십이지장 머리허리다리
하나가 고장 나도, 괜찮아, 또 열릴락 닫히는
많고 많은 뚜껑들
찌개 냄비도 끓어오르면 뚜껑을 열어야 하고
밥솥도 익으면 뚜껑을 열어야 하고
사랑도 익으면 문을 열어야 하고
열어야 넘치거나 썩지 않고 우주로 통하느니
태곳적 누군가의 조바심 많은 손이 일찌감치 열어 두어서
해김치와 별두부 달감자가 둥둥 떠다니는 지구냄비
뚜껑이 없어 영영 닫힐 리 없는 줄 아느니
찰기 없는 발바닥을 더욱 끈적하게 붙이고 저마다
지구의 직립한 뚜껑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로
밤낮 복닥거리지만 지구는 냄비 속
곧잘 시래기 타래 같은 정이 흘러넘치는 행성